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한 사람의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모험가로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의 삶은 기존 물리학의 성취를 완벽하게 흡수하고 이를 전진시켜 인류의 오래 된 질문에 대답하려 한 노력으로 일관되어 있다.

▲ 김선태 편집위원

19세기 고전이론은 크게 갈릴레오의 전통적 속도 개념에서 출발하여 뉴턴의 힘과 중력 법칙 그리고 맥스웰의 전자기력 공식 등으로 절정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에테르의 존재와 빛의 성질 같은 문제, 역사적으로는 우주와 생명의 탄생을 둘러싼 신비에 이르기까지 고전이론은 다양한 모순과 난제에 봉착해 있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의 성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 등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을 통해 고전이론의 난제를 대거 해결하였다. 이들을 통칭해 관성계에 적용되는 특수상대성이론이라 부를 수 있는데,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더욱 확장하더니 1915년 ‘중력의 장방정식’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을 확립했다. 특히 상대성이론은 소립자의 특이한 운동 방식에 관한 예측을 포함하고 있어 그로써 양자역학이 발전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런데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상호 길항 관계도 강하여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원자 크기의 소립자와 우주론에서 각자의 장단점이 분명함에 따라 더욱 그러했다.

예를 들어 빛과 전자를 포함한 소립자 영역에서는 양자역학의 예측이 대부분 적중하였지만 행성과 은하의 운동 같은 우주 분야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의 도입이 필수적이었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을 괴롭힌 문제는 자연계에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 등 네 가지 힘이 존재하면서도 이들 간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로 중력을 취급하는 상대성이론과 그 나머지 힘들을 취급하는 양자역학의 간극을 더욱 벌리게 만들었다. 호킹이 과학에 입문하던 1960년대 물리학계의 상황이 대략 이러했다.

우주론의 혁명, 블랙홀의 재발견

당시 블랙홀의 존재는 과학계에 비상한 두통거리였는데, 이를 다루려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지 않을 수 없어 더욱 그러했다. 특정한 조건에서 별은 내부 중력을 이기지 못해 점점 작게 뭉쳐 들어가다 마침내 하나의 점, 즉 특이점으로 축소된다.

이것이 블랙홀인데 호킹은 1970년 이 분야의 대가였던 로저 펜로즈와 함께 특이점이 우주에 일반적인 현상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들의 증명을 통해 우주는 특이점을 발생시키는 블랙홀에서 시작되었음이 밝혀진 셈인데, 이것이 오늘날 빅뱅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호킹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과학자들을 괴롭힌 또 다른 문제가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하면 블랙홀은 그 내부 중력으로 인해 빛을 포함한 모든 물질을 집어삼키므로 그 내부 정보를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블랙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으므로 우주의 시원에 관해서도 알 길이 없게 된다. 호킹은 후일 영국 BBC 강연에서 이 사실이 지닌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만약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지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 블랙홀에서 무엇이 나올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주변에는 블랙홀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요. 그러나 이것은 원리의 문제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에서)

특이점을 연구하던 무렵 호킹은 루게릭병이 점점 악화되어 휠체어에 의지한 채 손가락조차 겨우 움직일 정도였지만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호킹은 기어이 사건의 지평선 문제를 해결하여 어눌한 말투로 이에 관한 연설을 행했다. 그에 따르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모두 적용할 경우 블랙홀은 자신의 질량에 반비례하는 온도를 지닌 일종의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이는 블랙홀이 자신에 관한 정보를 내보낸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우주의 시원에 한층 더 다가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의 연설에서 호킹은 이 놀라운 발견의 감동을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블랙홀의 열복사) 가능성은 정보를 충분히 보존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정보가 아주 유용한 형태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마치 백과사전을 태우는 것과도 같습니다.”(위의 책 60쪽)

호킹 복사로 알려진 이 현상을 발견함에 따라 호킹은 일약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그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결합에 앞장서며 우주의 시원 문제를 더욱 깊이 파고들었으며 이를 인간 존재의 이유로까지 심화시켰다. ‘위대한 설계’는 그 과정에서 호킹이 내놓은 중간 점검 차원의 책이다.

과학이 말하는 우주의 시원

이 책에서 호킹은 “우리가 과연 우주의 시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과학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에서 답한다. 먼저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호킹은 어느 정도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린다. 우리 인간이 속한 우주는 발생 가능한 수많은 우주의 하나이고, 그 모든 우주는 어떤 외부의 개입이 없이 자발적으로 창조된 것이며, 우리는 우리 우주를 관찰할 완전한 양자중력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호킹의 결론은 희망 사항으로 보일 수 있다. 오늘날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양자중력장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수준의 결합을 이루고는 있다. 예를 들어 자연의 네 가지 힘은 중력장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지만 양자장 이론에 따르면 이들 장은 힘 운반 입자와 물질 입자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되며 그들 사이에는 상당한 호환성이 존재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전자기력을 양자이론으로 기술한 양자전기역학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는 최초로 수립된 자연법칙의 양자버전이기도 하다.

우주의 시원 문제로 돌아가 빅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발전이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빅뱅 직후 우주의 확장과 관련하여 인플레이션 이론이 도입되는데, 이 때 초기 우주의 팽창 속도가 빛보다 빨라 상대성원리에 모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지만 양자장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이 축소되어 시간 차원이 공간 차원과 뒤섞이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 비유하자면 시공간이 휘어져 공간의 거리처럼 시간의 거리 역시 길어지면 빛의 속도가 일정해도 우주는 엄청나게 거대하게 팽창할 수 있는 것이다.

