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4월 골프채널에서 베트남 하노이 골프투어를 소개한 적이 있다. 2명의 한국여자 프로골퍼와 농구스타 양희승과 개그맨 등 남자 2명이 프로암조로 나누어 겨루는 경기였다.

경기 내용보다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 베트남에도 저런 골프장이 있나 감탄했었다. 피닉스CC였는데 경치가 정말 무릉도원같아 이름에 걸맞구나 생각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대우중공업에서 5년전 은퇴한 대학 동기가 작년에 다시 하노이 특장차 공장장으로 스카우트돼 나간다 해서 친구들이 축하해 주었다.

캐나다에서 티칭프로 자격을 딴 친구였는데 올해 5월에 잠깐 서울에 다니러왔을 때 그 골프장을 물어봤더니 한국인이 경영하는 54홀이나 되는 하노이 최고의 골프장이란다.

이번 여름 태국 방콕 여행을 계획하면서 준비하다보니 베트남항공을 타면 같은 가격으로 하노이에서 며칠 묵다가 방콕까지 갈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노이에 있는 친구에게 우리 부부가 함께 갈테니 골프를 한수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하노이 호텔보다 아예 피닉스 골프텔에서 묵으면서 새벽에 운동하고 오후에 쉬는 일정이 더 싸게 든다고 예약해 주었다. 물론 법인회원권이어서 절반가격이라 그린비 포함한 값이 호텔 숙박 수준과 비슷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저녁 9시쯤 도착해 통관하고 친구가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1시간 반달려 골프텔에 도착했다. 피닉스는 하노이에서 서남쪽으로 20㎞ 정도인데 절반은 고속도로, 나머지는 일반도로를 달려 밤 11시쯤 도착했다.

100실 가까운 규모인데 예약 손님이 우리 뿐이었다. 한국인 골프손님들이 대부분이어서 겨울에는 꽉차고 여름에는 텅 빈단다. 새벽 5시쯤 일어나 보니 창문밖에 TV에서 봤던 석회암 절벽이 가로막았다.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뷰였다.

▲ 중국 구이린(桂林)의 이강에서 어린이들이 한가롭게 멱을 감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20년 전 계림에서 본 풍경이었다. 1996년 처음 중국의 구이린(桂林)을 갔을 때 비행기서부터 ‘와’하는 탄성이 나왔다. 평지에 젖봉오리 같은 산이 봉긋봉긋 솟아있다. 공항에 내려 보니 주위에 온통 벼낫가리다. 2박 3일간 계림시내를 흐르는 이강(離江) 양쪽 연안을 정신없이 걸었다.

호텔방에서 강을 건너 대나무숲 위 석회암 동굴이 있는 절벽과 얕은 곳에는 물풀을 뜯는 물소떼의 실루엣이 한편의 동양화였다.

이강 크루즈를 하면서 주변 동양화 풍경과 대나무뗏목 타고 가마우지로 고기잡던 댓잎모자를 쓴 노인네들의 장대 배젓기가 인상적이었다.

97년 베트남 기자협회 초청으로 하노이를 방문했다. 베트남의 독립영웅이며 국부인 호찌민( 胡志明·호지명)박물관,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던 형무소가 인상적이었다.

이틀째 하노이 주위의 명승지라는 꽝닌성의 하롱베이를 방문했다. 당시는 포장이 되지 않아 70km거리를 7시간이나 달리다 보니 지쳤다. 갑자기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의 실루엤을 보자 1년 전 계림을 처음 보던 느낌이었다. 바다의 계림이라고나 할까?

10년 뒤인 2006년 두 번째 계림과 하롱베이를 비슷한 시기에 방문했다. 계림에는 약간 실망했다. 이강 상류에 댐이 생겨 수량이 반으로 줄고 그 맑던 강물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수량이 줄어 이강크루즈도 못하고 상류 쪽으로 올라가 물이 흐르는 석회암 동굴인 풍위암(豊魚巖)을 관통하는 동굴뱃놀이로 대체됐다.

