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겸 대기자] 흙수저 논쟁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부잣집 출신을 뜻하는 영어 숙어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을 대변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부모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금·은·동·흙 수저로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이 현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 최성범 주필

얼마 전 교육부의 국장급 공무원이 사석에서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개와 돼지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얘기했다는 이유로 파면 인사발령을 받았다. 지난 4월 ‘운전기사 갑(甲)질 매뉴얼’ 논란에 휘말렸던 현대가 3세 오너는 최근 3년간 운전기사 61명을 주 56시간 이상 일하도록 하고, 이들 가운데 1명을 폭행하는 등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3년간 운전기사를 12명이나 갈아치운 사실이 드러나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다.

이밖에도 가진 사람들의 일탈 행위가 뉴스 거리가 되는 일이 심심하면 나올 정도로 많아졌다.

이들의 일탈 행위가 심해졌다기보다는 과거엔 단순한 개인의 일탈 행위 정도로 취급해 조용히 지나갔을 수도 있는 사건이라도 이젠 여론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걸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아픈 상처를 건드린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바로 밑에 거대한 용암이 흐르고 있어서 작은 인화성 물질만 있어도 큰 불길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미 영화 속에선 21세기 형 신분제 사회에 대한 풍자가 가장 빈번한 소재가 된 지 오래다. 2012년 개봉됐던 ‘돈의 맛’. 지난해 방영된 연속극 ‘풍문으로 들었소’, 천만 관중을 동원한 ‘베테랑’, ‘내부자들’ 등 최근 인기 영화들이 모두 대한민국 최상층의 생활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그만큼 신분제 사회 고착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심하다는 얘기도 된다.

우리나라 신계급 사회로의 변화중...상위 10% 전체 부의 66% 차지

실제로 영화 속에서만, 또는 한 두 명의 일탈 에피소드로 전해지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 신계급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 우리나라가 부의 불균형이 점차 심해지면서 새로운 신분제 사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올 4월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여의도 더민주당 당사앞에서 신분상승의 상징으로 통했던 사법시험을 존치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뉴시스 자료사진

IMF 보고서에 의하면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45%. 1995년엔 29%에서 불과 20년만에 16% 포인트 상승.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12%로 높아졌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자산 계층 상위 10%가 전체 부의 66%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가 소유한 부는 전체의 2%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율도 80년대 연평균 5.0%에서 2010~2013년 8.2%로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률은 2%로 둔화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득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임금소득 비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버려진 지구와 1%만을 위한 세상을 묘사한 영화 ‘엘리시움, 지옥 같은 맨 뒷 칸과 천국 같은 맨 앞 칸으로 서열화된 세상을 묘사한 ’설국열차‘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영화 속에선 풍자를 하면 그만이지만 현실 세계에선 그냥 비난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문제 의식을 공유해야 하지만 비난만으론 문제 해결이 안 된다. 기성 세대가 물러나지 않아 젊은이들이 취직을 하기 힘든 것으로 여기는 식의 세대 간의 갈등이 되는 것도 사회적 긴장감만 높일 뿐이다.

일자리 감소, 성장주체 소멸, 교육 사다리역할 상실...새로운 모델 찾아야 할 때

신계급사회가 되고 있는 원인과 해결방안을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성장둔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다. 결국 임금 소득 비중이 감소하면서 자산 소득만이 증가하면서 소득과 자산의 불균형 심화를 초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성장이 회복돼야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아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현실적인 대안은 일자리 나누기밖에는 없다. 여기엔 노동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하고 있듯이 기업 중심의 접근법으론 어렵다. 노동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진정성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려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동시에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둘째, 성장 주체의 소멸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생기고 새로운 부자가 등장해야 계층 이동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금세기 들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은 게 전혀 없으니 기존의 부유층이 고착화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재벌중심, 수출주도, 부채의존의 성장모델을 대신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릴 새로운 성장 모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면세점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은 지대 수익만 추구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다.

기존 모델은 무너졌으나 새로운 모델은 세워지지 않았다. 기존의 성장 모델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고선 이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과감하게 탈피하고 중소기업들이 기를 펼 수 있는 기반 조성이 절실하다.

교육 제도도 계급화에 기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교육 제도가 이른바 계층 사다리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필자가 보기엔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을 줄이겠다며 끊임없이 바꾼 결과 복잡하기 그지 없는 현행 입시 제도가 신분제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 본고사가 있던 시절엔 책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었지만 오늘날엔 전략을 세우고 스펙을 쌓고 컨설팅을 받지 않고선 곤란하다. 좋은 인프라를 갖춘 지역에 살며, 부모가 옆에서 도와주는 경우가 결정적으로 유리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막연한 이상론에 치우쳐 만들어진 현행 입시제도를 전면 개혁해서 단순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본고사 부활을 금기시해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미국을 본 따 만든 어설픈 로스쿨 제도도 신계급 사회를 낳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새로운 모델을 찾지 않고선 성장도, 소득불균형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다. 발 밑의 용암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 전에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와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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