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강철구 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문재인 정권은 소득주도성장의 주요한 수단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내세우며 작년에만 최저임금 6470원에서 무려 16.4%를 올려 7530원으로 만들었다.

▲ 강철구 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그럼에도 1만원을 만들려면 이런 높은 수준의 인상률을 앞으로도 2년 연속 유지해야 한다. 물론 이런 급격한 인상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컸었다. 많은 저임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그렇지 않아도 한계상황에 몰려있는 자영업자들이 더 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반대주장을 모른 체하고 고율 인상을 밀어붙였는데 지난 5월 24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의 가구별 소득통계를 보면 그 우려가 단순한 기우는 아니다. 지난 1.4분기에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제1분위(최하층 20%)의 소득이 8.0% 감소한 반면 제5분위(최상층 20%)는 오히려 9.3%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1분위와 5분위의 계층별 소득격차가 1년 사이의 변화치고는 너무 커진 것이다. 많은 언론에서 ‘소득양극화’를 제목으로 뽑은 이유다.

문재인정부가 지난 1년 사이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확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일자리를 늘리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주어 지나친 불평등을 해소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 5월29일 가계소득동향긴급점검회의에서 소득분배의 악화를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말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5월 31일 다른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별 근거 없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그 근거가 뭐냐는 기자들 질문에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차단막을 쳐서 뭔가 찔리는 데가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문제가 며칠째 논란이 계속되자 6월 3일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결국 근거가 되는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노동연구원 등이 통계청 자료를 재가공해 만들었다는 이 자료는 전체 가구가 아닌 일자리가 있는 가구의 피고용 근로자 개인을 기준으로 하는 소득증가율이었다. 이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가운데 최하위 10%만 소득이 감소했고 나머지 90%는 모두 다 증가했다는 것이다.

엉뚱한 주장이다. 90% 긍정적 효과라고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실직자를 빼놓으면 그게 무슨 유의미한 통계인가. 최저임금을 그렇게 급격히 인상했는데 직장이 있는 근로자들의 소득이 증가할 것은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청와대가 통계를 왜곡하여 국민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일을 한 셈인데 대통령이야 불러주는 대로 읽었을 테지만 이런 시원치 않은 경제수석을 그대로 놓아두고 앞으로도 어떻게 정책을 꾸려나갈지 딱한 노릇이다.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분배 악화를 고령화 탓으로 주장하는 모양인데 이것도 상황을 잘못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노령화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소득양극화의 원인은 아니다. 6월7일, 한국노동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이 발표한 ‘평등한 사회를 위한 고용·복지정책의 역할’ 보고서를 보면 2006~2016년 사이에 소득하위 10% 계층의 시장 소득은 연평균 3.3%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보고서는 소득감소의 주된 요인을 복지수혜를 그런대로 받는 65세 이상 고령층이 아니라, 25~64살 사이 청장년층 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 최저임금을 올려 가장 저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올려주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소득을 낮추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2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소득분배의 악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중인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따라서 긍정적 효과 90%나 노령화 같은 주장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아예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핑계꺼리에 불과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사장이나 영세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고용을 줄이거나, 자동화기기를 도입하거나,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을 주고 고용을 유지하기로 피고용자와 약속함으로써 상쇄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폐업이 수순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 우리 주위에서 광범하게 벌어지고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많은 소매업소에서 알바 노동자가 줄거나 아예 사리지고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무인계산기를 도입하고 있으며 무인주유소도 늘고 있다. 그동안 저임금을 기화로 밤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던 대형마트들도 영업시간을 줄이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분기에 일을 안 하고 쉬는 사람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1.7%에 달하는 195만1000명에 달했다.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가장 저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올려주겠다는 목적의 정책이 오히려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소득을 낮추고 있으니 이건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정책이 아니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을 기화로 물가는 얼마나 올랐나. 소비자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식탁물가가 5% 올랐다고 하나 우리 소비자들의 체감물가는 그것보다 훨씬 높다. 아마 십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빈곤층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마 곧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이 벌어질 텐데 이렇게 높은 인상률을 계속 고집하면 일자리문제는 더 악화되고 소득양극화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그것이 가져올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텐가. 마침 문재인 정부는 지방선거의 대승으로 지지기반이 확대되어 좀 숨을 돌리게 되었다. 이제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분배를 강화하기 위한 좀 제대로 된 정책을 세워 서민대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재벌이나 조직노동 등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해체하고 공정한 경제의 틀을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 기반 위에서 적정한 비율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포퓰리즘의 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 과도한 외국인노동자를 줄이는 문제도 중요하다. 경제는 침체해 가고 서민대중의 불만은 점점 쌓여 가고 있다. 이번 선거승리에 도취해 이들의 고통을 계속 무시한다면 이 정권의 앞날도 결코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 강철구 민족미래연구소 고문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1979~2012년 서원대, 이화여대 등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왔습니다. 강 고문은 현재 민족미래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지향해야할 미래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과 강의를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역사와 이데올로기’,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가 있으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역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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