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 칼럼-(1)

이태 전쯤으로 기억한다. ‘응급실 당직의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글을 띄웠다.

고교 성적이 상위 1% 안에 들었고 6년 동안 의대에 다니며 엄청난 양의 공부를 소화했는데, 밤을 꼬박 새며 주 70시간 일한 대가가 월 500만 원이라는 하소연이었다.

▲ 지난 8월 서울 숭실대학교에서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주최로 열린 입시설명회 '2016 대입 수시대비 자기소개서 설명회'에 참석한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월급 의사는 자녀 학자금 등의 복리후생이나 퇴직금도 없어 삼성전자에 다니는 자신의 지방대학 공대 출신 친구보다 못하다는 탄식도 곁들였다.

월 500만 원은 적은 수입이 아니며 월 수천만 원씩 버는 의사도 많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이 당직의사의 호소에 공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의사가 되기 위해 투입한 비용과 노력(전문의 자격증을 따려면 꼬박 11년이 걸린다), 과거 선배 의사들의 ‘터무니없이’ 많았던 고(高)소득을 감안할 때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응급실 당직의사의 처지가 이해된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기 모임에 나가보면 사회적으로 성공(이른바 ‘출세’)했다고 여겨지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번듯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친구와 3억 원대 연봉을 받는다는 재벌 대기업 임원, 그리고 부장판사, 변호사, 의사, 한의사 등 이른바 ‘사’자 직업들이다.

이제 50줄을 넘긴 동기들은 1980년대 초 대학에 들어가 군 복무를 마치고 대부분 1987~89년에 취직을 했다.

고도 성장기라는 1970년대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0.3%. 매 7년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씩 성장했다.

1980년대도 70년대 못지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9.8%(이명박 정부 5년 간 평균 2.9%의 3배가 넘는다)에 달한 반면, 대학진학률은 30%(2010년 79%)를 밑돌았다.

이른바 ‘명문대’로 꼽히는 SKY대를 나오지 않더라도 괜찮은 직장의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직장인으로서의 삶도 비교적 순탄했다. 당시 대졸 직장인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 29세, 여자 26세. 경제적 어려움 탓에 독신을 고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개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5~7년 정도 열심히 저축하면 약간의 대출을 더해 소형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고, 또 5~10년이 지나면 중대형 아파트로 옮겨가는 게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지금 이들은 행복할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최근 만나본 친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겁고 어두웠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미래가 두렵고 불안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른바 ‘잘 나간다’는 친구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보험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해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 친구는 한의원 수입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다며 틈만 나면 주식 투자에 매달린다.

임대료와 간호사 인건비, 재료비 등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데, 한의사 수가 늘면서 환자들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변호사 친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죽도록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격증을 땄는데, 수입은 갈수록 줄고 연금과 같은 노후 보장책도 없다 보니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는 것이다.

판사로 근무하는 친구는 애들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라며 변호사 개업을 꿈꾸지만, 그 시장도 점점 포화상태가 돼가고 있다며 근심이 가득하다.

‘억대 연봉’의 상징인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친구들도 “언제 잘릴 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며 노심초사하긴 마찬가지다.

해마다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꼽는 재벌 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친구의 입에서도 어김없이 한숨 섞인 걱정이 튀어나온다.

“조만간 회사에서 밀려날 게 분명한데, 이 나이에 재취업이 될 리가 없잖아. 경기가 이렇게 나쁜데 장사를 하기도 쉽지 않고. 애들 대학교육에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사업한답시고 퇴직금 까먹으면 곧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지.”

지금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무엇일까? ‘불안사회’, ‘위험사회’, ‘1대 99의 사회’, ‘피로사회’, ‘갈등사회’ 등 여러 가지를 떠올릴 것이다. 모두 공감이 가는 개념들이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바로 ‘절벽사회’다.

대다수 국민이 한 발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벼랑 끝에 서있는 사회.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한국사회 전체가 천길만길 낭떠러지 끝에 위태롭게 서 있어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다.

지금은 비록 서울 요지에 번듯한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고 고액 연봉도 받고 있지만, 직장에서 밀려난 뒤 한 번만 사업에 실패하면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막장사회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출발부터가 불평등하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비가 연간 2,000만 원을 웃도는 자립형사립고에는 갈 수가 없다.

최소 2년 간 5,000만원 이상 들어가는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변호사, 의사의 꿈을 접는 게 현명하다. ‘교육 절벽’이다.

출산과 육아로 잠시 일터를 떠났던 경력단절 여성이 일자리를 다시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일자리 절벽’이다.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이 몰고 온 ‘인구 절벽’, 재벌 대기업의 승자독식이 초래한 ‘재벌 절벽’….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의사나 변호사조차 앞으로 경쟁이 더 치열해져 수입이 줄어들면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불안에 떨고 있으니, 평범한 직장인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절벽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성이 상실돼 스스로를 파괴한다. 낭떠러지 밑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다들 죽기살기로 돈 벌이에 매달리고 자녀에게도 공부와 성공만을 강요한다.

이는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 극심한 경쟁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탈적 착취 행위가 만연하는 가장 큰 이유다.

절벽사회의 불안과 공포는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죽어라고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니 행복지수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하고 이혼하며 아이 낳기를 기피한다.

학생들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학습량, 세계 제1의 사교육비가 증명하듯 강박적으로 공부에 매달린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우울증 발병률은 선진국의 4배에 달한다. 학습시간은 많아도 공부에 대한 흥미도는 세계 꼴찌다.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나는 꿈이 없다’고 답변할 정도다. 학부모의 학대와 교사의 강요로 이뤄지는 공부가 즐거울 리 없다.

절벽사회에서 벗어나려면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국가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요즘 논의되는 ‘보편적 복지’는 바로 국민 기본생활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떠안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적극 공급하고, 가계 압박의 주범인 사교육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흡수하며, 과도한 의료비 지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와 저출산 탓에 복지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당연히 지금보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 시대가 끝나고 구조적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천문학적인 복지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해법은 국민 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국가 자원배분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는 ‘경제민주화’였다.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다. 1960년대 개발독재 시대 이래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은 세계 최고의 자살률, 중산층 붕괴, 600만 명의 비정규직과 100만 명의 청년백수, 1,000조 원을 웃도는 가계부채 등 국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왔다.

지금처럼 재벌에 의존하는 성장으로는 절벽사회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 재벌 개혁을 통해 성장의 과실이 고루 퍼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한다.

오로지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에 집중했던 재정과 세제정책도 고용과 분배 위주로 뜯어고쳐야 한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조세 부담률을 높이는 ‘한국형 버핏세’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절벽 밑으로 떨어져 공멸한 것인가, 낭떠러지 끝에 튼튼한 복지 안전망을 설치해 공생할 것인가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이 칼럼이 독자들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과 상황 분석에 머물지 않고 절벽사회의 현실에 분노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직장과 가정, 동아리, 노동조합, 정당, 사회단체 등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공멸의 위기로 빠트리고 있는 절벽사회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의 목소리가 확산되길 바란다.

2012년 타개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독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