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대구 출신의 5선인 추미애 의원이 27일 전당대회를 통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에 선출됐다. 60여년 야당 역사에서 대구·경북(TK) 출신 여성 당수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천년민주당 시절인 2000년 경북 울진 출신의 김중권 대표가 첫 영남 출신 대표에 올랐으나,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경우로 당원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당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역사가 쓰여진 셈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

특히 추 신임 대표의 당선은 지역구 5선으로 정치의 관록을 쌓은 여성 정치인이 당 대표가 됐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지난 8월 선출된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와 함께 2017년 대통령선거 경선과 당무 전반을 책임질 여야의 사령탑 진용이 완성됐다.

정치 흙수저의 신화를 이룬 이정현 대표와 여성 법조인 출신으로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위해 헌신해온 5선 정치인 추미애 대표가 여야 정당의 대표가 됐다는 점에서 2017년 대선 국면을 맞는 한국 정치사는 새로운 변화의 단계에 진입했다.

여야 모두 국민을 섬기는 통합의 리더십 회복해야

추 신임 대표는 이날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차기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45%)와 권리당원 투표(30%), 일반 여론조사(일반당원+국민·25%)를 합산한 결과, 김상곤 이종걸 후보를 누르고 대표로 당선됐다.

추 대표는 최고 비율이 반영된 대의원 현장투표에서 51.53%의 득표율을 보였고, 사전에 진행된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61.6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추 대표의 승리는 총 득표율 54.03%로, 이종걸 후보 23.89%, 김상곤 후보 22.08%를 큰 격차로 제치고 이룬 당선이라는 점에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갖는다.

추 대표는 제1야당의 대표로서 공정한 대선국면 관리를 통해 수권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중대 과제를 안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이정현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뉴시스

특히 민생의 고통이 심하고 정치 혁신을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수권 정당으로서 야당을 이끌 당 대표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법조인 시절 3당 합당 규탄시위로 연행된 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등 소신 판결로 주목을 받았고 정계 입문 이후 개혁과 혁신,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정치철학을 실천해온 점은 기대를 갖게 할 만 하다.

탄핵·노동법 통과 과정에서 보여준 극단적 행태를 극복하고, 통합과 소통, 경청과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여성 정치지도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친박 패권주의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친문재인 계파가 당 지도부를 사실상 장악했다는 점이다.

추 대표와 함께 권역별로 선출된 5명의 최고위원과 여성-최고위원도 친문 인사들이 차지함으로써 친문 진영은 당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나, 대선 승리를 위한 외연 확대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특히 여성 부문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친문진영의 권리당원의 지원을 받은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원외인사 양향자 후보가 재선의원인 유은혜 후보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이번 전대에서 친문 성향 당원들의 지원 속에 승리한 추 대표가 향후 대선을 위한 경선 과정도 친문 편향적인 관리에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를 짙게하고 있다.

추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저에게 모아주신 한표 한표가 분열을 치유하고 강력한 통합으로 강한 야당을 만들어 내라, 공정 대선 경선으로 승리하는 후보를 만들어 내라, 2017년 12월 20일 반드시 정권교체 해내란 명령으로 알고 받들겠다"며 "집권을 위해 여러 개의 나눠진 보조경기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주경기장을 만들어내자. 공정한 대선 경선을 반드시 중심 잡고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를 포함한 신임 지도부는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 전체 야권의 힘을 모으는 공정경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자칫 친문 패권주의라는 비판 속에 대선 실패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도 위기를 맞고 있다. 새누리당 8·9전당대회 대표 수락연설에서 이정현 대표는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과 비박 그리고 그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지만, 기세등등한 친박 세력에 둘러싸인 이 대표의 운신 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친박색이 짙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첫 당직인사를 한 데 이어, 탕평인사 등 대통령에게 건의한 사항들은 대부분 거부됐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에 대해 제대로 건의조차 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이고 있다.

▲ 추미애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뉴시스

그동안 권력에 유착해온 검찰의 수사는 우 수석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으로 몰아가고 곁가지 수사에 치중하는 견강부회 양상을 보이면서 국민적 분노를 키우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 대표를 사실상 비서 출신의 당직자로 인식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04년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을 당시부터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를 때까지 시종일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였다.

서청원, 김무성, 유승민, 최경환 같은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을 위해 실무 심부름을 하는 원외 당직자에 불과했기에 그를 보는 친박들의 눈초리도 싸늘하다.

자기 세력도 없는 주변부 친박, 심지어 ‘홀로 친박’을 의미하는 ‘홀박’으로 불리던 이 대표에게 친박 진영이나 청와대가 힘을 실어주지 않는 한 대외적 위상이나 대야 협상력이 생길 리 만무한 상황이다.

이 대표가 민생과 서번트리더십을 이야기하지만, 여당 대표가 정치력과 협상력이 없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정치의 현실이다.

추미애, 비판과 견제-정책과 입법으로 유능한 야당 만들어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 21세기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이를 치유하려는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소통과 경청, 실천의 리더십, 헌신과 배려의 정신과 쉼없는 실천에 나설 때 해결할 수 있다.

▲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기를 흔들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정부, 여당과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소하고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실천함으로써 국가의 미래를 밝히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핵문제 등 외교 및 남북관계 부문의 변수뿐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의 민생과 경제 상황은 심각함을 넘어서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정부와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비판을 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때로는 대통령과 맞서더라도 정치력을 발휘해 이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현하면서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길일 것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출산 보육 교육 취업 노동 퇴직 고령화로 연결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적극 해결하고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펴야하며, 추미애 대표 역시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과 맞서 국민의 편에서 정치적 해법과 정책적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추 대표는 4.13총선에서 나타는 민심을 바탕으로 강인하고 유능한 야당으로 거듭남으로써 무능한 불통의 정치에 지친 국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정권의 실정을 선명하고 끈질기게 비판하고 견제하면서 더불어 구체적 정책과 입법으로 민생을 살펴야 한다. 고통받는 세월호 유족들, 길거리를 헤매는 서민들, 자살을 선택하는 빈곤층 등 정치가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국민들에게 정치의 존재를 확인시켜야 할 것이다.

이정현-추미애 두 대표가 정치권과 다양한 사회집단,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독선과 불통의 정치에 맞서 국민의 편에서 우리 정치를 바로 세워주기를 소망해본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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