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경북 안동시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데 과연 그럴까?

들으니 그건 ‘선비의 고장’이라 자랑하던 안동이, 역시 선비의 고장임을 자부하는 영주보다 시(市)브랜드 슬로건 등록에 뒤처진 바람에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삼국과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가 불교 위주의 나라였고 조선이 유교 위주의 나라였으니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에 걸맞으려면 불교와 유교가 모두 가장 난숙(爛熟)했던 지역이어야 하는데 안동이 과연 그럴까?

▲ 서울 종로구 경희궁에서 열린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에서 어가행렬이 펼쳐지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안동의 불교문화가 서라벌(경주)보다 더 흥성했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영주시에게 ‘애칭’을 선점 당했으면서도 안동 시민들은 안동이 ‘선비의 고장’임을 의심치 않는다. 다만 영주시가 유구한 선비 전통을 잘 계승·발양하여 현대의 선비들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안동처럼 명실상부한 선비의 고장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안동시민들의 바람이리라.

‘선비’ 글자의 어원

그런데 실은 ‘선비’ 이 두 글자처럼 의미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은 어휘도 드물다. 국어사전을 뒤져 보면 1)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던 사람을 이르던 말, 2)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3)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4)품성이 얌전하기만 하고 현실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1∼3은 긍정적인데, 4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443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선비’란 말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오래지 않아 ‘선비’라는 두 글자가 ‘언문(諺文)’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언제부터 있어 왔던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으며, 오래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 또한 알 수 없다.

이런 경우를 위해 공자(孔子)는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어라〔於其所不知, 蓋闕如也〕”,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하라〔不知爲不知〕”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이런 태도가 바로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다. 그러나 지식인의 자기인식과 정립에 관련된 중요한 용어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추측을 통한 자가류(自家流)의 주장을 편 바 있다.

그 가운데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주장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선비’라는 말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에 보이는 선비족(鮮卑族)과 발음이 같다.

2) 선비족은 본래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으로 살아와서 말을 잘 타고, 싸움을 잘하는 족속이었기 때문에 고대의 무사들을 ‘선비’로 부르게 된 것이다.

3) 삼국 시대 이후로 중국인들은 삼국의 선비, 즉 무사들을 선인(仙人) 또는 선인(先人)으로 기록하기 시작하고, 삼국 스스로도 중국식 표현을 따라 선인 또는 선랑(仙郞)으로 기록했다.

4) 오늘날 태권도나 일본에 건너가 만든 가라테〔唐手〕의 복장을 보면 흰옷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검도할 때 입는 옷은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런 것도 옛날 선비=무사의 유풍으로 볼 수 있다.

5) 우리나라 최초의 선비는 누구인가? 《삼국사기》를 보면, 평양은 본래 선인왕검(仙人王儉)이 살던 곳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단군왕검’이 우리나라 최초의 ‘선인’, 곧 ‘선비’인 것이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고려 시대 사람이었으므로 삼국 시대의 용어를 빌려 ‘선비’를 ‘선인’으로 부르고, 그 ‘선인’의 시작을 ‘단군왕검’에서 찾은 것이다.

6) ‘선비’라는 말은 동호족(東胡族)의 일부 족속을 가리키는 명칭에서 발생하여, 삼국 시대에는 한자식 표현인 선인 또는 선랑으로 호칭이 바뀌었으며, 선비의 풍속은 군자(君子)요, 선교(仙敎)의 신봉자들이며, 태양을 비롯한 일월성신을 숭배하고,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숭상하고, 태양 속에 까마귀가 있다고 믿고,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믿으면서 장례식을 춤과 노래로 치르는 풍습이 있으며, 삼국 시대에는 무사의 기능을 겸비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주장은 듣기에 귀가 즐겁고 저절로 신이 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이라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한층 드높일 수 있는 호재치고 이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의 주장들은 한마디로 황당무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억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설의 일부라면‘ 재미있군…’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학문의 세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실증(實證)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학설이 될 수 없다.

한글로 쓰인 선비는 용비어천가에 첫 등장

이제 실증을 해보자. 한글에서 ‘선비’라는 용어가 언제 처음 보이는지 알아보는 것이 그 첫 단추를 꿰는 일이다. ‘선비’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2년 후에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세종의 어명을 받아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처음 보인다.

언문 원문의 ‘선’을 ‘유(儒)’라 한역(漢譯)한 것이 3회에 걸쳐 보인다. 그 뒤에 서거정의 《유합(類合)》도 ‘유’와 ‘士(사)’를 ‘선’이라 새겼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는 ‘儒’자를 설명하기를 “션븨. 守道攻 學曰儒(수도공 학왈유)”, 즉 “도를 지키며 학문을 하는 사람을 유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도(道)와 학(學)은 요순, 공맹을 위주로 한 유가의 도와 학이며, 이런 도학을 하는 사람을‘ 션븨’라고 한 것이다.

《훈몽자회》는 ‘사’ 자를 설명하기를 “됴··사 學以居位曰士(학이거위왈사)”, 즉‘ 학문을 하여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됴’는 도가(道家)의 불로장생의 도를 닦는 도사(道士)가 아니라 조정의 벼슬아치를 의미하는‘ 조사(朝士)’이다.

수기(修己)를 하여 관직에 나아가 치인(治人)을 하는 것이 선비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서 ‘션븨’를 거쳐 ‘선비’로 정착된 이 말이 담지(擔持)하고 있는 함의에는 ‘儒)’와 ‘ 士’가 그 중심에 있다.

그러면 ‘선’의 어원(語源)은 무엇일까. 필자는 발음이 완전히 부합하는 한자어 ‘선배(先輩)’라고 본다. 이것이 한자어 기원설인데 발음이 완전히 부합하고 의미까지도 연상해 볼 수 있는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증에 바탕한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자어 ‘선배’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의 설명을 요약하면, 1)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 2)당나라 때 진사 시험 합격자끼리의 호칭, 3)문인(文人)에 대한 존칭이다.

1)에 의하면‘ 선’는 ‘나이든 사람’이다. 2)와 3)에 의하면‘ 선’는‘ 배운 사람’이다. 3)에서의‘文人’은 당연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란 의미가 포함되겠지만 그보다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을 필두로 한 유가의 경서를 포함하는 인문정신의 정화(精華)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광의(廣義)의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잇값’과 ‘배운 값’을 하는 사람이 본뜻

그러니까 선비의 본뜻은‘ 나잇값’과‘ 배운 값’을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선비정신의 실천은 ‘나잇값’과 ‘배운 값’을 하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잇값과 배운 값을 한다는 것은, 말하기야 쉽겠지만 행하는 것도 과연 말만큼 쉬울까.

공자는 중용을 인(仁)과 동등한 수준에 두었고 중용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와 국가를 조화롭게 다스릴 수 있으며, 높은 벼슬자리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을 맨발로 밟을 수는 있으되, 중용을 실천하기는 어렵다.(天下國 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제 몸 하나 잘 수양하기도 어려운데 온 세상 사람들이 불평불만 없이 살도록 위대한 지(智)를 발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고관대작을 시켜 준다는데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사양하는 인(仁)을 발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절체절명의 위험 앞에 죽음도 각오한 채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용(勇)을 발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잇값과 배운 값을 하는 선비가 되는 것은 이에 못지않게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과 아는 것 따로, 하는 짓 따로인 사람이 넘쳐나며, 인격까지 돈으로 가름하려는 오늘날, 어디 선비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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