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고향이자 선거구는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関)시이다.

일반적으로 시모노세키는 메이지(明治) 유신의 본산으로, 전후에는 일본 보수세력의 거점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 이동준 교수

실제 시모노세키를 중심으로 한 야마구치현은 전전(戰前)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 가츠라 다로(桂太郎),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등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를 주도한 총리들을 배출했다.

전후에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등 일본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총리들이 이곳 출신이다.

아베 총리를 포함해 역대 총리만 8명을 배출했고, 이들의 재임기간만 거의 40년에 육박한다.

인구 140만여명에 불과한 작은 현(県)이 근대 이래의 일본 정치를 주물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보수색이 강한 인상을 주는 시모노세키이지만, 바로 이곳에서 지난 60년 동안 일관되게 보수정권에 맞서 온 신문이 있다.

이곳에서 발간되는 <죠슈신문(長周新聞)>은 전 일본공산당(좌파) 중앙위원회의장 출신인 후쿠다 마사요시(福田正義)가 1955년 창간한 신문으로, ‘독립·민주·평화·번영을 모토로 하는 리버럴계 오피니언지’를 표방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드물게 자민당 정권에 대해 강한 비판을 전개해왔다.

특히 이 신문은 반(反)권위주의 및 반(反)자본주의, 친(親)시민운동을 내세워 아베 정권의 정치외교 정책을 뿌리째 거부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죠슈신문> 12월2일자 1면은 ‘농락당하는 언론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아베 정권의 언론 공작과 거대 언론의 권력 추종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면 방송윤리(BOP: Broadcasting Ethics & Program Improvement Organization)나 방송법을 거론하며 정부가 개입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저널리즘이 스스로의 생명이기도 한 ‘언론의 자유’를 포기한 채 지배 권력의 하수인을 자임하는 전전(戰前)의 ‘대본영(大本營)’을 되풀이하는 사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중립주의’를 내걸면서도 뒤로는 권력에 영합해온 상업 미디어의 기만성은 국민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전쟁을 부추겨온 80여 년 전과 너무나 흡사하다.

지난달 15일 <요미우리 신문> 조간 1면에는 ‘우리들은 위법적인 보도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라는 의견 광고가 실렸다.

광고주는 ‘방송법 준수를 요구하는 시청자의 모임’이라는 단체로, 여기에는 아베 신조 총리를 찬미하는 책을 낸 작가 오가와 에타로(小川栄太郎), 작곡가 스기야마 고이치, 평론가 와타나베 쇼이치(渡辺昇一), 경제평론가 죠낸 쓰카사(上念司), 탈렌트 켄트 길버트 등 이른바 ‘안보응원단’ 소속 회원들이다.

이 광고에서 이들이 ‘위법적인 보도’라며 지적한 것은 TBS 보도 프로그램 “NEWS 23”이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메인 캐스터를 맡고 있는 기시이 시게타다(岸井成格, <마이니치 신문> 특별편집위원)씨가 “미디어도 (안보 관련 법안의) 폐기를 위해 목소리를 계속 높여가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꼬투리 잡아, 이 발언은 ‘정치적인 공평,’ ‘의견이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각도에서 논점을 분명히 할 것’ 등을 적시한 ‘방송법 제4조의 규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표방한 주장의 포인트는 기시이씨 개인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이 프로그램이 안보 관련 법안 통과까지 1주일 간 ‘법안 반대 측의 주장만을 보도’한 점에 맞춰져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TBS의 프로그램은 같은 기간의 NHK나 일본텔레비, 텔레비아사히, 후지텔레비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보 법제 ‘반대’ 측의 의견을 많이 보도했고, 이는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유린하는 선전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어 모든 방송사업자에 대해 ‘국가에 의한 인허가 사업이라는 자각을 갖고’ ‘방송법 제4조를 준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과 정부 비판을 삼갈 것을 요구했다.

