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추석(秋夕)은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며,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가진 으뜸 명절이다.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불리는 추석 명절은 온 가족이 상경 또는 귀향해 한 자리에 모이고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며, 온갖 정담과 1년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중요한 자리다.

▲ 김홍국 편집위원

신라 및 가락국 시대에 세시명절로 자리 잡은 추석은 고려에서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에 포함되었다. 고려 9대 속절은 원정(元正, 설날)·상원(上元, 정월대보름)·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였다.

이 명절들은 조선시대로 이어졌고 조선시대에 추석은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 산업화 이후 공업 발전에 따라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세시명절의 사회적 의미가 축소됐고, 추석 역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추석은 1년 중 온 가족이 모여 가슴 속에 담아온 정담을 나누는 자리로 여기서 형성된 차례상과 식탁의 민심이 나라의 여론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한가위 추석 명절에서 형성된 민심은 내년 설과 추석 밥상을 거쳐 내년 12월 대선의 승자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대선후보군 레이스’ 추석 여론,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올해 추석의 밥상 민심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을 모두 도마에 올려놓고, 누가 더 정의롭게 살아왔으며, 누가 국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지 재보는 기회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헬조선, 아수라민국, 사상 최악의 가계부채, 17년만의 최악인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사회, 미래를 볼 수 없는 절망의 사회, 어두운 경제, 불통과 독선의 정치, 좌절한 사회적 약자들로 상징되는 고통 속에 잠겨있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부유층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운용하며, 이념과 세대 편가르기로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불통과 오만은 점입가경이다.

여론조사마다 30% 정도인 국정운영 지지 여론의 두 배가 넘는 60~63% 정도의 부정적 평가가 고착된 것은 이를 입증한다.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역에서 귀성객들 KTX에 탑승하고 있다./뉴시스

유권자들에게 제시했던 국민통합, 기초연금 등 공약마다 파기되고,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이 청와대, 정부와 정당에서 축출당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데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년 12월 선출될 차기 19대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과 더 나은 인물을 선출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번 추석 밥상에는 지진과 북핵이라는 현안 변수, 빚더미 삶과 힘겨운 민생이라는 경제 변수, 대선주자들에 대한 하마평이 주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일단 국민들의 관심을 가장 모으는 것은 경주 지진이다. 지진 사태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에 이어 국민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안전문제라는 점에서 발화성이 큰 사안이다. 지난 12일 경북 경주 일대에서 규모 5.1과 5.8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해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고, 정치권도 앞다퉈 현장방문과 긴급회의를 개최하며 안전의식 부재를 질타했다.

특히 정부는 그동안 지진에 대한 대비가 부재했고, 재난 담당 부처인 국민안전처의 무능한 뒷북행정에는 여야가 한 목소리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추석 이후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안전처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재난 관련 정부 부처가 집중적인 질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인한 안보 논쟁도 국민들의 걱정을 더하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은 당연히 규탄하고 비판받아 마땅한 범죄지만, 압박과 대결 위주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상황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어 국민들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아무런 비전과 해결책 없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비난하고 인도적 지원까지 끊는 초강수를 두면서, 이에 반발한 북한은 핵무기를 실전배치단계까지 발전시켰고 남북관계는 전쟁을 앞둔 대결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여기에 정치권과의 협의나 국민 여론 수렴 없이 배치를 결정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는 국론 분열을 이끌고 있다. 탈출구와 해법이 보이지 않는 남북한간 강경 대치는 자칫 전쟁의 포화로 남북한이 비극을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더불어 2년이 넘게 방치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300일 넘게 뇌사상태인 백남기 농민 문제, 한진해운 사태를 비롯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아무런 건강증진 효과 없이 세금만 늘리는 담뱃값 인상 문제, 갈수록 악화되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등 국정 현안과 함께 도덕성 논란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문제도 추석 밥상위에 오르고 있다.

이 모든 논란은 추석 밥상에서 오랜만에 모인 친지 가족들의 많은 걱정과 치열한 찬반 양론을 통해 추석 이후 민심으로 나타날 것이다.

▲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3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둘러본 뒤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뉴시스

대선주자군 광폭행보, 시민들의 불안한 삶을 조준하라

대선 주자들이 추석 명절을 맞이해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돌입한 상황에서 추석 민심은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연휴 기간에 광폭행보를 펼치며 추석 민심에 구애하고 있고,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정책을 내놓으며 지지층을 결합시키려 하고 있다.

추석 민심을 기점으로 지지율 반등을 꾀함으로써, 향후 대권 레이스에서 우위를 굳히거나 최소한 국민들의 일정한 주목을 받아야만 대권후보로서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여론조사마다 선두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기문 총장은 올해 말로 임기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와 남북한 화해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그의 지지모임인 반딧불이 등 지지세력이 결집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전국을 도는 민생투어, 각종 정책 공부모임과 현안에 대한 입장 발표 등을 통해 대권 도전의 꿈을 밝히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정중동의 행보를 통해 친박과의 대립구도를 희석시키는 한편 각종 강연 정치를 통해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모병제 제시를 통해 당내 정책 논쟁을 불러일으킨 남경필 경기도지사, 협치와 미래지향적 생활정치의 화두를 제시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대선 보폭을 조절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진영내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추석 당일에는 경남 양산 자택에서 차례를 지낸 뒤 각계 원로를 찾아 명절인사를 하고, 이후 본격 대권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센터를 찾아 재난 상황을 점검하는 등 안전 현안을 살피고, 이후 국정감사 등 정기국회 활동 등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미국 방문을 통해 대권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고, 추석 기간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찾는 등 대선의 시대정신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더민주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대선 출사표를 던졌고, 시대정신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정국 구상을 펼치고 있다.

정계복귀 초읽기에 돌입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추석 이후 출판기념회를 준비중이며, 자신의 화두인 ‘저녁이 있는 삶’을 중심으로 최종 복귀 시점과 이후 행보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들 중 누가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 추석 민심과 이후 대선 구도 및 행보를 통해 옥석이 가려지겠지만, 대선 주자들은 이 시대 국민들이 갈구하는 희망과 성취에 대한 해법을 시대정신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적시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폐해 및 양극화와 불평등 사회에 대한 해법들, 고통에 빠진 민생 및 침체에 빠진 한국사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등이 13일 오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를 방문, 신고리 1호기에서 지진감지설비를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유권자의 몫, 민주주의와 국민 섬기는 좋은 지도자에게 투표를!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적인 다양성과 시민의 권리가 존중되기는커녕 불통과 독선의 정치, 시민을 배제한 권위주의적 통치가 일상화되면서, 시민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정치가 공권력과 권력의 횡포를 동원해 군림하면서, 언론의 자유가 속박당하고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 청년들의 삶은 비정규직과 실업난 등 절망 속에 알바인생으로 전락해 고통받고 있다.

중장년층은 조기퇴직과 불안한 미래, 갈수록 취약해지는 삶의 수준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는 힘은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에서 나온다. 불통과 독선으로 표상되는 나쁜 정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 정치를 질타하고, 국민을 섬기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좋은 정치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줘야 할 것이다.

추석 밥상과 이어지는 삶의 현장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좋은 정치, 비전의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호응하고, 선거 때면 빠지지 않고 투표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자신과 후손들에게 좋은 사회를 물려주고 보장해주는 길이다. 추석 민심이 주목받는 이유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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