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교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6일 간의 국내 일정을 소화하고 30일 한국을 떠났다.

세계 외교계의 최고위직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고국 방문 때마다 환영받았던 반 총장은 이번 방한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 도전 의사를 표명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 김홍국 편집위원

반 총장이 올해 12월까지로 정해진 임기 동안 유엔 사무총장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대권 도전 논란은 자신의 유엔 내 직무 수행이나 대한민국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구설수 가득한 행보였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반 총장은 방한 첫날 관훈클럽 간담회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포부와 대권 도전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는 “남북 분단도 큰 문제지만 (남쪽) 내부에서 분열된 모습을 보여 창피할 때가 많다”,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내년 1월 1일이 되면 이제 한국 사람이 되니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결심하고, 필요하면 어려분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라는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국가 경영 의지, 즉 대권 도전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다.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대권 도전’ 표명과 구태행보, 자칫 총장 레임덕만 심화

반 총장의 대권 도전 의사 표명에 따라 4ㆍ13 총선 참패 이후 지리멸렬했던 새누리당은 반 총장의 방한과 대선 출마 의욕 표시 이후 활력을 되찾고, 대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아직 총선 참패의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고, 유승민 의원 복당 문제 등 내부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까지 오르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여당이 임기가 끝나지도 않은 유엔 사무총장을 끌어들여 당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활용하려고 해야 할 정도로, 무능하고 무기력하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처럼 커다란 정치적 논란을 촉발했던 반 총장은 미국 뉴욕으로 향하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방한 중의 활동에 오해가 없기 바란다”며 “개인적인 목적이나 정치적 행보와는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을 오도하고 현혹하는 무책임한 말이다. 그동안 신중하게 메시지 관리를 하며 보여온 ‘기름장어’ 반기문 총장의 화법치고는 너무 나간 언사다.

세월호 참사 등 민생의 어려움과 시민의 고통은 외면한 채, 충청정치계의 원로인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나고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은 구태 정치인의 전형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9일 오후 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의 고택인 충효당(忠孝堂·보물414호)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얀동=뉴시스

반 총장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 많은 우려를 남겼다. 방한 기간 반 총장의 언행에 대해 유엔 내부나 국제사회는 껄끄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반 총장의 방한 행보는 전임 사무총장이 임기 만료 직후에도 회원국이 정부직을 주거나 당사자가 그런 제의를 수락하지 말도록 권고한 유엔 결의와 정면으로 배치된 것이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7개월 남긴 시점에 돌출된 대선 행보라는 점에서 ‘유엔 총장직을 이용한 국내 정치 행보’라는 비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반 총장은 제66차 유엔 비정부기구(NGO) 콘퍼런스에 참석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내에서의 행동에 대해 과대 해석하거나 추측하는 것을 삼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이 배출한 유엔의 수장이 그동안 유엔에서 보인 결단력과 비전이 부족한 리더십으로 인해 비판받은 데 이어, 임기말에는 국내 정치에 개입되면서 레임덕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퇴임 후 존경받는 세계 외교계의 원로로서 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와 안전을 위해 중재자로서 활약해주길 기대한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반 총장은 대선과 관련된 각종 발언과 함께, 김종필 전 총리 면담,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포함한 친박 진영의 본거지인 대구경북(TK) 방문 등으로 대선 행보 논란을 자초했다.

특히 ‘충청과 대구ㆍ경북(TK) 연합’이란 지역 구도에 편승하려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에 따라, 국제사회의 지도자로서 이룬 성과는 가려졌고 ‘구태 지역 정치’를 답습하는 모습만 더욱 부각됐다.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유엔 사무총장의 중립적 권위를 스스로 흔드는 소탐대실의 행보다. 새로운 정치나 사회를 향한 비전 제시도 없었고,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건사고나 정부 실정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책임지려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불확실한 대권가도 우려...지구촌 분쟁 해결에 집중해야

그가 추구하려는 대권 가도 역시 불확실하다. 그는 유엔에서의 업적을 통해 국제사회의 권위를 가진 국가적 정치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보수 진영의 대선 주자군에 스스로를 포함시키는 우를 범했다.

정치 감각이 단편적이고 둔감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역대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비정치인 대망론’은 성공하기 어렵다. 곧 본격화할 대선 국면에서 진행될 험난하고 날선 검증 무대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 방한 일정을 마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출국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왼쪽)과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비판을 자제했던 각 정당이나 언론은 본격적인 검증에 돌입할 것이고, 정치력으로 단련되지 않은 관료 출신은 거센 네거티브 검증 국면에서 칼을 맞고 쓰러지기가 십상이다.

외교관의 정치인 변신도 성공한 전례가 없는만큼 어려운 정치행보가 될 수 있다. 외교관들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메시지 전달력과 정치적 행보를 고려할 때 전형적인 외교관료인 반 총장의 성공 가능성 역시 높지않아 보인다.

더구나 정치 경제 사회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국내 현안을 풀어낼 능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고, 그가 이에 대한 비전과 실행계획을 제시한 경우도 없었다.

민주화 이후 집권 세력이 낙점한 후보는 다 낙선했다는 점도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정권 교체뿐만 아니라 집권당을 계승했던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모두 전임 대통령과 차별화하며 스스로 권력을 쟁취했다.

반 총장이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지원을 받을 경우 가장 인기 없는 ‘친박 후보’로 분류되면서, 사실상 본선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대북 압박 노선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친박 진영의 지원에 거리를 두면서도, 대구ㆍ경북(TK) 민심을 껴안는 행보와 시대낙후적인 새마을 운동을 칭송하는 이중적 태도도 향후 행보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취임 당시 가졌던 초심을 되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성공한 외교 지도자로서 임기 끝까지 박수를 받는 업적을 창출하고 성공적인 퇴임을 하는 것이지, 험난한 정치판에서 권력다툼에 나서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국내 정치와 거리를 두고, 국제사회의 현안을 해결하는 통큰 리더십을 발휘해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퇴임 후에 저절로 더 큰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반면 국제사회의 현안에는 대처하지 못한 채 성과 없는 무색무취한 모습으로 총장 임기를 마칠 경우 도리어 국제사회와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될 것이다. 자칫 한국정부와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배출한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외교계의 골칫거리가 될 부정적 상황이 우려된다.

정치적 욕심을 버리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지구촌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고 박수를 받는 퇴임을 하길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