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주역과 훌륭한 죽음

잘 사는 것 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삶과 죽음을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던가. 주역사(周易史)에서 유명한 인사들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주역을 만들었던 문왕이 그랬고, 그의 아들 주공이 그랬다. 공자 또한 마찬가지다. 신유학을 열었던 주렴계 소강절 정이 형제 주희 등은 좀 나았지만 주역읽기를 시작하면 삶과 죽음을 훈련하게 된다. 삶과 죽음 가운데 배회하는 고독과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이순신과 정약용은 긴 세월 주역을 끼고 살았다.

내가 본 격조 높은 죽음

나에게 돌아가신 분들 중 유독 기억이 나는 분이 있다. 아주 평범한 삶을 사셨지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한 분이다. 그 분은 어머니의 셋째 삼촌, 그러니까 네 째 외조부셨다. 그는 일제시기 경성제일고보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 후 그는 한의사로 평생을 보내셨다. 면허증 없는 돌팔이 한의사로.

70년대 80년대를 보내셨던 그는 한가한 시간이면 주역을 읽으셨다. 그는 다른 어른들과는 달랐다. 어린이나 청년이나 타인들에게 너그러웠다. ‘꼰대’와 같은 것은 전혀 없으셨다. 정치적으로도 편중됨이 없었다. 현실적인 영화는 없으셨지만 늘 평온을 유지하셨다. 그러시던 분이 돌아가신 후 나는 그의 딸로부터 임종을 맞이한 그 분의 태도를 들었다. 놀라웠다.

그는 1년전부터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늘 하시던 체조는 계속되었다. 달라진 것은 다섯이나 되는 아들 딸을 불러 대화하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삶에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들 딸들이 어린이들도 아니었다. 다들 40이상의 장년들이었으니까.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은 대체로 이맘때 죽을 것이며 그 즈음 병원에 입원시켜 애써 생명을 연장시키지 말라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 주역 64괘에서 전개되는 다양하고 다층적인 스토리는 자연의 한 조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은 지난 5월 국내 처음으로 조성된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국유수목장림./뉴시스 자료사진

 

주역은 삶과 죽음의 스토리다

나는 그분이 그렇게 훌륭한 죽음을 준비했고 그렇게 돌아가신 데는 주역읽기가 한 몫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주역읽기를 통해 늘 삶과 죽음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주역은 흥망성쇠의 스토리다. 64괘에서 전개되는 다양하고 다층적인 스토리는 자연의 한 조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주역 계사전에서 一陽一陰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라 하였다. 한 번 밝고 한 번 어두운 것 이것이 도라고. 달리 말하면 삶과 죽음이 늘 교차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주역은 죽음을 살피지만 삶을 저버리는 것이 전혀 아니다.

언젠가부터 웰다잉(well-dying, 잘 죽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편안하게 죽는 것 정도로 죽음을 격하시킨 느낌이다. 혹은 유복하게 죽는 것 정도로 죽음을 돈으로 직결시켰다. 물론 유복할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죽음을 맞이할 때의 하나의 환경일 따름이다.

이때 동아시아 사유의 위대한 전통, 군자유종(君子有終)을 떠올림도 좋겠다. 죽음을 유종(有終)이라 불러주는 데는 특별한 정황이 있다. 시작(始)이 있었던 자에게만 종(終)이 있듯이 뜻을 세운(立志) 자들만이 마무리(終)가 있다. 그렇기에 군자만이 끝이 있다. 뜻을 세움이 없이 대충 살아간 사람들의 죽음을 일컬을 땐 그냥 사망(死亡)이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임종(臨終)이란 표현은 엄격하게 말하면 아주 각별한 존경의 표현이다. 이 시점에서 과연 나는 뜻이 있었던가? 답이 쉽지 않다.

유종(有終)있기 위해서는 “죽어서야 인을 실현하는 일이 끝난다”고 했던 공자의 사이후이(死而後已)의 관점을 갖는 것도 좋다. 즉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이란 긴 여정이라는 것.. 그래서 한 시라도 자신을 갈고 닦는데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국면이라도 반드시 그 어려움은 편안함으로 나간다는 것. 이것이 주역이 전개한 삶의 이야기이자 죽음의 이야기이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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