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일본은 1967년 이른바 ‘무기수출 금지 3원칙’을 발표하고 이를 외교 및 국방의 기본방침으로 삼아왔다.

유엔 결의에 의해 무기 등의 수출이 금지되어 있는 국가나 국제분쟁 당사국 및 그런 우려가 있는 국가 등에는 무기를 팔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 미국과 공동으로 신무기를 개발하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 이동준 교수

이는 전후 스스로를 ‘평화국가’로 규정해온 이상 무기 수출이나 국제 공동개발에 의해 국제분쟁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 방침은 이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등장 이후 완전히 철폐됐다.

2014년 4월 아베 정부는 ‘무기수출 금지 3원칙’을 사실상 대체하는 ‘방위장비 이전(移轉) 3원칙’을 새롭게 각의 결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방위장비’란 무기 및 무기 기술을 말한다.

이 3원칙은 이스라엘이나 중동 등의 이른바 ‘분쟁 당사국’에 대한 무기 수출에도 모든 제한을 없앴다. 47년 만에 무기 수출의 족쇄를 푼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방위성, 외무성, 경제산업성이 후원하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국제 무기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는 록히드마틴 등 세계 유수의 125개 무기 제조사가 참가했다.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방위성 외청으로 방위장비청이 신설됐다. 이 기관은 기업에 대한 무기수출을 지원하고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 민간의 첨단기술을 무기 사업에 도입하는 일을 맡았다.

기존의 ‘무기수출 금지 3원칙’에 불만이 많았던 일본 재계와 금융권은 쌍수를 들고 아베 정부의 정책 전환을 환영했다.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은 지난해 군수장비 수출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할 것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지난해 10월 18일 가나가와현 앞바다인 사가미만에서 해상자위대 호위함 '구라마'를 타고 아소 다로 부총리(왼쪽 두번째)와 함께 관함식을 진행하고 있다. 관함식은 군가의 원수 등이 자기 나라의 군함을 친히 검열하는 행사를 말한다./[사가미 =AP/뉴시스 자료사진]

일본 국제협력은행은 무기 수출 기업에 대출해 주거나 출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무기를 사는 국가에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거나 무기 생산을 위한 합병 회사나 현지법인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집권당인 자민당은 무기연구비를 대폭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학이나 공공연구소, 민간기업 등이 군사기술로 응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할 때 방위성이 연구비를 지급하는 ‘안전보장기술연구추진제도’ 투입자금을 100억엔(약 1,000억원) 규모로 증액하도록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아베 정부 하에서 미국식 ‘군산복합체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일본의 군산복합체화는 이런저런 모순과 알력을 안고 있다.

지난달 출간된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씨(도쿄신문 기자)의 저서 『무기수출과 일본기업(武器輸出と日本企業)』 (角川新書, 2016년 7월)은 적극적인 현장 취재를 통해 군산복합사회를 지향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아베 정부는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한 후 무엇보다도 호주에 대한 잠수함 수출을 무기 수출의 ‘시금석’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일본 최대 방산업체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맡은 잠수함 수출은 결과적으로 막판에 프랑스에 빼앗기고 말았다. 총사업비가 4조2,000억엔(약 42조원)이나 되는 데다 처음으로 완성품을 수출하는 이 사업을 따내 ‘무기수출국 일본’을 세계에 각인시키고자 한 아베 정부의 꿈이 무너진 것이다.

일본이 이 사업을 따내지 못한 것은 호주의 국내정치 때문이었다. 당초 일본 지지를 공언해온 토니 애벗이 지난해 9월 돌연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대신에 중국을 중시하는 말콤 텀블 내각이 등장한 것이다.

당초 “유럽 잠수함을 선택하면 최신예 전투시스템을 제공하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호주 정부를 압박하며 일본을 지원해온 미국도 호주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중립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잠수함 수출 사업에 대해선 일본 국내에서도 반론이 많았다고 한다. 방위성은 물론이고 군수기업들 조차 ‘국가기밀의 영혼’이라고까지 불린 잠수함 완제품을 외국에 내주면 기술 유출로 국익에 마이너스라고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완제품 무기 수출 시도는 미국의 경우와도 대비됐다.

미국은 무기를 수출할 경우 일종의 ‘블랙박스화’를 행함으로써 철저하게 기술 유출을 막아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외유상군사원조(FMS)라는 제도이다.

가령 미국이 한국에 무기를 팔 경우 미국 군수기업이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정부가 무기 가격에 장래의 연구개발비와 이익률을 덧붙여 기업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한 후 기업을 대신해 이를 한국에 파는 것이다.

판매 후에도 기술자를 수입국에 파견해 보수 및 정비를 하는 한편, 특히 기술 유출이 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체크한다. 이 책에 따르면 아베 정부의 경우 이런 정보 통제 체제를 전혀 갖추지도 않은 채 무기 수출만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해 11월 5일 일본 고베의 미쓰비시 중공업 항만에서 스텔스 기능을 갖춘 소류급 디젤 동력 잠수함 건조식이 열리고 있다./[고베=AP/뉴시스 자료사진]

군수사업은 문어발식 산업의 집적체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이른바 수많은 하청업체가 따라붙는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의 군수기업들은 고도의 규격과 기술력, 정보 통제를 요구하면서 엄격하게 하청업체들을 통제해왔다고 한다.

더욱이 저자에 따르면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만으로 군수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은 극소수였다. “기술이 무기체계에 편입되는 경우에는 돌다리도 두드리는 마음으로 신중을 기해왔다”고 어느 일본 중소기업 사장은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의 무기화에 대한 자기억제가 아베 정권 등장 후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럽의 대형 군수기업 간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 군수기업들이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분야는 미사일과 탄약이다. 중동 지역 전체가 거의 전쟁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시리아도, 예멘도 모두 엄청난 양의 탄약을 사용하고 있다. 정밀유도탄은 없어서 못 판다. 유럽의 군수기업 사장들은 모두 알 카에다의 암살자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모두 그런 회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취직한다. ‘평화국가’ 일본이 왜 우리와 같은 나라가 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엄청난 속도로 군산복합체 사회로 변하고 있다. 첨단기술이 무기 개발을 위해 집적되고 있고, “무기를 팔아 돈을 벌자”는 생각이 일본 기업에 녹아들고 있다.

아베 정권이 말하는 ‘적극적 평화주의’가 ‘적극적 군사산업주의’로 서서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데 이어 미국을 좇아 군수산업을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무기 수출에 나서는 일본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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