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리뷰-5.일등의 통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 김선태 편집위원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이 유익한지 또한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코노뉴스는 독자들에게 책의 내용과 특징을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김선태 휴먼앤북스 주간의 서평을 실는다.

김선태 주간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왔다. 김주간은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편집자주

일등의 통찰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 P&G는 연륜에 걸맞게 대중들로부터 존경받는 동시에 탁월한 마케팅 능력을 발휘해 온 회사다. 이 회사가 일본에서 쓰라린 맛을 본 적이 있다. 당시 P&G는 “뜨거운 물이거나 미지근한 물이거나 상관없이 모든 온도에서 빨래의 때가 빠진다”는 광고 구호를 앞세워 분말세제 신제품을 내놓았다.

이 광고는 본거지인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미국은 수질이 좋지 않아 뜨거운 물을 사용해 빨래하는 일이 관례였기 때문에 찬물에도 때가 잘 빠진다는 말에 소비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문제는 일본인데, 여기서는 누구나 찬물로 빨래하기 때문에 저 구호가 먹혀들 리 없었다. 결과를 볼 것도 없는 일이다.

글로벌 대기업이라 해도 시선이 현상에만 머물고 말아 자신들이 거둔 성공의 요인을 불변의 가설로 착각하면 이처럼 쓰라린 패배를 겪는다. 이와 달리 정보의 홍수 가운데서 현상 이면의 인과관계 즉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통찰력 사고’라 부른다.

▲ 1등의 통찰 저자 히라이 다카시 출판 다산3.0 발매 2016.06.28.

시스템 다이내믹스...사물의 본질과 변화방향을 깨우치게 해주는 이론 

미 MIT 대학교는 이 분야에서 걸출한 연구 성과를 내면서 ‘시스템 다이내믹스’라는 독보적인 경영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모델’과 이를 움직이는 ‘다이너미즘’을 결합하여 사물의 본질과 변화 방향을 깨우치게 해주는 이론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영을 포함한 광범위한 문제 해결에 ‘시스템 다이내믹스’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준다. 시스템 다이내믹스 자체는 일찍부터 통용되어 온 개념이다. 그와 관련된 획기적인 사건으로 MIT 연구진이 1972년 로마 클럽에 제출한 연구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일을 들 수 있다.

'성장의 한계'는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파괴되어 지구를 위기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적용한 방법론이 시스템 다이내믹스였다.

이론에 따라 연구진은 ‘세계 모델’을 만들었고, 그와 함께 도출한 결론이 ‘성장에서 균형으로’ 세계 경제의 모델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고도성장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므로, 이 메시지는 큰 충격을 안겼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 보고서가 예견한 대로 지구는 성장 중심주의로 인한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사물의 본질에서 찾고, 이를 다시 모델과 다이너미즘의 연관 관계로 파악한다. 어떤 모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내부 구조와 인과관계를 함께 살핀다는 뜻이다. ‘통찰력 사고’의 정의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한 모델이라도 그에 내재된 다이너미즘을 무시하면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

일본 삿포로맥주는 2004년 완두콩을 사용한 '드래프트원'을 발매해 ‘제3의 맥주’라는 찬사를 받으며 업계를 주도했다. 회사가 승리를 만끽하는 사이 자본력이 탄탄한 기린과 아사히 등 경쟁사들이 또 다른 ‘제3의 맥주’를 내놓았고, 삿포로 맥주의 실적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진입 장벽이 낮은 제품 특성을 무시한 채 제품을 내놓는 즉시 ‘다음 화살’을 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저자는 이를 “오늘의 해결책이 내일의 문제를 낳은 사례”라고 말한다.

저자는 ‘통찰력 사고’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단계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그리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모델을 해석하고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모델을 해석한다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문제 뒤에 숨어 있는 모델을 그림으로 그려 각 요소들 사이의 인과관계 즉 다이너미즘이 눈에 즉시 보이도록 할 때 본질은 시각화된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통찰력 사고의 2단계’라 부른다.

자동차업계를 보자.

현대차는 고객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디자인에 집중한 결과 극적으로 시장점유율 확대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제조층’ 영역(저자는 이를 ‘레이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의 싸움이다. 이 영역에서만 보면 BMW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모델로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고객들은 BMW가 시대를 앞질러 가는 자동차라고 생각하며 회사 역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이를 ‘차를 만들기 위한 조직층’ 영역의 싸움이라 말한다. 두 자동차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선전하고 있으며, ‘차를 만들기 위한 조직층’이 ‘자동차 제조층’에 비해 본질적으로 우월하다. 결론은 이 모델이 유지되는 한 현대차가 BMW를 밀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근본적 해결책이 없다면 차선책 세워야...'레버리지 포인트' 개념 제시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해결책은 모델을 바꾸는 일인데, 이를 저자는 ‘통찰력 사고의 3단계’라 부른다. 이때 두 가지 대안을 상정할 수 있다. 하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임시방편을 세우는 일이다.

당연히 근본적인 해결책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재 돌아가고 있는 모델을 한꺼번에 바꾸기가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임시 방편을 세울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이 ‘레버리지 포인트’ 다.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드는 지렛대의 원리처럼,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지점에서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욕조에 가득 찬 물을 빼려고 바가지를 들고 씨름하는 대신 배수구 마개를 빼는 식이다.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데 각국이 합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레버리지 포인트를 이용한 문제 해결 사례 하나를 보자. 미국 뉴욕시는 오랫동안 흉악 범죄로 골머리를 썩여 왔는데, 이 일로 고민하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은 ‘범죄와의 전쟁’ 같은 전면전을 택하는 대신 ‘경범죄 단속’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 총기강도가 득시글거리는 중에 지하철 낙서를 단속한다니, 초기에는 뜬금없는 조치라고 비난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흉악 범죄율이 놀랍게도 크게 줄었다. 사소한 범죄를 자주 저지르는 사람이 흉악 범죄자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에 착안, 경범죄 단속을 레버리지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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