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겸 대기자]

▲ 최성범 주필

화석연료로 운행되는 자동차의 미래는 무엇일까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벌어진 적이 있다.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CO2) 감축이 절실한 데다, 석유 자원이 언젠가는 고갈되기 때문에 석유자원에 기반한 기존의 자동차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7~2008년 국제 유가가 급등한 이후 이 논의는 탄력이 붙었다.

에너지원 가운데 수소, 전기 등이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자동차의 연료로 그 대상이 좁혀졌다. 한마디로 전기차와 수소차 간의 경쟁이다.

수소차와 전기차 경쟁에서 전기차의 완승...세계시장 전기차로 재편

이론상으론 수소차가 우위에 있다. 미래 에너지인 수소를 사용하는 데다 배기가스 대신 물을 방출하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다. 반면 전기차는 역사가 깊어 기술이 많이 진전돼 있고 인프라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는 게 강점이었다.

차세대 자동차 논의가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수소차와 전기차의 경쟁은 전기차의 완승으로 결론이 났다. 전기차의 개발속도가 빠른 데다 소비자 반응도 좋아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미국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전기차에 승부를 건 게 결정적이었다. 반면 수소차는 기술 발전이 너무 더딘 상태다.

이미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자동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으며, 인도는 2030년까지 100% 전기자동차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중국은 2020년까지 500만개에 이르는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으며, 독일은 2020년까지 전기자동차 200만대가 전 지역에서 주행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특히 최근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계기로 클린 디젤에서 전기차로의 시장 전환이 더욱 가속화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엔 전기차가 전체 자동차 시장의 10%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의 닛산(모델명 리프)과 미국의 테슬라(모델 S, 모델3)가 전기차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내년 말 출시할 보급형 전기차 '모델3' 스케치 모습. 테슬라는 지난 4월 예약개시 3일 만에 27만 6000대의 예약주문을 받았다고 자랑했다.(사진출처 BBC)

이제 전기차 개발은 환경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산업이자 성장산업이라고 보는 게 맞으며 선택의 문제도 아닌 상황이다.

한국, 갈라파고스 섬 신세...세계와의 격차 인정하고 문제 풀어나가야

문제는 이러한 거대 추세 속에서 한국이 갈라파고스 섬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기아차가 전기차 대신 수소차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각국이 전기차 생산 경쟁에 돌입하던 당시 한국 정부도 전기차 보급계획을 수립했으나 현대기아차는 전기차의 시장 잠재력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미래형 에너지를 사용하는 수소차에 승부를 걸었다. 그룹 경영진 수소연료전지차에 관심이 많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 연료 전지차 양산체제를 갖췄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기차 관련 기술과 시장은 급성장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배터리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주행거리와 충전시간의 문제가 거의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출시된 테슬라의 모델 3의 경우 346km를 주행할 수 있는데다 480 볼트의 직류(DC) 급속충전소에서 충전할 경우 21분이면 80%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델 3는 일주일 만에 32만5천대의 주문을 받기도 했다. 출시 이후 테슬라 주가가 급등한 건 당연하다. 최근 테슬라는 전기차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슈퍼차저 특허도 개방했다. 누구나 슈퍼차저 충전 시스템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 우리나라는 전기차시장에서 미국과 유럽 등 경쟁국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전기자동차 선도도시를 선언한 광주시의 의회 주차장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시설에서 민간, 공공전기차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아쉬운 점은 한국이 전기차 개발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업이 바로 LG화학이기 때문이다. GM의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한다.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세계 최고의 배터리 생산업체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은 전기차에 관한 한 기술력과 인프라, 시장 조성 모든 면에서 낙후된 상태다. 덕택에 국내 전기차 시장도 성장하지 못하는 상태다. 전기차 보급은 정부 목표의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통상자원부는 2020년까지 1회 충전으로 400㎞를 달릴 수 있는 고밀도 배터리를 만들 계획 하에 21일 '고밀도 이차전지 개발 프로젝트' 발족식을 개최하고 기업과 연구기관 등이 대거 참여하는 '전기차-이차전지 융합 얼라이언스'를 구성했다. 융합 얼라이언스 참가 기관수는 27개, 연구진은 230여명에 달한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차량 가운데 1회 완전충전시 최대 주행거리는 191km에 불과하다는 약점을 만회하겠다는 것이다.

전기차에 관한 한 한국은 첫 단추를 잘못 꿰맨 탓에 세계적인 추세에 뒤쳐져 있다. 미래형이라는 수소차는 기술발전이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에 이를 지 명확하지 않은데다, 자동차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전기차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마당에 시장이 생겨날지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태다.

그렇다고 전기차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할 힘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와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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