하응백의 우리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서도민요 중에 ‘난봉가’라는 노래가 있다. 난봉가는 대개 황해도 지방의 민요로 ‘자진난봉가’, ‘타령난봉가’(병신난봉가혹은 별조난봉가), ‘숙천난봉가’, ‘개성난봉가’ 등 많은 종류가 있으나, 그 원판은 ‘긴난봉가’이다.

도드리장단이나 중모리장단으로 혹은 굿거리장단으로도 많이 한다. 가사는 대개 사랑타령이다.

이중 ‘사설난봉가’는 가사의 해학성이 매우 뛰어나다. 몇 구절을 들여다보자.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무쇠풍구 돌풍구 사람의 간장을 다 녹여 내누나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은 목매러 간다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죽는 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이 또 난봉나누나

물 길러 간다고 강짜를 말고 부뚜막 위에다 우물을 파렴

*물 길러 간다고 강짜를 말고 부뚜막 위에다 우물을 파렴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무쇠풍구 돌풍구 사람의 간장을 다 녹여 내누나”라는 구절은 은근한 성적 암시가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풍구’라는 단어 때문이다. ‘풍구’는 불을 피울 때 혹은 곡식을 선별할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를 말한다. ‘풀무’라고도 한다.

풀무질은 남녀의 성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임이 예쁘고 아름다워서 마음의 바람을 일으켜 간장이 다 녹아난다는 뜻인데, 앞에 무쇠풍구와 돌풍구가 배치되어 있음으로 인해 성관계가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죽는 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이 또 난봉나누나”도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니 그 처녀를 연모하던 뒷집 총각이 목매러간다는 것이다. 대개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은 이 대목에서 웃음을 머금게 되는데, 이 가사의 해학성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즉 ‘새끼 서발이 또 난봉나누나’에서 보는 것처럼 총각이 죽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총각이 목맬 때 사용하는 새끼줄 세 발 조차도 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새끼줄을 의인화해서 난봉의 전염성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 길러 간다고 강짜를 말고 부뚜막 위에다 우물을 파렴”에서는 아내가 물길러 가는 것조차 싫다고 남편이 투정을 부리는 것을 표현한다. 그래서 아내가 차라리 (부뚜막에 우물을 파면 물길러 가지 않아도 되니) 부뚜막에 우물을 파라고 한다. 이 가사는 두 가지 상황이 가능한데 하나는 남녀가 너무 정이 깊어 한날한시도 떨어지기 싫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의처증 많은 남편을 풍자하는 내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해학성이 매우 뛰어난 가사인 것이다.

▲ 해학성이 뛰어난 서도민요 난봉가는 재미있고 재가발랄한 민중속의 노래다. 사진은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참여한 여성민요단 ‘아리수’가 연평도 난봉가 등 민요가락을 시민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기층 민중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난봉가’나 ‘긴아리’ 같은 소리는 가사 내용이 함축적이며 대단히 해학적이다.

같은 서도소리 중에는 ‘수심가’나 ‘관산융마’와 같이 주로 지식인층이 즐겼을 노래도 있다. 한시(漢詩)에 곡을 붙였으니 기층 민중은 소리를 들어도 그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발생적으로 보면 ‘난봉가’나 ‘긴아리’는 일반 백성들이 주로 불렀던 노래이며, ‘수심가’나 ‘관산융마’는 주로 전문 가창자, 즉 서도의 기생들 사이에서 전파되고 전수되었던 노래다. ‘수심가’나 ‘관산융마’가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면, ‘난봉가’는 재미있고 재기발랄한 민중 속의 노래인 것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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