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 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겸 대기자] 조선업의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의 세계 1위로서 최대 호황을 누리면서 엄청난 이익을 기록했던 조선업은 적자투성이 회사로 전락했다.

▲ 최성범 주필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가 불가피하고 빅딜의 가능성마저 논의되고 있다.

1987년에도 대우조선의 부실을 처리하느라 골치 아픈 적이 있지만 이번엔 조선업계 전체가 동반 부실화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선업의 불황은 세계경기의 침체로 선박 물동량이 줄어든 데다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 그리고 해양 플랜트 사업의 무리한 수주가 원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선업 불황이 한 업종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제조업의 몰락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봐야 한다.

사실 한국 제조업은 최근 들어 뚜렷하게 하향세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1~2010년 평균 6.7%였던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2011~2013년 평균 2.2%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교역량의 위축 탓이다. 사실 최근 들어서 성장 둔화와 경기침체란 알고 보면 제조업이 위축된 결과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진국의 경우에도 제조업의 비중이 30%에 도달하면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제조업 비중이 1953년 28.5%를 정점으로 그 비중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1980년 이후 제조업 비중이 줄곧 하락하는 추세다.

▲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조선해양 본사 위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독일은 1980년 29.8%, 일본은 1984년 27.5%가 정점이었다. 이들 나라의 오늘날 제조업 비중을 보면 미국 11.9%, 영국 10.9%, 프랑스 10.7% 수준이다.

제조업이 여전히 강하다는 독일과 일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독일은 2009년 19.3%, 일본은 2009년 17.8%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제조업의 쇠퇴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게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잡아가는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GDP(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30% 수준에 달하고 있기는 하나 제조업의 하락세는 거의 전 업종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경공업 분야는 이미 산업 기반이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섬유수출 업체를 운영하는 권 모 사장은 "국내엔 직물회사들이 없어서 베트남 공장과 미국 바이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형편이고 한국에서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경공업 분야에 이어 한 때 잘나가던 철강도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지 꽤 됐고 전자산업과 자동차도 급격하게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어 사양 산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직 제조업 비중이 30%나 되는 상황에서 제조업 몰락에 대한 우려가 엄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이 제조업 위주의 경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과연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산업의 발전 단계가 1차 산업인 농림수산업에서 2차 산업인 제조업을 거쳐 3차 산업인 서비스업으로 이행하는 게 필연적인 게 아니고 다만 오랜 산업화의 역사를 지니고 산업구조 고도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걸어온 결과에 불과한 게 혹시 아닐까?

이 점에서 최근 미국 하버드대 대니 로드릭 교수의 '때 이른 탈산업화(premature deindusgtrialization)'라는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드닉 교수는 최근 신흥국들에서 탈산업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고 지적한다. 제조업이 충분히 많은 노동력을 흡수하기 전에,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탈산업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로드닉 교수의 주장은 정보통신산업(ICT)의 비중이 커진 최근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귀 기울여 볼만한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가 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제조업의 하락 추세에 대비해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제조업을 쉽게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대안이 없이 제조업의 쇠퇴를 방관해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게다가 서비스업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이행하기 위해선 국가 브랜드 제고, 글로벌화, 전 사회적 소프트화 등 조건을 갖춰야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국가 전반적인 서비스화를 하지 않고선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서비스업을 만들어낼 수 없다. 특히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에 비해 한국은 국가브랜드, 국제화, 소프트화 모든 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상당수의 서비스업은 제조업 지원의 성격이 강해 제조업이 없으면 존재조차 어렵다. 미국이 제조업 르네상스 운동을 벌이고 일본도 제조업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서비스업이 약해서가 결코 아니다.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제조업의 쇠퇴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선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기대할 수 없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창조경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서비스산업발전법이 제조업의 몰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콘텐츠 등 경제의 서비스화에만 골몰하는 발상의 산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와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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