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추덕 배재원] 군자불기(君子不器). 사람마다 타고나는 근기(根器)와 기질지품(氣質之品)이 다른 것은 마치 재료와 모양 크기가 다른 그릇들이 그릇가게 안에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과 같아서 사람 하나하나가 다 특색이 있는데, 특별하게도 君子는 不器라고 했다.

그릇의 용도는 물건을 담아내는 것인데 ‘君子’라는 이상적 모델의 사람에게는 ‘너는 그릇이 되지 말라’는 요구사항으로 읽혀진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특정재료 특정모양의 그릇으로 모양을 갖추면 그 정해지는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가 없으니 君子는 어디에서 어떻게라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만능이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추덕 배재원
추덕 배재원

우리말 중에도 ‘그릇되다’ 또는 ‘그릇되지 말라’고 하는 말들이 있는데, 이 말뜻을 곱씹어 보면 ‘그릇으로 빚어져 고정되면 틀릴 수 있다’는 뜻이 숨어있다.

君子‘不器’와 같은 의미로 이미 우리들 무의식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겨레얼의 DNA이다.

이 빛글作은 그릇器이다. 먼저 大자로 뼈대를 잡고 입구口 네 개가 각각 변형되어 제자리를 잡았으니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마지막 점은 붉은 물감을 푹 찍어 넣었는데, 전체모양을 보면 사람이 팔 다리에 각기 다른 ◯과 □을 달고 부지런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양이고 시선은 위 오른쪽의 열린◯을 향하고 있다. 굳이 의미부여를 하자면 누구나 자기그릇이 정해지지만 그릇器에 4가지 모습이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지는 말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런 물음이 얼핏 보면 허황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나’를 이루는 것들 중에서 허수와 허세는 걷어내고, 실수와 최소공약수는 굳게 다져야 한다.

밥상 위의 간장종지는 적지만 간을 조절하는 밥상의 중심이다. 장독대의 항아리는 내 가족들의 먹거리를 책임진다. 찻잔 속의 태풍이라지만 태풍을 담아내는 바다라면? 내 두 손에서 지구를 돌린다는 것은 낮밤 음양(陰陽)으로 돌아가는 의미의 세계이다.

내 눈을 제임스 웹의 시야로 대체하면 나는 인류전체의 첨병이고 우주를 유영하는 존재가 된다. 나의 시각을 극대뿐만 아니라 극소로 돌린다면 또 다른 영역이 펼쳐진다.

수많은 그릇들 중 나는 어떤 그릇인가?

내가 비록 君子가 아니라서 不器아닌 조막그릇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나’를 노여워하지 말고, 최소한 내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 갇혀있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작은 일은 작은 대로, 큰일은 큰대로 당당하게 맞이하는 나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추덕(追德) 배재원

- 1963년생, 경북 상주

- 대구 능인고등학교

- 대전 대전대학교 한의학과 2회 졸업

- 한의사/우리한의원 원장 (경북, 상주)

나는 ‘우주는 휘고, 꼬이고, 비틀리면서, 가고 있는’것이라고 배웠다. 우주뿐만 아니라 인간 삶이 그러한 것 같다.

철들면서 바로 접하는 ‘깨달음’이라는 신세계는 내 삶이 눈앞의 利를 쫓지도 못하게 했고 명예를 추구하지도 못하게 했으며,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시골한의사로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대체로 동양학의 줄기는 ‘良心’을 得하면 儒家, ‘無爲’를 得하면 道家, ‘空과色’을 得하면 佛家, ‘陰陽’을 得하면 한의학이 저절로 一通해져야 하는데, 한울정신문화원의 ‘禪筆’을 공부하면서 그 깊고 오묘한 방법을 알게 되었다.

붓에 氣Energy가 집중되면 한 겹 한 겹 허물이 벗겨져 나가고, 맑은 거울을 앞에 두고 춤추듯 저절로 움직여지는 붓흐름 따라 기존의 書法에 없는 無爲붓글을 써왔다.

지금은 천부경의 ‘本心本太陽昻明’에서 모티브를 얻어 ‘本心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빛글’이라는 타이틀로, 동양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의미 있는 한자와 우리 한글을 중심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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