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동북쪽 태평양 연안에는 세계 3대 습지라는 쿠시로(訓路) 습지가 있다. 높은 산에서 태평양으로 빠지는 저지대에 습지가 있어 생태학자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1992년 한국일보 국제부기자 시절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 취재차 이곳을 들렀다. 바닷가 군용비행장 공사장에 여덟살 짜리 조선인 노무자가 있었다는 책을 쓴 일본인 향토사가 마쓰모토(松本)씨의 초청이었다.

쿠시로시 교외 절에 있는 화장 명부에서 8세 조선인의 이름을 확인하고 이를 <주간한국>에 르포기사로 실었다.

다음날 현장을 돌아보고 시내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올라갔다. 바다가 시커멓게 보여 추운 지방이라 그런가 생각했다.

마쓰모토씨는 여기서 본섬의 센다이(仙臺)시 쪽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다시마(곤푸) 산지라고 설명했다.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 다시마였던 것이다. 여기가 바로 2011년 대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했던 후쿠시마(福島) 원전 앞바다이다.

나는 원전 사고 당시 쿠시로 앞바다를 떠올렸다. 다시마 외에도 일본 게이오(慶應)대학 연수시절 TV에서 보았던 이 곳의 전통 참치잡이가 떠올랐다.

이곳 어부가 아들과 함께 통통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태평양 참다랑어가 물위로 올라올 때 고래를 잡는 작살을 던져 잡는 장면이었다. 이 곳 어부들이 참치 한 마리를 잡으면 거의 로또에 당첨됐다고 할 만큼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2011년 사고이후 몇 번 버린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또 바다에 버리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 언론들은 8월말 현지와 도쿄(東京) 등 2번에 걸친 공청회 소식을 전하면서 현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대로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고 이후 운용사인 도쿄전력은 벌써 몇 번이나 오염수를 방출해왔고 일본 정부도 이를 묵인해온 터라 처리를 위한 ‘형식적인 공청회’라는 인상이 짙다.

일본 정부는 이날 후쿠시마 현에서 공청회를 열고, 세슘 외에 '트리튬'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방안에 대해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다.

공청회에서 오염수를 땅 속에 묻거나 바다에 방출하는 등 5가지 처분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며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라고 설명했지만 주민 대표 대부분은 반대했다고 한다. 아베 정부는 그간 방사성 물질 오염수 처리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일본 정부는 오염원인 삼중수소의 반감기가 12년이어서 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해왔다.

▲ 지난 5월 31일 한해성수산센터 관계자들이 강원 고성군 공현진 연안 해역에서 인공으로 양식한 명태 종자 50만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고성군청 제공

과학자들은 오염수의 주 방사능이 세슘이며 이를 그대로 버려왔다고 비난한다. 삼중수소 안에도 반감기가 무려 1570만년인 ‘영구 방사능’인 요오드 129와 제거가 안 되는 트리튬, 루테늄 등 방사능 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를 앞바다에 버린다면 여기서 잡은 참치, 명태 등 어류는 물론 다시마 주산지까지 오염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의 식탁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직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자 곧바로 후쿠시마를 비롯한 8개 현(縣)의 수산물 28종의 수입을 금지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산 식품 수입 때 세슘 검출 시 기타 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하고 국내외 식품에 대한 세슘 기준 강화 등 임시 조치를 취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4년이 지난 2015년 3월 한국의 일방적 수입 금지와 추가 검사 판결은 차별 행위라고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WTO는 3년 만인 지난 2월 “한국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WTO 협정에 위배된다”며 시정 권고 판정을 내렸다.

WTO는 원전 사고 직후 한국 정부의 첫 조치는 당연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수입을 제한하고 추가 검사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대우’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과학적 증명 없이 식품 안전을 이유로 수입을 금지할 수 없다는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 정부가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일본 정부에 충분한 설명이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원자로 주변에 오염수를 보관하는 원통형의 탱크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후쿠시마=AP/뉴시스 자료사진】

우리 정부는 WTO 판정에 문제가 있다며 보고서가 발표되면 곧바로 상소할 방침이다. 양 당사국은 60일 내에 상소할 수 있으며, 60~90일 이내에 보고서 작성을 완료해 패소국에 해당 보고서 이행을 요구한다.

그러나 최근 WTO 상소 건수가 급증하고 상소 위원 공석 기간으로 인해 사건이 밀려 있어 실제 결과 발표는 내년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도쿄전력은 세슘 흡착장치를 이용해 오염수에서 방사성 세슘 등을 제거한 후 남은 농축염수(鹽水)를 탱크에 저장하고 있지만 지금도 원자로 지하에는 400 입방미터의 지하수가 매일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경제산업부 산하 전문가회의는 이미 2016년 트리튬의 농도를 묽게 해서 바다에 방출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평가 결과를 내놓은 바 있고 일본 정부가 이를 강행하려는 것이다.

WTO가 수입 분쟁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주자 한국 정부의 반발에 이어 환경단체들도 ‘식탁주권’을 지키자고 나섰다.

부산 환경단체는 최근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금까지 일본산 식품 수입규제 조치를 시행한 나라가 중국, 러시아, 대만을 비롯해 24개국에 달하지만 일본이 유독 우리나라만을 WTO에 제소했다며 “자국의 경제이익만 생각해 이웃나라에게 방사능 오염 식품을 계속 공급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식품 섭취 시 방사능이 체내에 축척돼 불임증, 전신마비, 백내장,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DNA세포가 파괴돼 단기적으로 백혈구와 적혈구가 손실되고 장기적으로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형아 출산, 유전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의학계 상식이다.

▲ 전국 최대의 황태 생산지인 강원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이 명태를 덕에 걸어 놓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더구나 20년 전부터 동해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진 뒤 대부분 러시아산을 수입하는데 러시아 어선들이 일본 홋카이도에 들러 이 바다에서 잡은 명태까지 사서 들여온다는 소문도 있다. 이제 ‘해장 생태탕’을 비싼 ‘곰치국’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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