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4.13총선 다음날 새벽 집 근처 강남 지역의 어느 목욕탕을 찾았다.

60~70대 4~5명이 매일 아침 벌거벗은 채 모여앉아 시중 여론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목욕탕 여론의 현장이다.

보수 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지역답게 평소 고령층이 모여 여당 지지, 야당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곳이다. 필자 역시 벌거벗고 옆에 자리잡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김홍국 편집위원

이날은 자신들의 지지 정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날것 그대로 튀어나왔다.

“공천을 그따위로 하고 표를 달라고, 당연히 참패지” “박살났어. 지들끼리 싸우는 꼴이, 에이” “참 오만해. 대체 국민을 뭘로 보는거야” “제 편도, 제 식구도 아우르지 못하면서...한심한 것들!” 쉼없이 이어지는 목욕탕 좌담회는 여권의 독선과 불통을 거침없이 질타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펼쳐졌던 4.13 제20대 총선이 선거혁명으로 막을 내렸고, 어느새 4.16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됐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원내 제2당으로 주저앉은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승리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재연됐고, 20년 만에 3당 체제가 됐다. 진박 파문과 국회심판론을 제기하며 선거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은 조기 권력누수 현상인 ‘레임덕’에 빠져들었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의 민생·민주주의 후퇴에 엄중한 심판을 내리며, 제20대 국회의 정치 지형도를 선거혁명에 가까운 방식으로 그려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패한 원인은 여러 요소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불통의 리더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을 이끄는 지도자다운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고,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다운 정당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다.

야당은 수권 정당다운 정책과 정국운영 능력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지만, 여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심판 덕에 선거에서 승리했다.

과거에는 카리스마와 권력에 기반한 리더십이 중요했지만, 현대사회는 소통과 권한위임, 비전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경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과거처럼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으로는 숱한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러 계급 계층과 소통하고,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안아주는 따뜻하고 배려하는 리더십은 필수적이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시대적 변화에 맞춰 역사 및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비전을 설정하고, 권한위임을 통해 공직사회의 활력을 키우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는 협치와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 흐릿한 안개와 커튼에 갇혀있는 청와대가 향후 정국을 의미하듯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뉴시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원칙과 소신의 리더십을 보였지만, 대통령 취임 후에는 고집과 오기, 독선과 불통의 리더십만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민생을 책임져야하는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경제 침체와 민생의 고통에 대해 국회가 입법을 제때 하지않은 탓이라며 국회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는 등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과거형 리더십에 갇혀 있었다.

새누리당도 집권 여당다운 품격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바른 소리를 하는 동료 의원을 찍어내고,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거수기식 정당운영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곤 했다.

특히 후보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배신자로 거론하며 거부감을 보인 유승민 원내대표와 측근들을 찍어내기 위해 친박 진영이 갖은 수단을 동원해 공천 탈락을 추진한 것, 진박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진박후보들의 당선에 총력전을 펼치는 등 오만한 모습은 결국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언뜻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야권도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수도권에서 승리했지만, 본거지인 호남을 잃어버린 더불어민주당, 호남에서 승리하는 약진을 거뒀지만 38석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이 만만찮은 국민의당, 모두 어려운 정치행로를 걸어야 한다.

그동안 보여온 정치 철학과 가치를 정글과 같이 투쟁하는 정치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쉽지않겠지만, 창의적인 통합과 협력의 리더십을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는 상통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가 안정되면, 경제는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고 복지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 정치가 불안정하고 갈등에 휩싸이면 경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협상하고 타협하며,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야만 불평등과 침체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여야 모두가 서로 더 좋은 민생정책을 개발하고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더불어 상생과 소통,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여야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건전한 견제와 균형원리를 실천하면 더욱 나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중국발 충격 등 거센 외풍의 파고 아래서 침체일로인 경제를 살리고, 왜곡된 경제현장을 교정하면서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경제 부흥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는 동안 깊은 바다 밑에 침몰하고 만 세월호와 304명의 무고한 죽음을 위로하며, 위험사회에서 정상사회로 나가는 길이다.

여야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총선 민심을 담은 세월호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는 한편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진행되어온 적폐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에 갈등을 불러일으켜온 역사 국정교과서와 위안부 합의, 노동법 개정안 폐기와 테러방지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는 등 정상사회를 향해 협치와 통합리더십에 기반한 적극적인 정치행위에 나서야 한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을 304명 원혼들의 명복을 빌며, 우리 사회의 반성과 성찰에 함께 동참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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