▲ 지난해 6월 일본 도쿄(東京)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 공관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헌법9조 해석 변경에 대한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AP=뉴시스 자료사진

이 의견 광고는 전날자의 <산케이 신문>에도 게제되었다. 1회 광고에 약 5,000만 엔이나 하는 광고료를 고려하면, 상당한 재력의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그 뜻을 반영한 행동으로 추측된다.

둘러보면 최근 정부에 의한 언론 개입이 빈번하게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 아베 총리가 상기 프로그램의 생방송에 출연했을 때 길거리 인터뷰의 VTR에서 아베노믹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자 집권당 측은 “의견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불평 섞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 후 자민당이 도쿄에 있는 TV 방송사 6개사에 대해 ‘길거리 인터뷰, 자료영상 등에서 일방적인 의견에 치우치거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지 않을 것,’ ‘출연자 선정’이나 ‘발언 횟수 및 시간’에도 ‘공평 중립성’을 요구하는 등 보도기준을 자세하게 지시하는 문서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4월에는 텔레비아사히의 “보도 스테이션” 코멘데이터로서 전 경제산업성 관료인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씨가 프로그램에서 정부의 언론압력 실태를 폭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고가씨가 ‘I am not ABE’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아베 정부를 비난하자 총리 관저가 ‘방송법에 위반된다’면서 텔레비아사히 측에 압력을 가해 그의 프로그램 하차를 요구했고 방송사 측도 이 ‘지시’에 따르려 했다고 생방송에서 까발린 것이다.

오키나와(沖縄)의 헤노코(辺野古) 미군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득세한 지난 6월에는 총리 주변의 젊은 자민당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문화예술간담회에서 강사로 초빙된 햐쿠다 나오키(百田尚樹, 당시 NHK 경영위원) 씨가 “오키나와의 2개 신문은 반드시 박살을 내버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자리에 있던 젊은 자민당 의원들도 “게이단렌(経団連)을 이용해 광고 수입을 없애면 된다”, “나쁜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그 스폰서를 열거하면 된다”고 발언해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11월 6일의 BOP 프로그램 검증 위원회에서는 자민당 정보통신전략조사회가 NHK나 텔레비아사히 측으로부터 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매우 당연한 일이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였다.

TV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단 한마디의 코멘트에 대해서도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안보 법제를 둘러싸고 전례 없는 규모로 달아오른 국민의 반대 여론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며, 국민들을 속일 능력조차 상실한 지배권력 측의 초조함의 반영이다.

다만, 아베 총리 자신이 출연했을 때에는 스스로 준비한 설명도까지 내걸어놓고 “옆집에 불이 나서 연기가 우리 쪽으로 향한다면 옆집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안보 법안이다” 등 도대체 의미를 알 수 없는 지론을 전개하거나, 스스로 예로 든 호르무즈해협에서의 기뢰 소해(掃海)나 일본인을 태운 미국 함정 보호 등의 설정도 철회하는 등 논리적인 파탄을 노정했다.

이런 파탄 증상을 반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언론의 자유’ 제한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언론 측도 여기에 저항하기는커녕 방송내용을 개편하거나 출연자를 강판시키는 등 권력의 선전기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타락: 스스로 정부의 광고 찌라시가 되기를 원했다>

원래 상업 미디어들은 안보 법안에 관해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흉내만 내겠다는 심사였다.

그런 이들이 정부 비판으로 약간이라도 돌아선 것은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2,000여 곳에서 항의 데모가 전개되어 더 이상 이를 못 본 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솔선해서 반대 진영에 선 것이 아닌 것이다. 단지 어쩔 수 없이 여론을 쫓아간 셈이다.

올해 1월 시리아에서 벌어진 일본인 인질살해 사건 때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스스로 중동으로 달려가 이슬람 제국의 감정을 건드리는 연설을 함으로써 인질만이 아니라 자기 국민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는데도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추(訴追)와 처벌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아사히 신문> 사설)고까지 주장했다.

언론들은 이런 위기상황을 악용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지(有志)연합에의 참가를 표명한 아베 총리를 전면적으로 지지했다.

