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지난 일요일(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램스가 신시내티 벵골스를 23-20으로 꺾으면서 2022년 슈퍼볼(2022 Super Bowl LVI)을 차지했다.

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올림픽의 위상이 이전보다 못한 가운데, 미국 최대의 문화 이벤트라 불리는 슈퍼볼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 30초 광고당 방송 광고료는 700만 달러(역 84억원)로 사상최대를 기록했고, 특히 가상화패 관련 회사들의 광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평균 입장권 가격은 6000달러를 훌쩍 넘었고, 경기장 주변 주차비만 해도 500달러를 상회했다.

공식 집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3600만 가정이 이번 슈퍼볼을 관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 집에 한 집 꼴로 경기를 봤다는 얘기다.

슈퍼볼이 어떻게 미국 최대 이벤트가 되었는지는 예전 칼럼에서 다뤘기 때문에, 이번 칼럼에서는 슈퍼볼 이벤트의 꽃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하프 타임 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슈퍼볼의 하프 타임 쇼는 그 자체로도 천문학적 규모를 자랑하는 공연으로,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왔다. 보통 스포츠 경기는 쉬는 시간에 시청률이 떨어지기 십상이지만, 슈퍼볼 하프 타임 쇼의 경우 순간 시청률이 본 게임 보다 높은 경우도 허다하다.

컨트리 가수 미키 가이튼이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의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제56회 슈퍼볼 로스앤젤레스 램스와 신시내티 벵골스의 경기에 앞서 미국 국가를 부르고 있다. [잉글우드=AP/뉴시스] 
컨트리 가수 미키 가이튼이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의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제56회 슈퍼볼 로스앤젤레스 램스와 신시내티 벵골스의 경기에 앞서 미국 국가를 부르고 있다. [잉글우드=AP/뉴시스] 

그렇다면 미국 최대의 문화 행사라 일컬어지는 슈퍼볼의 하프 타임 쇼에서 공연을 펼치는 아티스트는 얼마를 받을까?

놀랍게도 미국프로풋볼리그(NFL)는 공연자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공연비용은 부담하지만 이마저도 공연자가 수백만 달러를 추가로 써가면서 무대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만큼 슈퍼볼이 아티스트들에게도 의미 있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반증일 것이다.

올해는 역대급의 라인 업으로 닥터 드레, 스눕 독, 에미넴, 켄드릭 라마, 매리 제이 블라이지가 무대를 꾸밀 것으로만 알려졌었는데 50 센트가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닥터 드레는 미국 빈민촌의 생활을 갱스터 랩에 담은 N.W.A 그룹의 성공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래퍼로, 90년도 이후로는 스눕 독, 에미넴, 50 센트 등의 힙합 슈퍼 스타들을 발굴한 거장이다.

NFL은 왜 이들을 슈퍼볼 하프 타임 쇼 무대에 올렸을까?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펩시 하프타임쇼 포스터(사진=펩시 슈퍼볼 사이트/뉴시스)
펩시 하프타임쇼 포스터(사진=펩시 슈퍼볼 사이트/뉴시스)

첫째 이들의 음악에 열광하며 자란 세대가 지금 한창 경제활동과 소비가 활발한 엑스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다. 바로 대기업 광고들의 주 타겟 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힙합을 처음 접한 1세대들은 주로 90년대와 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로 이들의 음악에 열광하던 세대다.

이들은 이번 공연에 열광했고, 젊은 시절의 우상들이 하프 타임 무대에 선 모습을 보고 진한 향수(nostalgia)를 느꼈다.

두번째 이유는 닥터 드레 사단이 로스엔젤레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합합 문화는 자신의 뿌리와 지역 문화에 기반한 행동과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Keeping it real’이라는 대중적인 표어는 자신의 출신에 진실되라는 은어로 자주 사용된다.

이번 공연은 로스엔젤레스 잉글우드 지역에서 개최되었고, 하프 타임 쇼 무대도 이 로스엔젤레스 지역 힙합 문화의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를 표현했다.

무대 바닥에는 로스엔젤레스 시내 지도를 그려냈고, 빈민가 커뮤니티 주택과 로우라이더(lowrider) 문화를 상징하는 빈티지 자동차를 그 앞에 주차해놓은 세트를 두고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모두 지역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상징물들이다.

슈퍼볼 하프타임 티저 영상(사진=펩시 유튜브/뉴시스)
슈퍼볼 하프타임 티저 영상(사진=펩시 유튜브/뉴시스)

공교롭게도 이번 슈퍼볼을 차지한 램스는 1994년에 로스엔젤레스를 떠났다가 2016년에 다시 돌아와서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팬층의 애착 형성이 절실한 터였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비평가들도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의 공연에 버금가거나 뛰어넘는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미국 4대 리그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NFL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기에 이번 공연이 내포하고 있는 모순들 또한 드러난다.

미식축구는 선수 생명이 가장 짧고 만성 뇌진탕 후유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을 가장 많이 겪는 종목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흑인이지만 흑인 인권을 경시한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2016년에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콜린 캐퍼닉 선수가 미국 국가 제창 도중에 무릎을 꿇고 재계약이 불발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이 기획된 배경에는 이스트 코스트의 거장 제이 지의 역할이 컸다.

제이 지가 설립한 기획사(Roc Nation)가 2019년부터 NFL과 인권신장을 위한 협업을 하면서 이번 공연도 성사될 수 있었다.

NFL이 가급적 무릎 꿇은 퍼포먼스를 지양해달라고 했다고 하는데도, 이번 공연에서 에미넴은 무릎을 꿇었다.

케퍼닉은 NFL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에미넴은 NFL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다.

이제 힙합이 NFL 전면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무대 뒤 현실에서의 NFL은 여전히 온갖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는 조직이다.

13일(현지시간) 유명 래퍼 에미넴이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제56회 슈퍼볼 공연에서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는 2016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트위터 갈무리/뉴시스)
13일(현지시간) 유명 래퍼 에미넴이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제56회 슈퍼볼 공연에서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는 2016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트위터 갈무리/뉴시스)

이번 슈퍼볼 전후로도 마이애미 돌핀스의 흑인 감독이 인종차별로 소송을 제기했고, 워싱턴 커맨더스의 구단주는 성추문 스캔들에 휘말리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이 주 소비층인 엑스 세대와 밀레니얼 층의 열광을 이끌어냈다지만, 미래의 주 소비층인 제트 세대에까지 그 열기가 전달됐는지는 미지수다.

힙합이 주류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는 사회저항운동을 표상하던, 자신의 출신에 진실되라던 메시지가 주효했다.

반면에 제트 세대는 이미 힙합이 주류 문화로 자리잡은 이후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지역 정체성에 기반한 애착보다는 초국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터넷과 모바일 문화환경에서 자라난 세대다.

나이든 세대에게나 90년대 갱스터 래퍼의 주류 문화 전면 등장이 가슴 벅찬 일이지, 젊은 세대에게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일이다.

NFL이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포츠 리그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미 프로농구(NBA)가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만 봐도 NBA가 6400만명이고 NFL은 2340만명에 불과하다.

NFL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조만간 NBA에게 선두 자리를 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년에는 과연 NFL이 인권관련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울지, 또 내년 하프 타임 쇼에는 누가 나올지 미식축구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펩시의 타이틀 사용료가 만료되면서 하프 타임 쇼의 스폰서십 비용이 얼마에 거래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중학생때 처음 N.W.A의 음반을 접하고 열광했던 필자도, 올해 슈퍼볼 공연이 NFL의 전시용 제스처가 아닌 진실된 화합의 장으로 승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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