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환의 커피로 보는 남자

[이코노뉴스=한창환 춘천커피통 대표] 국내에 소개된 커피 관련 다큐 프로그램은 ‘히말라야 커피로드’, ‘커피에 관한 모든 것’, ‘황금빛 커피열매’, ‘세계커피여행’ 등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수십번을 거듭해 살펴보고 또 요모조모 분석하기도 했던 ‘블랙골드(BLACK GOLD)’는 지금도 필자에게 여전히 초심을 일깨우는 자극제다.

▲ 한창환 대표/월간 커피앤티 제공

“흐~흡 흐~흡” 커핑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블랙골드는 커피를 통해 세계 거시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제 3세계 국가의 농업 종속이 선진국에 의해 어떻게 전개되는지 심도 있게 조명한 걸작이다. 2007년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 출품작이기도 하다.

이 다큐멘터리 감독은 영국의 쌍둥이 형제인 마크 프랜시스와 닉 프랜시스다. 이들은 커피 생산지인 가난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비참한 현실과 커피의 소비지인 미국과 유럽의 화려한 커피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극적인 대비 효과로 스토리를 전개해간다.

또한 제목에 걸맞게 막과 막 사이를 페이드아웃과 인으로 처리한 후, 블랙 화면에 간략한 핵심내용을 던져주며 집중도를 높인다.

SCA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에서 주최한 국제커피경연대회장을 첫 화면으로 보여주며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인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 에티오피아를 조명한다. 1,500만명 이상이 커피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고 이 나라 수출액 중 67%가 커피라며 블랙 화면에 글씨를 선명하게 나타낸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커피수출관리센터에서 7만4,000명이 넘는 커피 재배농을 대표하는

타데세 메스켈라(오로미아커피조합장)씨가 등장하고 그를 통해 세부적인 상황을 엿보는 다큐멘터리 전형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팔리지 않은 생두가 산적해있는 창고를 배경으로 세계의 커피공급이 국제커피협정에 의해 규제되면서 재배농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30년 전 수준으로 낮아진 현실을 찾아 나선다.

커피 생두의 현지 가격은…1㎏에 23센트, 이것이 현실

에티오피아 남부 한 조합을 방문한 그는 현지 농부들에게 묻는다. 이곳에서 1㎏의 생두가격이 얼마냐고. 가격 정보를 모르고 상인의 농간에 불이익을 당하는 농부들. 23센트...심지어 8센트에 바이어들이 매입해 갔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협동조합에서 수매하여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 이익을 보장하겠노라고 설득한다.

▲ 다큐멘터리 블랙 골드(http://blackgoldmovie.com) 영상 캡처

전 세계인이 매일 20억잔 이상을 마시는 커피. 매년 커피 가격은 상승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커피의 국제가격은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선물시장에서 책정된다. 마치 증권가를 방불케하는 뉴욕의 커피시장의 광경은 놀랍기만 하다. 생산지에서 가격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곳에서 정해진 가격이 현지가를 형성하는 구조다.

석유 다음으로 거래가 많이 되는 커피. 일거에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으며 때로는 삶의 에너지원으로 없어서는 안 될 기호음료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 한 커피집에서 만난 바리스타는 “이곳 사람들은 커피로 아침을 맞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열정을 가지고 커피를 다루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초라한 아디스아바바 커피 경매장에는 크래푸트 푸드, 스타벅스, 네슬레, 달마이어 등 각 나라에서 파견된 커피 중개인들과 공급자들이 모여서 경매에 참가한다.

그렇지만 경매가는 뉴욕상품거래소 커피가격을 근거로 결정된다. 이것은 또 다시 6단계의 유통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해진다. 이러한 중간단계를 없애고 “농부와 조합 그리고 커피를 구매하는 로스터에게 직접 전달하는 형태로 전화되어야 한다”며 타데세 메스켈라가 말한다.

다큐는 커피 제조 과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다시 아디스아바바 커피수출입관리센터에서 일하는 부녀자들에게 옮겨간다.

생두의 결점두를 골라내는 그들이 하루 8시간 핸드 피킹(Hand Picking)을 하고 받는 돈이 고작 50센트라는 현실을 보여주더니 어느덧 미국 시애틀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World Brista Championship) 결승전으로 초점을 맞추며 프로그램을 이어간다. 바리스타들의 열띤 경연이 대회장 분위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직거래를 해야 농부들이 살 수 있어요!

