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미국 대통령 선거일(11월 8일)을 8주 앞둔 가운데 대선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꾸준하게 앞서가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하락세를 보이고, 추격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기세를 올리면서 선거 양상은 초접전으로 변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선거 판도를 바꿔버린 사건은 최근 9·11테러 추모행사 도중 폐렴과 탈수 증세로 차량에 실려간 클린턴의 건강이상설 논란이다. 클린턴은 지난 11일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9·11 추모행사장에서 폐렴에 무더위로 인한 탈수가 겹치며 휘청거린 뒤 차량에 실려가면서 건강이상설에 빠져들었다.

2012년 뇌진탕 경력을 포함해 수 차례 건강 문제를 보였던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건강을 갖고 있느냐가 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동안 트럼프를 압도했던 클린턴의 대선 승리 가능성 예측이 낮아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맹추격, 당선 가능성도 상승…트럼프 당선 ‘현실화’

그동안 이메일 스캔들 등으로 인해 정직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클린턴은 이번 건강 이상 사건으로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게됐다.

여론조사기관인 모닝컨설트가 지난 12∼13일 등록유권자 1천501명을 상대로 실시해 14일(현지시간)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클린턴이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51%가 클린턴이 자신의 건강에 관해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9%에 그쳤다.

41%는 클린턴의 건강이 '평균 이하거나 매우 나쁘다'고 답해, 한 달 전 조사의 22%에서 두배 가까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의 건강이 '평균 이상이거나 매우 좋다'고 답한 비율은 한 달 전에 비해 7%포인트 떨어진 22%에 그쳤다. 응답자의 절반은 클린턴의 건강이 투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반면 25% 가량은 이번 사건으로 그녀를 찍지 않게 될 것 같다고 답변했다.

트럼프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7%로 상대적으로 적었고, 트럼프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8%였다.

이에 따라 두 후보 모두 건겅 검진기록을 공개하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70세의 트럼프는 키 192cm, 몸무게 107kg의 과체중,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이며 심장질환과 암 관련한 가족력도 없는 것으로 기록된 2장 짜리 검진기록을 공개했다.

68세의 클린턴 역시 폐렴 증세가 가볍고 전염성이 없으며 대통령 업무 수행에 충분하다는 주치의의 소견이 담긴 건강검진 기록을 제시했다.

▲ 1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9·11테러 15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심한 더위로 건강에 이상이 생겨 조기 퇴장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나중에 딸의 아파트 앞에서 걸어나오며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뉴욕=AP/뉴시스】

그러나 클린턴의 이번 건강 이상 파문은 여론조사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와 CBS 뉴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이 46%, 트럼프가 44%로, 불과 2%포인트 격차다. 이는 여론조사의 오차범위(±3%) 이내에 있으며, 과거 조사에서 5~10% 이상 클린턴이 앞서갔던 데 비하면 사실상 승패를 알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이다.

NYT는 최근 몇 주 동안 클린턴과 트럼프의 경쟁이 더 팽팽해졌으며, 전국 여론조사 평균은 1개월 전 클린턴의 8%포인트 앞선 상황에서 2%포인트 앞서는 데 그쳤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했다.

제3후보군인 게리 존슨(자유당)과 질 스타인(녹색당)을 포함한 4자 가상 대결에서는 '투표할 의사가 있는 유권자'의 지지율은 클린턴과 트럼프가 42%로 동률이었다. 존슨과 스타인이 각각 8%, 4%의 지지를 받았다. 과거 이들 제3의 후보들은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를 잠식했으며, 트럼프에게는 유리한 변수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는 9일(현지시간)부터 13일까지 유권자 1천443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NYT는 무엇보다 경합주인 오하이오와 플로리다, 네바다, 뉴햄프셔 등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 경합주에서 지난 2주간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진단이다.

최대의 승부처인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중서부의 제조업 지대) 오하이오 주에서 29%에 머물렀던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은 2주 만에 2배가 넘는 60%까지 올라갔고, 플로리다(34%→41%), 네바다(29%→40%), 뉴햄프셔(6%→15%)도 마찬가지다.

선거인단 제도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 대선의 특성 상 이들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현재 오하이오, 플로리다, 아이오와, 네바다, 뉴햄프셔, 노스캐롤라이나 등이 경합주로 꼽히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점은 주목할 대선 흐름이다.