몇 달 뒤 후배 기자들과 10년 만에 하롱베이에 들렀다. 그들은 내가 처음 방문했던 때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상가옥에서 바다생선과 해산물로 풍성했던 소주파티도 좋았다. 두 번째 보는 동티엔궁 석회동굴은 우리나라 남한강, 동강 지역의 고수동굴이나 울진의 성류굴, 삼척의 환선굴 등보다 감동이 적었다. 하롱이라는 말이 한자의 하룡(下龍)에서 온 것임을 처음 알았다. 나라를 구해준 용왕의 분신이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다는 전설이었다.

세번째인 이번 하롱베이 방문은 집사람을 위해 하노이의 여행사를 섭외해서 미니버스에 20여명이 함께 탔다.

우리 부부와 하노이에서 사업을 하는 아빠를 방문한 모녀 등 한국인 5명, 중년의 일본인 4명, 2명의 미국 청년, 영국인 부부, 베트남 여대생 2명, 중국인 남녀 5명 등 다국적군이었다. 20명을 픽업하기 위해 좁은 하노이 골목을 빙빙 도느라 태우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하롱베이로 가는 길은 하노이의 동쪽 바다문인 하이퐁으로 가는 고속화도로여서 공장지대나 산업시설이 많았다. 20년 전보다 절반인 3시간 반밖에 안 걸렸다.

갯벌 위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 부두에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하롱만의 그 봉긋한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사람도 계림을 다녀왔기에 ‘바다의 계림’이라 말했다.

새 다리가 놓인 곳이 한가한 선착장이었는데 바다 쪽으로 더 나가 새로 만든 선착장엔 현대식 보트가 빼곡하다. 부두 양쪽으로 상가와 리조트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여자 주인공이 은신했던 2,000개 가까운 섬의 절반 가량이 유인도였다.

▲ 베트남 하롱베이는 중국인들이 아름다운 자연으로 칭송하는 계림산수의 구이린(계림)과 견주어지는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뉴시스=이용남 작가기자

007 시리즈 ‘네버다이’의 촬영지란다. 1994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주민들을 다 이주시켜 이제는 수상가옥에서 가두리양식을 하던 어부들도 없다.

새로 7달러 짜리 뱀부보트와 카약타기가 추가됐다. 나이든 동양인은 거의 사공이 있는 대나무배를 타고 서양 젊은이들은 2인승 카약을 탔다.

보트와 카약을 타고 티톱섬, 키스바위, 코끼리섬, N고릴라섬 등 각종 동물이름이 붙은 섬들을 돌았다. 베트남 돈 20만동에 새겨진 쌍둥이바위섬을 돌아 바다굴을 통과하니 섬들로 둘러싸인 하늘이 보였다.

원숭이가 산다고 원숭이섬이라고 불리는 일대는 소리를 지르면 섬벽에 부딪혀 더 큰 메아리로 돌아온다. 여기저기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새로 개발한 관광상품이다. 옵션도 진화한다.

전혀 다른 지역이라 생각했던 이들 3개 지역이 연관이 있었다. 중국 광서장족자치구인 계림, 하노이서 가까운 피닉스 리조트, 하롱베이가 지도에서 보니 그리 멀지않다.

자료에는 2억5천만년 전 바다가 융기된 석회암지대였다. 중국은 계림과 해남도(海南島·하이난도)를 내세우고 베트남은 하롱베이를 관광상품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어진 카르스트 지형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강원도 삼척, 태백 고한의 하이원리조트, 영월의 동강, 단양의 고수동굴을 있는 계곡과 산들이 경관이다.

게다가 석탄과 시멘트를 나르던 철도망이 아직도 남아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 후 고속도로가 확충되고 알펜시아 리조트 등이 정비되면 동굴탐험, 카약이나 래프팅, 스키리조트, 골프투어 등 다양한 스포츠레저를 묶는 종합 관광지로 만들 수 있다./베트남 하롱베이에서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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