이르가체페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만드는 광경은 그저 평안해 보인다.

1㎏에 22센트를 받고 있는 농부들의 삶을 좀 더 개선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커피가격은 1달러 10센트. 족장은 안온한 풍경과 달리 이렇게 기도한다. “신이시어 우리의 삶을 바꾸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소서” 라고. 그러나 현실은...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커피를 버리고 살기위한 필사적인 수단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 마약성 식물인 ‘챠트(Chat)’를 심는 농부와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이와 달리 1971년에 문을 연 시애틀 스타벅스의 종업원들은 기쁨과 자부심으로 활기에 넘친다. 고객과 행복을 나누는 모습은 에티오피아 농부들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 다큐멘터리 블랙 골드(http://blackgoldmovie.com) 영상 캡처

스타벅스에 커피를 공급하고 있는 시다마(Sidama) 지역은 기근이 찾아와 심각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구호물자에 의존하지만 센터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있어 집으로 되돌아간다. 이 영상을 통해 누가 이들을 도울 것 인가?라는 반문의 메시지를 던진다. 말 그대로 블랙과 골드.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타데세 조합장은 직거래를 트기위해 영국의 개인 커피사업자를 찾아 나선다. 커피 재배농에게 뉴욕 선물시장은 문제가 많은 곳이며 자국에서는 어떠한 협상도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커피에 대해 이해를 하고 마셨으면 좋겠어요. 정당하게 무역이 이루어지는지 공정무역을 인식하길 바래요” 라는 인터뷰를 남기고 그의 행보는 계속된다.

WTO 그리고 보조금과 원조

어느덧 무대는 멕시코 캔쿤. 2003년 WTO(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 각료회의가 열린 이곳은 한국농업과 전 세계 농민의 생존권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경해 열사로 인해 더욱 유서 깊은 곳이다.

세계무역 질서를 공정하게 확립한다는 WTO. 그렇지만 여전히 불평등한 무역협상으로 후진국은 도외시 된 채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협상에서 선진국에서는 자국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못사는 제 3 세계국가들은 자국 농부들에게 지원할 생각이 없다.

이것부터가 이미 불공정을 초래하고 있음을 말한다. 협상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아프리카 무역 대표부는 “원조는 필요없다”고 외친다. 보조금이 없어지고 협상이 재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가난한 농부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원조 배급이 이루어지는 아프리카 현장. 수많은 사람들이 배급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이 아릿하다. 이곳 책임자인 원조상담가인 케타추 하일레씨는 “이 원조는 구걸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부정적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동아프리카 지부티에서의 원조물 하역현장은 압권이다. 스타킹을 얼굴에 덮고 밀을 포대에 담고 있는 인부의 모습이 내내 인상에 남는다.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불확실한 미래가 포착되어 세부적인 진실을 이 한 컷에 담아내고 있다.

▲ 다큐멘터리 블랙 골드(http://blackgoldmovie.com) 영상 캡처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페이드 아웃된 블랙에 ‘지난 20년간 아프리카 세계무역 점유율은 1%로 떨어졌다. 만일 이 점유율이 1%가 오르면 1년에 700억 달러의 이익이 생기며 이것은 원조로 받는 금액의 5배에 달한다’ 며 자막이 떠오르고 곧이어 세계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크레프트, 네슬레, 프록터&캠블, 사라리, 스타벅스는 모두 이 다큐의 인터뷰을 거절했다는 대목으로 끝을 맺는다.

WTO 체제의 폭력을 직접고발하고 '다른 무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에티오피아 커피농가 이야기가 담긴 블랙골드는 세계의 미시와 거시경제의 흐름을 알게 함은 물론 지난 20년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국가들을 통제해왔음을 전하고 있다.

내레이션 없이 현장음과 인터뷰 그리고 자막을 통해 리얼리티를 최대한 담아 전달한 블랙골드는 커피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시청해보아야 할 다큐멘터리이다.

※ 한창환 춘천커피통 대표 약력

- 커피제조회사 (주)에소 대표 역임

- 고려대 평생교육원 '커피마스터과정' 책임교수(2006년)

- (주)스타벅스커피코리아 바리스타 자격검정 심사위원

- 에스프레소 콜리아 바리스타 스쿨 자문위원(2008년~2012년)

- 연세대 미래교육원 우수강사상 수상(2008년, 2010년)

- 엔제리너스 월드바리스타 그랑프리 심사위원(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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