▲ 『위대한 설계』 =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공저. 전대호 역. 도서출판 까치. 256쪽. 2010년 10월 10일 출간.(사진 오른쪽)『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 스티븐 호킹 저. 이종필 역. 동아시아 출판사. 156쪽. 2018년 03월 28일 출간.(사진 왼쪽)

호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 과학계에서 다중우주론이라 부르는 개념을 수용하는 한편 자신도 많은 기여를 했다.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태초에는 양자장 효과에 따라 단일한 우주가 아니라 확률적으로만 예측 가능한 수많은 우주, 가령 10을 500배 곱한 양의 우주가 발생한다. 그런데 태초의 순간은 이미 다양한 자연법칙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약한 핵력의 강도에 미세한 차이가 생기면 초기 우주의 상태가 지금과 크게 달라져 우리 우주의 생성은 불가능해진다.

다중우주론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존재하고 그것을 지칭하는 명칭도 다양하며 학자들 사이에도 정확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굳이 이러한 가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호킹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다. : 우리 우주는 각기 다른 법칙을 지닌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의 자연법칙과 이론 수준으로 다른 우주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존 인류는 빅뱅 이래 137억년 동안 명확한 인과 관계 없이 그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 뿐인 현상이 수없이 누적된 행운의 산물이다.

철학의 근본 문제를 향하여

이제 시야를 과학이 아닌 철학의 영역으로 옮겨 보자. 이 책에서 호킹은 자연법칙이 우주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는 알려주지만 우주가 왜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며, 그 물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존재할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위대한 설계, 216쪽)

만물은 어떤 하나의 시원에서 비롯한다는 것, 이것은 과학계의 예측일 뿐 아니라 철학사의 오래된 신념이다. 오늘날 이 문제는 과학이 풀고 철학이 해석해야 할 숙제로 남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는 힘 입자와 물질 입자가 구분되었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은 그 둘이 어떤 상위 존재의 하위 개념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를 호킹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신이 도넛을 뒤집으면, 도넛의 모습은 뒤집기 전과 다르지 않다. (...) 초대칭성의 중요한 함의들 중 하나는 힘 입자들과 물질 입자들, 따라서 힘과 물질이 사실은 동일한 무엇인가의 두 측면이라는 것이다.”(위대한 설계, 144쪽)

이처럼 호킹은 궁극의 과학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궁극의 철학적 탐구를 병행했다. 만물의 시원에 관한 질문 이외에 다른 하나의 예가 “사물이 객관적으로 실재함을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를 존재와 의식의 문제 또는 객관적 실재의 문제라고도 한다. 그런데 존재와 의식이 완전히 분리된 무엇이라고 전제하는 순간 이 문제는 영원히 답할 수가 없다. 일찍이 레닌은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설명하면서 당당하게 “인간 의식은 객관적 존재의 반영이다”라고 주장했지만 그 반영 경로를 밝히지는 못했다.

호킹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하는 전혀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철학사적으로 대상이 객관적으로 실재함을 밝히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가 실재에 관한 모형을 세우고 관찰을 통해 모형이 실재와 부합한다는 결론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호킹은 자신이 모형 의존적 실재론이라 부른 이 방식이 기존의 철학적 질문을 우회하면서 객관적 실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은 실재론과 반실재론이 벌여온 모든 논쟁과 토론을 우회한다. 모형 의존적 실재론에 따르면, 모형이 실재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고, 오직 모형이 관찰에 부합하느냐는 질문만 유의미하다.”(위대한 설계, 57쪽)

근대 이래 과학은 수많은 가설과 더불어 모형을 세우고 무수한 검증을 통해 객관적 실재에 부합되는 모형을 확인해 이를 법칙으로 전환했으며 이 법칙을 바탕으로 인류 문명에 이바지해왔다.

우아한 사유, 숭고한 삶

많은 사람들이 호킹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그가 과학계에 남긴 업적을 언급한다. 호킹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무엇을 남겼으며, 자신의 업적보다 자신의 숭고한 삶, 우아한 사유로 인해 훨씬 오랫동안 우리의 가슴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호킹은 훌륭한 물리공식의 제1 조건으로 ‘우아함’을 들 정도로 이 단어를 사랑했다).

호킹은 신체에 내려진 천형(天刑)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근원을 향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손발이 묶인 채 거의 사유의 힘에만 의지하여 특이점 이론과 호킹 복사로 대표되는 빅뱅 우주론의 기초를 수립했다. 호킹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우주의 시초와 만물의 근원을 밝힐 궁극의 물리법칙을 확신하고 이를 밝히는데 평생을 쏟아 부었다.

호킹은 인류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고든다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음을,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불굴의 의지로 입증해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통해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을 남겼다면,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지금 호킹은 근원을 향한 추구야말로 값진 삶임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이를 칸트식 정언명령으로 바꾸어 “항상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당부로 이해할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위트와 열정으로 빛나는 고상함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령 블랙홀의 아버지라는 애칭에 걸맞게 호킹은 자신에게 남은 한 줌 시간을 오로지 블랙홀의 신비에 집중했으며 자신의 강연에서 이 점을 즐겁게 털어놓았다.

“나는 현재 케임브리지 동료인 말콤 페리와 하버드 대학의 앤드루 스트로밍거와 함께 초전환이라 불리는 수학적 아이디어에 기초해 새로운 이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블랙홀로부터 정보가 되돌아오는 기제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에서)

우리가 속한 우주에서 인간이 지닌 사명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인간 사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스티븐 호킹만큼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여준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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