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왜 점치는 책이었던 주역(周易)이 경전(經典)이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주역에 대한 이미지는 점치는 책으로서의 주역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 점치는 행위는 미신과 같은 것인데 그게 왜 삼경 중 하나에 들어갈까? 또 주역을 역경이라고도 부르는데 왜인가?

주역이 사서삼경 중 마지막 경전으로 된 까닭은 결정적으로 공자 때문이다. 공자이전 시기 점치는 책으로 쓰였던 주역에 공자의 글이 가해지면서 경전의 지위를 얻게 된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은 중국고대 왕조의 하나인 주(周)나라 시기에 쓰던 역(易)을 말한다. 주나라에서 쓰던 역이라 해서 주역(周易)이다. 주역이라 말하면 점치는 책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반면 경전의 의미를 강조할 때는 역경(易經)이라고 부른다. 경전은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글을 말한다. 과거 조선의 선비들은 사서삼경을 공부할 때 가장 마지막 단계에 주역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복희가 8개의 문양을 그리고 문왕이 64괘와 괘사, 주공이 효사를 쓴 이후 줄 곧 점치는 책(이하 점서, 占書)으로 쓰였다. 대략 BC10세기 경의 일이다. 그러던 것이 대략 500년 후 공자가 주역의 원텍스트에 뜻과 이치를 설명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열 편의 글이다. 이를 10익(十翼)이라 부른다. 열 개의 날개라는 뜻이다.

공자 이전의 주역을 점치는 책이라는 뜻으로 상수역(象數易)이라고 부른다. 공자가 여기에 뜻과 이치를 부여했다고 하여 의리역(義理易)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상수역과 의리역이 무자르듯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점치는 역으로서의 상수역과 뜻과 이치를 다루는 의리역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가령 임신과 출산을 예로 들어보자.

남녀가 만나 합방하면 아이가 생긴다. 배 속에 아이가 생긴 후 열 달이 지나야 출산하게 된다. 아이를 밴 것은 여자의 배 속에 아이의 상象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열 달이 지나면 아이가 완성된다. 열 달을 헤아려야 아이가 완성된다. 이를 일컬어 수(數)라한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면 음인 여자와 양인 남자가 만나 교합하면 생명이 생긴다. 잉태는 생명이 생겼음을 의미하고 열 달이 지나야 생명이 완성된다. 이를 일반화하면 태극이 양의(兩儀, 음과 양)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을 낳으며 사상이 8괘를 낳는다. 이렇게 생명이 탄생하는 뜻과 이치를 밝히는 것을 의리(義理)라고 말한다. 일월의 운행은 사계를 낳으며 순환하는데 이것이 인간사와 연결되면서 오상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이어져 자연계의 생성순환이 인간세상의 길흉화복으로까지 연결된다고 본 것이다.

즉 공자는 점의 결과에 길흉회린(吉凶悔吝, 길함과 흉함과 후회함과 부끄러움)이 나타나는 이치를 설명함으로써 인간행위의 도덕적 근거로까지 그 논리를 확장시켰다. 가령 주역의 일곱번째 괘인 지수사(地水師) 괘를 설명할 때 땅 밑에 모인 물을 마치 군중이 모여 긴밀히 체계화되어 있는 군대와 비유했다. 그러면서 군대는 국가의 방위를 담당하지만 어쩔 수 없이 천하(天下)에 해독을 끼치지 않을 수 없기에 반드시 기율로 움직여야 함을 강조했다. 또 전진만이 아니라 후퇴에 대해서도 적극적이 의미를 부여하며 설명했다. 이런 논리의 기준은 민(民)의 안녕(安寧)이라고 했다.

▲ 점서이던 주역이 공자의 의리적 해석에 따라 경전으로 승격했다. 사진은 우리나라 무당들이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첨사통(籤辭筒·아래)과 영첨(靈籤). 점통인 첨사통 안에 팔괘나 글자가 새겨진 산가지가 있는데, 이를 뽑고 해당 내용을 점괘풀이 책(영첨)을 찾아 해석한다. /뉴시스 자료사진

공자가 점서를 경전으로 승격시켰다

공자가 점서(占書)에 의(義)와 리(理)를 부여한 이후 AD 3 세기 초 위나라 왕필에 의해 노자적 관점에서 주역을 의리적으로 해석했다.

그 후 AD 11세기 소강절이 나타나 상수역의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소강절의 관매역수(觀梅易數-매화를 보고 역의 수를 헤아린다)에 따르면 매화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후 괘를 떠올리고 소녀가 다리를 다치나 가벼울 것으로 예측했다. 결과는 사고가 났으며 가벼웠다.

소강절 출생 22년후 정자(程伊川)가 태어나 의리역은 천리(天理)가 절대적으로 구현된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으로까지 확대 심화된다. 이 책이 역전(易傳)이다. 정이천은 상수역 즉 점서로서의 주역을 낮게 평가하고 의리역으로서의 주역을 강조한다.

하지만 종래의 유학을 집대성하고 신유학을 연 주자(朱熹)는 점서(占書)와 경전(經典)의 비중을 동시에 고려했다. 정자는 점치는 행위를 낮게 평가한 반면 주희는 점치는 행위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다음 주제는 점치는 것이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합리적 사유와 배치되는 것일까?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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