“이런 때에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셈”,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중동의 불 숲에 뛰어든 정부가 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마저 억압한 것은 80여 년 전 만주사변을 과장해 ‘폭지응징(暴支膺懲),’ ‘방인보호(邦人保護)’를 내걸고 사실관계조차 살피지 않은 채 중일전쟁으로 몰고 간 ‘대본영’의 발표를 방불하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언론은 이라크 전쟁의 구실로서 조작된 9·11 뉴욕 동시다발테러 사건이나 “테러지원국가로서 대량파괴무괴를 보유하고 있다”고 근거 없는 구실을 내세워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관해서도 오로지 미국측 보도를 추종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점에서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습격사건에 대해서도 언론들은 ‘이슬람국가’를 대두시킨 실질적인 장본인인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검증은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보복공격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은 아베 정부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된 것이다. ‘반(反) 테러’를 내세워 사실상 국민을 전쟁으로 유도해 가는 미디어의 통일된 방침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둘러싼 보도도 마찬가지이다.

미리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분명히 밝히고 국민의 생명에 직결되는 필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은 채 방사능의 확산범위를 예측하는 SPEEDI(긴급시 신속하게 방사능 영향을 예측하는 네트워크 시스템) 데이터를 숨기고 “당장 영향은 없다”, “사고를 수습했다”고 말하는 정부나 도쿄전력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고, 그 후에도 주민들을 ‘모기장 밖’에 둔 ‘창조적인 부흥’을 거론하는 등 국가와 국민의 장래에 관한 중대한 국면에서 늘 지배층의 충실한 대변자로서 일해온 것 아닌가.

언론의 타락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주요 미디어 간부와 총리와의 회식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총선거나 비밀보호법의 강행 처리, 집단적 자위권행사 용인 각의결정 등 중요한 대목마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산케이>, NHK, 일본텔레비, 후지텔레비, 지지통신 등 주요 미디어의 해설위원·편집위원들은 수시로 총리와 회식이나 골프 등을 통해 상호보완 관계를 구축해왔다.

기껏 스시 몇 접시를 얻어먹어 펜대를 흐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진해서 권력의 개가 된 것이다.

미디어가 제대로 탄압도 받기 전에 알아서 자기 검열에 나서고 권력을 감시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포기한 것은 최근에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과거 전쟁 때에 온갖 거짓말로 도배된 ‘대본영 발표’를 대행해 국민여론을 틀어막은 정보통제의 중추역할을 담당한 <아사히 신문> 주필 오가타 다케토라(緒方竹虎), <요미우리 신문> 사주(社主)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 등은 모두 전범 혐의에서 벗어났다.

이들은 전후 미 중앙정보국(CIA)의 에이전트가 되어 자민당 총재나 각료 등 지배층의 중추로서의 지위를 얻었고, 대미 종속구조를 만드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과거의 행적에 대해 “군부의 압력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던 이들은 전후에는 미국을 주인으로 받드는 한줌 지배권력의 충실한 대변자가 되어 국민을 기만하는 역할을 맡았다. 언제나 권력 편에 서서 이권을 챙겨온 것이다.

최근 신문을 보면 읽을 것이라곤 광고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방을 다룬 지면을 보더라도 그렇게 많은 지국과 총국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나 예능을 다룬 기사뿐이고, 사회정의라는 입장에서 악행을 비난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권력이나 대기업에 굴종해가는 언론계의 노골적인 체질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이런 미디어의 기만행위가 예상된 결과를 낳지 않게 되고 더 이상 대중 여론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자 권력층조차 초조감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베 정권이 최근 보이고 있는 언론에 대한 신경질적인 태도와 관련된다.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닌데도 과잉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여론을 무서워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언론 보도 하나하나에 신경질을 내는 것은 그만큼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디어가 정부에 대해 알아서 순종하는 습성이 된 것은 저널리즘과는 무관하다. 권력의 남용을 폭로하고 사회정의를 지켜낸다는 사명을 내던진 매체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단지 정부의 찌라시에 불과한 것이다. 권력이 던져주는 스시 몇 접시에 기뻐하며 양심을 파는 미디어를 보고 있자면 불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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