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스포츠 세상

[이코노뉴스=이현우 조지아 서던 주립대 교수] 한화 이글스는 올들어 줄곧 프로야구의 중심 무대에 서 왔다. 순위와는 크게 상관없다. 김성근 감독 영입 이후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팬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벌떼야구’에 환호했고 연패(連敗)의 수렁에 빠질 땐 아쉬워했다. 시즌 막바지 ‘힘겨운  5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 이현우 교수

한화 이글스는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명문 팀이지만 2009년 이후 지난 시즌까지 최하위권에 머물면서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만년 꼴찌’라고 해서 한화 팬들의 응원열기가 식은 적은 거의 없다.  한화 팬들은 ‘그래도 이글스 때문에 산다’며 여전히 경기장을 찾았다. 올 시즌도 그랬다.

만성적인 슬럼프에 시달리는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덤(fandom) 현상은 스포츠 심리학자들의 커다란 관심거리이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1908년 이후 100년이 넘도록 우승을 맛보지 못한 시카고 컵스의 팬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경기장을 채우고 있다.

86년간의 기다림 끝에 2004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보스톤 레드삭스는 820경기 연속 매진을 달성한 명문구단이다.

이 두 팀의 우승 횟수를 합쳐봤자 뉴욕 양키스의 우승 기록에 반도 못 미치지만 그렇다고 관중 수에서 이 두 팀이 양키스에 밀리지는 않는다. 컵스와 레드삭스는 어느 구단 못지않은 열성 팬들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현상은 팀과의 동일시를 통한 집단적 정체성이 강한 충성도 높은 팬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팬덤에는 희망과 애정이 공존한다.

릭 스나이더 박사의 희망 이론은 행위에 대한 주체적인 생각(agency thought)과 문제해결을 위한 경로의 사색(pathway thought)이 목표에 대한 희망적 사고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한화 이글스 팬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또 한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를 희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린 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라는 주체적인 생각과 ‘매 경기 1승씩 착실하게 쌓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가능성이 있다’라는 등의 달성경로를 탐색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 한화와 넥센의 26일 경기 모습. 한화는 이날 넥센을 13대3으로 꺾고 5위 희망을 이어갔다 <사진=SPOT TV 영상 캡쳐>

열심히 응원하는 와중에 김태균 선수가 홈런이라도 터뜨려주면 ‘역시 우린 할 수 있어’라는 주체적 생각이 힘을 받고 관중석의 동료 팬들과 그 꿈을 키워나간다.

경로의 사색이 희망을 부풀리는 또 하나의 사례로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다. 대(對) 폴란드 경기에서의 첫 골, 그리고 16강 진출, 또 스페인과의 승부차기를 통해 진출한 4강의 무대.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 악마의 표어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의 단계를 밟을 때마다 우리는 꿈으로만 여기던 희망과 목표에 가까워지는 희열을 느꼈다.

희망이 존재하는 한 팬들은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희망은 ‘개인’에게 주체적인 생각과 힘을 주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주체적 성장은 ‘공동체’를 통해 더 견고해진다.

아서 에론과 엘린 에론 박사 부부의 자기확장모형(self-expansion model)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키우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친밀한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을 자아에 받아들임으로써도 자신을 확장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누구나 더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아이를 가진 후 강해지는 어머니나 친한 친구의 영향으로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는 청소년처럼 사람의 자아는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스포츠가 자기확장을 위한 좋은 환경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라운드의 선수들과 동일시하면서 함께 꿈을 꾸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다. 응원석에서 동료 팬들과 함께 응원구호와 응원가를 외치면서 현장의 뜨거운 열기의 기억을 공유한다.

팬들은 선수와 관계자들, 그리고 동료들과의 팬덤을 자신의 자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뜨거운 감정을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그 팀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는데, 팀과의 관계가 이처럼 ‘사랑’의 감정에 가까워지면 어지간한 팀의 결점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용서뿐인가. 우리 팀의 더티 플레이도 무조건 감쌀 줄 알고 ‘불리한 판정’(객관적으론 공정하더라도)을 내리는 심판과 상대팀을 싸잡아 욕하는 편애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사랑이 지나치면 훌리건 현상 같은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묘하게도, 자기의 꿈을 자식에게 투영시키는 부모와 우승의 꿈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통해 보고 싶어하는 팬의 심리는 닮아있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손바닥이라도 맞추면 대단한 일인 양 호들갑을 떨며 기뻐한다. 사랑에 빠진 팬들의 보상체계도 단순하다. 안타 하나 혹은 호수비 하나에 우리 팀 잘한다며 기뻐한다.

사고를 많이 치는 자식이라도 ‘이 애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다’며 응원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열성 팬들은 오늘도 경기장을 찾는다.

반대로, 사고치던 자식이 철이 들면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며 효도를 다짐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진심으로 관중과 호흡하며 감격의 눈물도 함께 흘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의 프로 팀들은 팬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프로들은 철이 들어야 한다. 구단이든 선수든 프로는 팬들의 사랑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