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주역의 매력

주역… 무슨 매력으로 읽을까. 주역읽기를 거듭할수록 독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거대한 옴니버스 스토리(omnibus story)로 빨려 들어간다. 옴니버스 스토리란 한 편의 소설이 몇 개의 콩트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콩트는 단편소설보다 짧은 소설로 대개 인생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64개의 괘는 거대한 드라마다. 주역은 장장 64개의 콩트로 이루어져 하나의 콩트가 끝나면 다음 콩트로 이어진다. 하나의 콩트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지만 이내 다른 콩트의 전제가 된다.

이렇게 이어지는 64개의 콩트는 전반부 30개와 후반부 34개로 나뉜다. 전반부를 상경(上經)이라 말하고 후반부를 하경(下經)이라 말한다. 이 콩트의 순서를 해설한 공자의 논문이 서괘전(序卦傳)이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듯이, 하나의 콩트는 전혀 다른 국면을 묘사하는 콩트로 이어져 단순한 음양의 조화는 복잡하고 풍부한 파노라마로 변한다. 또 복잡하고 다면적인 이야기는 다시 단순한 음양의 움직임으로 명료해진다.

매력적인 글들…

작가 김 훈의 ‘칼의 노래’라는 소설이 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그린 소설이다. 16년 전 2001년으로 기억한다. 나는 우연히 ‘칼의 노래’를 읽고 작가가 궁금해졌다. 그 이전에 나는 이순신 전기를 몇 차례 읽어본 터여서 ‘칼의 노래’가 주는 감흥은 각별한 것이었다. 작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다. 당시 작가가 몸담고 있었던 시사저널 후배에게 부탁해 작가의 연락처를 얻었다. 당시 작가 김 훈은 정식인터뷰도 아닌 만남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나는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일산 외각의 단독주택가 일층 카페에서 그와 만났다. 네 시 쯤이었으니까 다른 손님은 없었다. 조용한 오후였다. 작가는 수수했지만 자유로왔고 단정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봐도 그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행운이었다.

맥주로 목을 축이며 ‘칼의 노래’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 김 훈은 '난중일기'를 한문 원본으로 읽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 자체가 궁금해졌다. 그 후 나는 국민학생 버젼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읽은 서양책 중 최고의 책을 고른다면 무엇이냐고. 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문학책일 것을 예상이었던 나에게 순간적인 충격이었다.

또 다시 물었다. 동양책 중 최고를 고른다면 무엇이냐고. ‘논어’였다. 이것 또한 내 예상을 벗어났다.

또 질문을 던졌다. ‘자본론’과 ‘논어’중 무엇이 한 수 위냐고. 답은 ‘논어’였다. 나는 ‘자본론’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 공자가 주역을 경전으로 승격시켰다 할 만큼 만년에 주역에 심취했으며 십익(十翼)을 저술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중국 후난성 창샤시 악록서원에서 열린 공자 탄생 2565년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공자상에 절을 드리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논어가 자본론보다 한 수 위인 까닭

나는 ‘논어’가 ‘자본론’보다 한 수 위인 까닭을 물었다. 그가 답하길 ‘논어’는 인간을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했고, ‘자본론’은 인간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나는 그 후 그의 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엇이 한 수 위일까.

당시 공자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에게 그의 말은 내가 공자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결정적 훈수였다.

그렇다면 논어와 주역은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유가 경전을 고르라면 대체로 논어와 주역을 드는데 둘 중 또 하나를 고르라면 ‘논어’를 고르는 학자가 많다고 한다.

논어와 주역은 전혀 다른 성질의 글이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 포함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후대에 제자들이 기록한 글이다. 행위가 있은 연후에 기록한 글이다.

주역은 이와 아주 다르다. 주역은 가상의 글이다. 성인들이 세상의 모습과 인간사의 모습을 통찰하여 포괄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전체적으로 구성한 기호이며 글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논어의 이해는 주역의 이해를 깊게 할 것이며, 주역의 이해는 논어의 이해를 깊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역은 유가(儒家)의 경전만도 아니다. 도가(道家)적 해석도 불가(佛家)적 해석도 가능하다. 기독교적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주역은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이자 옴니버스 스토리다. 왕초보 여러분! 이 뜨거운 여름날 장대한 드라마에 빠져보시길…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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