클린턴의 주요 지지층은 소수 민족, 여성, 연간 7만5000달러(약 8400만원) 이상의 소득자, 중도파 등인 반면, 트럼프의 지지층은 백인, 남성, 독실한 기독교인, 노년층이다. 두 후보 모두 역대 대통령 후보 중 비호감도가 가장 높다는 점에서 지지후보를 변경할 수 있고, 특히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언제든 제3후보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변수다.

물론 클린턴이 여전히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6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결과(9~15일 실시)에 따르면,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은 각각 42%, 38%인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 통신은 대부분 유권자는 대선 후보의 건강 문제가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전했으나, 50여일의 기간 동안 건강 문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16일(현지시간) 마이애미 제임스 L. 나이트 센터에서 열린 유세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마이애미=AP/뉴시스】

문제는 클린턴이 젊은층의 지지를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으며, 이탈한 젊은층이 제3후보에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퀴니피액대학이 이번 달에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과 트럼프 간 35세 이하 유권자 지지율 차이가 5%포인트로 좁혀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 같은 조사에서 클린턴이 24%포인트 차이로 앞섰던 것을 고려하면 1개월 새 간격이 급속히 줄어든 것이다. 전체 연령에서의 지지율 차이도 7%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좁혀졌다.

또 폭스뉴스의 여론조사에서는 35세 이하 유권자에서의 클린턴과 트럼프 간 격차가 9%포인트로 지난달 초 27%포인트에 비해 줄어들었다.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와 WXYZ TV가 공동으로 미시간 주 유권자들을 여론 조사한 결과에서는 지난달 24%포인트 차이가 7%포인트로 축소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클린턴에게서 이탈한 젊은 층은 자유당의 게리 존슨에게 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 시 안보, 무역 분야 갈등 커질 것…‘정책 변화 대비’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 기존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의 정책을 일정 부분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 다소 강경한 보수정책을 채택할지라도 한국으로서는 대응 가능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커다란 정책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의 정책과 행동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변덕스럽고,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기존의 워싱턴 이너서클에 포함되지 않아 개혁을 추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미국의 정책이 급변하고 상대 국가와의 분쟁이나 갈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현안은 한미동맹 및 안보 이슈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의 입에서 직접 한국이 분담금을 전액 부담하라는 언급까지 나왔다.

그는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는 동맹은 스스로 방어하라며, 스스로 핵무장도 감수해야 한다는 강한 수준의 발언까지 내놓고 있다. 한국을 겨냥해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 증액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철수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전후 질서와 한반도를 포함한 동맹체제 자체를 급격하게 뒤흔드는 것으로, 미 대선 이후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의 안보지형이 급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하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CVN-74·10만3000t급)함이 지난 3월 18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두를 빠져나가고 있다./뉴시스

북한 관련 정책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현재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클린턴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미치광이(maniac)’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고 공화당은 대선 정강에서 북한을 ‘김씨 일가의 노예국가(Kim family’s slave state)’라고 규정하며 체제 변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기반으로 북한 봉쇄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지난 5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김정은)와 대화할 것이며 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언급하는 등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라는 원칙과 더불어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도 하겠다는 것으로,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고 있는 클린턴과 결이 크게 다른 대북 접근법이다.

트럼프는 무역·통상 분야에서도 보호무역을 설파하며, 한국과의 통상마찰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는 7월 21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전당대회 후보수락 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거론하면서 한미 FTA를 포함한 모든 무역협정에 대한 재협상 의지를 밝혔고, 이후에도 한미 FTA를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는 “클린턴은 우리의 일자리를 죽이는 한국과의 무역협정을 지지했고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지지했다”면서 “나는 중국과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와의 끔찍한 무역협정을 완전히 재협상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역 마찰을 포함한 각 분야에서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한 지점이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맞서, 우리도 정부와 민간 및 기업 부문이 나서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9월 26일, 10월 9일, 10월 19일 세 차례 펼쳐질 TV토론 등의 변수와 트럼프 참모진의 구성 변화와 정책 흐름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점점 콘텐츠와 어젠다의 내용이 구체화되고 있는 트럼프의 정책과 향후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정책의 구체화된 내용을 심층 분석하고, 이에 맞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고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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