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국은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이후 40여년동안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전국 곳곳에 개통되면서 이제 우리나라 어디에도 서울에서 출발해 하루에 다녀오지 못할 곳은 없다. 전라남도 해남이나 진도, 경상남도 거제, 경상북도 울진, 영덕 등 모두 차로 5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만큼 교통이 편리해진 것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나라에는 교통이 불편해 등짐장수, 이른바 보부상들이 교역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들도 많다. 특히 강원도 영동과 영서는 태백산맥으로 인해 거리는 가깝지만 왕래는 매우 불편했다. 때문에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고갯길은 삶의 한 마루이자 아득한 거리감으로 인해 문학작품 혹은 민요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진부령, 대관령 등등의 고개는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경북 봉화와 경북 울진을 연결하는 도로도 지금은 자동차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아예 번듯한 길조차 없었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의 물산이 이동하는 교역로는 반드시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이진 길이 바로 십이령 고갯길이다. 봉화의 춘양장에서 울진장까지 약 80km에 이어지는 작은 길로 열두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해서 십이령길이라 한다. 약 200리에 해당하는 이 길을 넘나들던 단골은 역시 보부상이었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무거운 물건을 져 날랐던 것이다. 울진 쪽에서의 중요 생산품은 소금, 미역, 문어, 고등어 등 주로 바다에서 나는 산물이었다.

보부상들은 소금, 미역 등을 지고 봉화의 춘양장에 팔고, 울진장으로 갈 때는 콩과 같은 곡식과 담배와 같은 육지의 생필품을 지고 날랐던 것이다. 경북 안동지방의 간고등어가 특산물로 자리잡은 것도 이들 보부상이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에 간을 하여 안동 쪽으로 날랐기 때문이며, 경북 내륙지방의 제사상에 문어가 반드시 오르는 것도 이들 보부상의 운송 덕뿐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고갯길을 오르니 어찌 노래 한 자락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발생한 노래가 바로 ‘십이령길 바지게꾼 노래’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은 언제 가노

(후렴: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내륙의 춘양장에 갈 때는 어물을 지고 가고 반대로 울진으로 갈 때는 곡식 등을 지고 간다. 반평생을 열두 고개를 가는 것이니 얼마나 처량하고 한탄스러웠을까. 그래서 조물주에게 원망을 한다(시그라기는 억새의 경상도 사투리, 바지게는 짐을 많이 올릴 수 있게 뒷받침대가 없게 개조한 등짐장수용 지게를 말한다).

▲ 민초들이 입으로 퍼 날랐던 노래가 세계적인 노래로 바뀐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정선아라리’다. 사진은 옛 장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정선5일장에서 정선아리랑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이 노래는 아주 쉬운 4.4조이다. 가락은 ‘정선아라리’와 거의 같다. 즉 ‘정선아라리’의 보부상 버전인 것이다. 지금이야 울진이 경상북도지만 과거에는 강원도였으니, ‘정선아라리’의 가락이 자연스럽게 보부상에게 전파되었을 것이다.

한강을 이용해 서울로 목재를 나르던 정선이나 영월의 뗏꾼들도 ‘정선아라리’를 자연스럽게 불렀던 것으로 보아 ‘정선아라리’는 이동하는 사람들(보부상이나 뗏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나운규에 의해 정착된 것이 바로 현행 ‘본조 아리랑’이다. 이후 ‘본조아리랑’은 영화라는 매체의 힘에 의해 전국적으로 전파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민초들이 입으로 퍼 날랐던 노래가 세계적인 노래로 바뀐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정선아라리’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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