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tkks@me.com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어떤 책이 유익한지 또한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코노뉴스는 독자들에게 책의 내용과 특징을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김선태 휴먼앤북스 주간의 서평을 싣는다.

▲ 김선태 편집위원

김선태 주간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왔다. 김주간은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편집자주

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

동물 학대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이책은 한 수의사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인간 우선’이라는 논리 하에 자행되는 생명 경시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동물들에게 가해진 고통이 거꾸로 인간 사회에 파괴적인 악순환을 몰고 올 것이라 단언하며, 무엇이 동물을 대하는 올바른 관점인지 묻는다.

통계 하나를 보자. 2016년 4월 기준으로 한국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수는 약 600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이는 3∼4가구당 1마리에 해당한다. 유기동물의 수도 많아 2013년 6만2119마리, 2014년 5만9180마리, 2015년 5만9633마리로 집계되는 등 매년 6만 마리 내외를 유지한다. 이는 유기동물보호소나 보호센터가 집계한 숫자이므로 전문가들은 실제 유기동물을 연간 10만 마리 이상으로 본다.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조’된 유기견이라 하여 그 운명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새 주인을 만나는 개는 30%에 불과하며 나머지 유기견들은 안락사 되거나 병사한다. 주인이 반려견을 유기하는 순간이 곧 동물 학대의 시작인 셈이다.

개 등 유기동물 한해 10만 마리 이상...갈수록 동물학대 심화

개를 대하는 관점이 나빠진 탓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이 줄고 ‘반려동물’이라는 명칭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생명권’과 ‘동물권’이라는 말이 언론 보도나 각종 발표문에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유기되는 반려동물은 줄지 않고 오히려 전반적인 동물 학대는 심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유기동물, 길거리 동물, 축산 동물 세 범주로 나누어 살피는데, 뒤로 갈수록 문제는 구조화되고 인간의 잔혹성은 가혹해짐을 알 수 있다.

유기동물 대책으로 동물병원이나 보호소, 즉 동물보호협회에 데려다 주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 사적 기관인 병원이 감당할 수준이 아님은 분명하다. 저자 자신이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출근길에 종종 병원 앞에 놓이는 커다란 박스만 보면 가슴이 덜컹한다. 그런데 동물보호협회도 보호 공간이나 인력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고, 실제 유기된 경우 주인이 찾아갈 리 없으므로 이곳 동물들에게 일반적으로 취해지는 조치는 안락사다. 그것도 시한은 보통 10일, 서울은 20일이다.

▲ 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 저자 박종무 출판 리수 발매 2016.06.15.

다른 한편 유기동물을 대책 없이 모으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하는데, 이들로 인한 동물 학대가 만만치 않다. 산자락에 세운 판잣집에서 수백 마리의 유기견이 사육되는 장면이 방송을 타서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일이 적지 않은데, 한마디로 지옥도를 방불케 한다. 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한 쪽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처분이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처참한 환경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유기견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 동물을 버리지 않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강아지는 장난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에 이 문제는 해결 기미가 없다.

버려지는 동물들은 살기 위해 자구책을 찾는다. 먼저 무리를 지어 다니고, 도시 외곽 지대에 터전을 잡고, 일부는 산으로 올라가 야생에 적응한다. 재개발 지역의 개떼, 들개가 된 북한산 유기견, 도심을 활보하는 고양이 무리들이 대표적이다. 그로 인해 인간은 반격을 당한다. 동물들이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도 환경이 인간을 공격한다.

이와 달리 매년 늘어나는 반려동물과 식용동물의 수요를 채우고자 개∙고양이 번식장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번식장의 목표는 오로지 많은 개체를 만들어 많은 이윤을 얻는 데 있으므로 동물의 건강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그러하듯 개 또한 반려견과 육견으로 구분되어야 할 이유가 없을 터이다. 날 때부터 바닥이 숭숭 뚫린 철망 위에서 음식쓰레기로 연명하다 종내 보신탕 집에 팔려가 일생을 마감하는 ‘육견’을 상상해 보자. 반려동물로 키워져도 팔리지 않으면 그 최후는 다르지 않아, ‘폐견’이라 불리는 나이 든 대형견들은 대개 작업실로 끌려가 감전사 당한 뒤 도살된다. 법적으로 개 도살은 불법이 아니며 보신탕용으로 팔리는 개의 종류에는 구분이 없다.

이 문제는 인간이 동물에 비해 어디까지 우선해야 하는가, 생명에 경중이 없다는 말은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생태계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일은 많고 이를 위해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르기도 한다.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재돌이’를 제주 앞바다에 풀어준 일이 하나의 사례다.

하지만 몇 만 몇 십만도 아닌 몇 백만 몇 천만 마리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동물 학대에 이르면 문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오로지 식용으로 사육되는 축산동물 이야기다. 닭의 경우 자연 수명은 20~30년이지만 닭공장에서 그 수명은 ‘기술발전 덕에’ 35일로 줄어들었다.

동물에게 자행하는 인간의 학대 합리화해서는 안돼

닭공장의 상황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소나 돼지도 점점 이와 비슷한 상황에 내몰리는 중이다. 송아지를 몸에 꼭 끼는 사육장에 가둔 뒤 목에 줄을 묶어 철분을 뺀 대용유만 먹여 빈혈에 걸리게 한 다음 도축하면 '육질이 아주 부드러운'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유럽에서 금지된 이 방식을 미국은 여전히 고수하는 중이다.

오늘날 인간이 필요로 하는, 혹은 인간에게 제공되는 축산동물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위해 도입되는 첨단의 사육방식 역시 늘어만 간다. 거기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 따위는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 역시 위협받고 있다. 극단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사육된 동물들이 바이러스에 취약해진 결과 발생한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그렇고, 가축전염병에 걸린 동물을 한꺼번에 수백만 마리씩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역병이 그렇다.

저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인간이 동물에게 자행하는 학대를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법칙이 아니라 폭력이며 인간의 탐욕과 이윤의 논리를 감추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우리 곁의 동물들을 찾아 그 눈을 들여다보자. 살아 있는 동물들의 눈빛은 다 아름답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