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추덕 배재원] 대학 입학해서 한의학의 기초를 배우기 위해 한자를 익히는 과정에서 소학(小學)을 만났다. 대전 신도안에 계시는 정향 조병호 선생님을 찾아 가르침을 듣고, 십여 명 동기들과 어울려 동아리를 만들고 밤낮없이 흥얼거리며 책을 읽을 때면, 시공을 거슬러 옛날 시골서당에서 글눈 터지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그 분위기 그 열정이었다.

한자 문화를 만나는 것은 내가 선비가 된 듯 가슴 설레게 하는 신세계였다.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이 있다.

부모구존(父母俱存)하며 형제무고(兄弟無故)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앙불괴어천(仰不傀於天)하며 부부작어언(俯不怍於人)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는 것을 얘기한다.

추덕 배재원
추덕 배재원

또, 논어(論語)의 맨 처음인 학이(學而)편에는

자왈(子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워서 때로 익히면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면 불역낙호(不亦樂乎)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살펴보면 ‘君子’라는 이상향의 인격체를 만들어내고 뭇 지식인들을 이 유학(儒學)의 프레임에 가두어 둔 것이 아닐까한다. 하긴 당(當)시대 동양문화권의 주류이고 주체들 이었으니까 생존과 입신(立身)을 위해 스스로 자가발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맹자의 3락 중, 첫 번째는 내가 노력해서 되는 영역이 아니고, 세 번째는 보통의 사람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이다.

천하의 영재가 내게로 와서 함께 하려면 이미 나는 어느 경지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힘든 일이다. 다만 두 번째의 즐거움은 오로지 내가 노력하고 애쓰기 나름이니 유의성이 있다.

공자의 논어 첫 번째 學而時習의 즐거움과도 맥(脈)이 닿는다. 두 번째 有朋 自遠方來의 즐거움은 그 의미가 좀 부족하고, 세 번째 人不知而不慍의 즐거움은 시대의 주류, 세태가 변하더라도 처신과 자기수양의 근본원칙은 변할 수 없기에 유의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3가지 즐거움 중 첫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게 하는 것, 둘째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 것으로 삼고, 세 번째 즐거움은 본심(本心)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것으로 삼는다.

즉, 천부경에서 ‘본심 본태양앙명(本心 本太陽昻明)’에서처럼 사람의 本心이 ‘본래 태양처럼 밝은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며, 티끌 없는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추듯 기(氣Energy) 장(場)의 흐름을 타며 붓이 가는대로 저절로 써지게 하는 무위서법(無爲書法) ‘빛글’을 작(作)하는 즐거움이다.

이 作은 ‘석三 즐거울樂’ 빛글이다. 빛글은 기(氣)흐름대로 쓰는 ‘無爲’의 붓글이므로

기존의 제도권 서법이나 글자체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 붓이 정확하게 氣흐름대로 화선지위에 들어갔는지의 여부를 봐야한다. 그 다음이 미적(美的) 요소이고 의미이다.

‘三’에서는 중간 획이 좀 더 얇고,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변화를 주도한다.

‘樂’에서는 양팔과 머리 몸통 다리가 각각 놀면서도 전체는 자형(字形)을 유지한다.

꾸불꾸불 획이 풀어지고 선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붓이 氣흐름을 타기 때문이고

갈필(渴筆)은 호불호의 잘잘못을 따지는 관점이 아니니, 이미 선악이 아니다.

‘樂’이 글씨인 듯 그림인 듯 하면서도 ‘즐거움’이 잘 표현되었는지가 관건인데,

두 팔은 탈춤 추듯 긴소매를 펄럭이고 머리 위로는 붉은 안테나를 꼽고 긴장감을 유지한다. 양발은 춤추듯 움직임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한쪽만 발바닥까지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作은 흥이 점점 차오르면서 속에서부터 에너지가 점점 축적되어

밖으로 튀어 오르려 준비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스쳐가듯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너머로 작가의 영혼을 만나는 것이라야 최상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첫술에 배부르기 바라는 作者의 욕심이겠지만 작품 감상은 또 다른 영역이다.

감상하시는 각자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추덕(追德) 배재원

- 1963년생, 경북 상주
- 대구 능인고등학교
- 대전 대전대학교 한의학과 2회 졸업
- 한의사/우리한의원 원장 (경북, 상주)

나는 ‘우주는 휘고, 꼬이고, 비틀리면서, 가고 있는’것이라고 배웠다. 우주뿐만 아니라 인간 삶이 그러한 것 같다.

철들면서 바로 접하는 ‘깨달음’이라는 신세계는 내 삶이 눈앞의 利를 쫓지도 못하게 했고 명예를 추구하지도 못하게 했으며,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시골한의사로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대체로 동양학의 줄기는 ‘良心’을 得하면 儒家, ‘無爲’를 得하면 道家, ‘空과色’을 得하면 佛家, ‘陰陽’을 得하면 한의학이 저절로 一通해져야 하는데, 한울정신문화원의 ‘禪筆’을 공부하면서 그 깊고 오묘한 방법을 알게 되었다.

붓에 氣Energy가 집중되면 한 겹 한 겹 허물이 벗겨져 나가고, 맑은 거울을 앞에 두고 춤추듯 저절로 움직여지는 붓흐름 따라 기존의 書法에 없는 無爲붓글을 써왔다.

지금은 천부경의 ‘本心本太陽昻明’에서 모티브를 얻어 ‘本心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빛글’이라는 타이틀로, 동양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의미 있는 한자와 우리 한글을 중심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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