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초 다국적 제약회사인 지멘스의 시장지배력 남용 등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럼에도 우리나라 혈액공급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병균, 감염 등을 진단하는 올해 사업에 세계적 의료 진단기기 업체인 로슈, 애버트 등이 뛰어들 태세여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작은 공공의료시장이 ‘공룡들의 전쟁’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큰 병원들에서 쓰는 비싼 기기나 약을 공급해온 다국적 의료회사들이 더 작은 시장인 공공 의료기관의 입찰에도 덤핑에 가까운 염가로 참가해 그간 진단 기기나 시약을 개발해온 국내 중소기업들은 거의 도산지경이 된다. 이는 엄연히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들이다.

공정위의 의료시장 개선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기업인 지멘스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유명 로펌을 통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멘스는 올해 있을 적십자사의 ‘혈액감염진단’ 입찰에도 참여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들 다국적 회사들은 가격 차별화 및 일시적인 염가전략 등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중소기업의 입찰의욕을 꺾고 있다.

한국의 체외 진단시장을 독과점 하고 있는 ‘한국애보트’사와 ‘한국로슈진단’도 뛰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5일 적십자사가 입찰 공고한 ‘5년간 600억원’의 혈액진단사업 공개입찰경쟁 설명회에 나왔다. 이들이 그간의 경험과 막강한 로비력, 가격경쟁력 등으로 참여하면 공정위의 ‘중소사업자 경쟁여건 개선’ 노력을 무위로 만들 수 있어 국내 업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본사인 한국애보트는 현재도 적십자사에 일부 품목을 남품하는 과점 업체다. 애보트는 지난해 적십자사의 같은 입찰에서 ‘우선협상권’을 받고도 입찰제한액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납품을 포기한바 있다.

애보트는 올해 재입찰 공고 후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제품으로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지난해의 포기 입장을 바꾸어 참여의사를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 일반 병원에 공급하고 있는 가격보다 턱없이 낮은 ‘염가입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신영호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이 지난달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멘스의 시장지배력 남용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애보트는 현재 과점 납품하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염가전략’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진출을 일단 막고, 다시 독점지위를 획득하면 장기계약을 통해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이럴 경우 적십자사는 공공의료기관이 혈세를 낭비하고 국민들의 큰 부담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스위스 제약사의 계열사인 ‘한국로슈진단’도 같은 입찰에 참여의사를 보이고 있다. 국내 병원 체외진단시장의 과점업체인 로슈진단은 현재 국내 대형병원 등에 공급하고 있는 비싼 가격의 병원제품을 파격적으로 낮추어 들어올 공산이 크다.

로슈 제품은 가격이 비싸고 공공의료 입찰에는 맞지도 않은 스펙이다. 지멘스가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싸고 좋은 제품의 진출 자체를 막아 독과점 위치를 강화하려다 공정위의 과징금 제재를 받은 선례가 재연될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최근 미래먹거리를 위한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서 핵심 사업으로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내걸고 위원회 내에 ‘헬스케어특위’까지 만들어 범부처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사업 중의 하나가 융합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및 체외질병 진단 사업이다.

헬스케어 산업중 체외진단산업은 특성상 대기업이 아니라 다품목 중소시장에 맞는 업종이어서 우수한 기술의 국내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의 적십자 혈액원은 자국내 중소기업인 ‘후지로바이오사’를 진단기업으로 전격 채택해 이 경험을 통해 현재 유럽 등 큰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일본은 이미 십년 전부터 헬스케어산업을 육성해 온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지멘스 사건과 공공의료기관의 입찰시장의 불공정 혼탁상을 바로잡아 역량 있는 중소기업의 시장진입을 방해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공공의료 시장에도 일반 산업에서처럼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메디컬 코리아(Medical Korea) 2017'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눈 검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국내 중소기업들이 지난해도 다국적사의 의료기기 관련 염매정책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한바 있다. 다국적사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하고도 사후에 유명 로펌을 앞세워 적당한 과징금으로 때우려 한다.

이는 공권력의 권위를 비웃는 다국적 진단의료기기 회사들의 횡포이다. 당국은 이런 부당행위에 미리 제동을 거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 다국적사가 공공의료기관 입찰에 염가로 참여하는 것을 막아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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