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리뷰-7.탠저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 김선태 편집위원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이 유익한지 또한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코노뉴스는 독자들에게 책의 내용과 특징을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김선태 휴먼앤북스 주간의 서평을 실는다.

김선태 주간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왔다. 김주간은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편집자주

탠저린...놀라운 혁신과 디자인에 관한 25가지 통찰력

21세기를 전후한 현대 산업디자인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고 있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탠저린(Tangerine)의 독보적인 결과물과 그 속에 담긴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놀라운 혁신과 디자인에 관한 25가지 통찰력’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탠저린이 설립 25주년을 맞아 스스로 자신들의 경영 철학을 집약해 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탠저린은 세계 각지의 기업들과 작업하면서 그들의 제품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어 내는데 기여해 왔다. 한국의 아파트들이 대부분 고만고만한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을 때, 후발 주자인 삼성은 래미안 아파트로 일대 주거 혁신을 일으키며 단숨에 건설업계의 황제로 떠올랐다. 탠저린 디자인 컨셉이 위력을 발휘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래미안 디자인에 대해 탠저린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디자인정신은 과거와 미래, 친숙함과 특별함에서 우러난다”

▲ 탠저린 저자 안토니아 힉스 출판 마일스톤 발매 2015.06.10.

“디자인 정신은 과거와 미래, 친숙함과 특별함에서 우러난다. 솜씨 좋게 섞으면 분명하고 일관성 있으면서도 특징 있는 향을 낼 수 있다.”

탠저린의 실적에는 세계적인 한국 제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케이스 같은 소형 디자인에서 LG전자 냉장고 같은 중형 디자인을 거쳐 아시아나 여객기 내부, 현대중공업의 중장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그때는 디자인을 ‘스타일’이라는 말 대신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보기 좋은 형태와 예쁜 색깔로 포장하는 것으로 여겼지요. 그러다가 점점 간결하고 절제된 유럽형 디자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탠저린과 손잡은 때를 LG 김영호 연구위원은 이와 같이 회고한다. 그들이 탠저린의 컨셉을 모두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저 기술을 포장하던 것에 불과했던 LG 제품의 디자인에 탠저린은 스토리를 가미해 주었고 그것이 유럽시장에서 성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영국항공을 불황의 늪에서 건져낸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은 이래 탠저린은 유니레버, 다코다, 도요타, 시스코와 니콘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디자인 컨설팅을 의뢰받았다. 애플의 디자인총괄 수석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가 탠저린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단순히 디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 나아가 사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탠저린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배경이다.

날마다 밀려드는 수많은 제품들을 연구하면서도 탠저린은 고유의 디자인 목표를 놓치는 법이 없다. 정확한 답을 도출하기 위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고객에 대해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발휘하며, 마케팅·제조·디자인·R&D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들이 그 일부다.

스토리텔링은 역점목표...아모레, ‘아리따운 한국의 브랜드’ 탄생

성공적인 브랜드를 감싸는 스토리텔링은 탠저린이 특히 역점을 두는 목표다.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탠저린의 힘을 빌리고자 했을 때 이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탠저린은 ‘디자인의 진정성’을 찾아내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그 결과 전 세계 고객을 사로잡는 ‘아리따운 한국의 브랜드’라는 스토리가 탄생했다.

디자인의 최강자라는 애플조차 까다로운 유럽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탠저린의 힘을 빌렸는데, 당시 디자인 담당자였던 로버트 브루너는 그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그들이 힘을 모아 미래의 도전과제를 구상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랐습니다. 영국 디자이너들이 창조한 콘셉트는 간결하면서도 멋있었고 또 특별했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제조업을 꿰뚫어보고 목표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상당했지요.”

탠저린의 마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화웨이와 손잡고 이 중국 회사에 경천동지할 혁신을 일으켰다. 고작 20명 내외에 불과한 탠저린 직원들에게 세계인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창조해내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듯하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탠저린은 “기업이 세계 문화를 수용하도록 도와 그들이 세계적인 기회를 잡을 공통언어를 배우게” 해준다.

세계 전역에 걸친 그들의 고객사 목록에서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