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자연에서 역사의 교훈을 읽기 어렵고 역사에서 자연의 감동을 보기 어렵다.

▲ 김선태 편집위원

만년의 풍화가 켜켜이 쌓인 광대무변의 땅 안데스를 한 번 발걸음으로 헤아리고 전달하기란 더욱 어렵다.

최근 KBS 보궐이사로 선임된 조용환 변호사가 이 일에 도전했다. 2016년 10월 20일에서 12월 18일까지 약 60일 7000킬로미터의 순례 끝에 건져 올린 남미 여행기 『안데스를 걷다』 이야기다.

책에서 그는 선사의 유적이 남긴 신비, 근현대의 굴곡에서 얻은 지혜, 경이로운 자연에서 받은 위안을 조화롭게 엮어 역사와 자연이 혼연일체 된 안데스를 소개한다.

선사의 신비, 현대의 굴곡, 자연의 경이

저자가 2개월에 걸친 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 애초 선정한 경유지는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일대였다. 그러던 중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이 ‘어이없게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저자는 위기감 속에 보고타를 방문지에 추가했다. 느긋하게 즐겨야 할 여행에 해결해야 할 묵직한 과제를 추가한 셈이다.

▲ 『안데스를 걷다 (안데스의 숭고한 자연과 역사에 보내는 헌사)』 = 조용환. 진실의힘. 488쪽. 2017.12.04.

하지만 그로 인해 책은 늘어난 분량 이상으로 깊고 그윽한 향취를 남기게 되었다. 남미의 웅장한 자연과 남미 사람들의 고단한 역사가 서로 뒤엉켜 독자를 안데스의 가슴 속 신비로 이끌어 간다. 그 속에서 남미의 삶과 고통과 희망은 고스란히 우리의 그것들과 혼연일체가 된다.

여정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시작되는데 거기서 저자는 콜롬비아가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지 여부를 느끼고자 했다. 길게 물을 것도 없이 이는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함이다.

콜롬비아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 그러니까 16세기부터 스페인 지배하에 놓였고 우여곡절 끝에 1886년 지금의 공화국 체제를 갖추었지만 오랜 식민 지배의 후유증과 미국의 간섭 등으로 여러 차례 내전을 겪었고 지금도 내전이 지속되는 중이다.

50년에 걸친 내전이 오늘날 콜롬비아에 남긴 가장 큰 비극은 권력을 쥔 거의 대부분의 지배자들이 부패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정부군이건 게릴라건 좌익이건 우익이건 민족주의자이건 친미세력이건 예외 없이.

과연 이 비극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이렇게 묻다 보면 독자는 질문의 대상이 콜롬비아인지 우리나라인지 헷갈리게 마련이다. 그처럼 간단치 않고 피아 식별조차 어려운 질문을 저자는 방문하는 나라마다 던지고 독자들은 그 때마다 묘한 기시감(旣視感)에 빠져들 것이다.

그렇다면 예외 없이 수백 년 식민 지배를 받아 온 남미 국가들의 과거는 그저 빛바랜 유산들로만 남아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아니 그 반대로 남미는 지극히 찬란한 유산들과 함께 여느 대륙 못지않게 당당한 만년의 문명 대업을 자랑한다.

콜롬비아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안데스에 새겨진 인류의 발자취는 양에서나 질에서나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하다. 가령 보고타의 황금박물관에 모셔진 황금 뗏목은 우리의 백제금동대향로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아하고 정치(精緻)하다.

페루 사막 한가운데 사방팔방으로 그려진, 최장 거리 30킬로미터에 달하는 나스카 라인은 지상에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관찰하면 드넓은 모래사막에 그려진 해초, 거미, 콘도로, 악어, 조개, 고래 등 온갖 생명의 조각이 넋을 앗아간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성지 마추픽추는 가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경이 그 자체인 이곳에서 저자가 남긴 기록 또한 마찬가지다.

- 마추픽추와 마주하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 이게 정말로 실재하는 모습인지, 내가 그 자리에 온 게 맞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완벽함이라고 할까, 가장 험준한 터전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부드러움과 평화로움.

▲ 잉카의 요람 마추픽추와 우루밤바 강을 비롯한 주위 전경. 사진 = McKay Savage(영국, 런던)

이 지역 작물시험장 모라이와 살리네라스 염전은 고대 안데스인들이 놀라운 지혜와 기술로 비옥한 농토를 가꾸었음을 증명하는데 동시대의 다른 대륙에서 비근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들은 서기전 3500년 무렵 감자를 작물로 개량했고 그밖에 다양한 곡물을 인류의 주식으로 다듬었다.

볼리비아 티와나쿠 유적지는 동시대 건축술의 정수라 말해 손색이 없다. 신전은 진흙 자르듯 정교하게 자른 바위를 사용해 지었고, 거기 새겨진 조각들은 다채롭고 오묘해서 인간계·자연계·천상계 각각의 우주를 형상화했다는 학설까지 낳았다. 칠레 이스터 섬에 달리 설명이 필요할까. 문명의 불가사의로 남은 모아이 석상과 각양각색의 나무 인형들, 성지(聖地) 오롱고 등이 방문객의 찬탄 속에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뿐.

구도의 여정, 진솔한 감상, 지극한 시선

저자는 저들 경이로운 유적지들로부터 시선을 넓혀 안데스의 비범한 산하로, 다시 남미의 치열한 현실로 나아간다. 겨우 두 달 여정의 기록이 심상치 않게 방대해서 이게 여행서인지 수행서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다보니 어느 대목에서 저자의 일정은 거의 자학적이기까지 하다.

그중에서도 기자를 당황케 한 대목이 마추픽추를 다녀 온 뒤 올라간 쿠스코의 무지개산 이야기다. 이전에 옥룡설산이나 안나푸르나에 올랐다는 자부심으로 해발 5100미터 고지를, 저자는 고산증과 오한과 굶주림 속에 반쯤 죽을 고비를 겪으며 올랐고 또 거의 기다시피 걸어 내려와 장렬하게 쓰러졌다. 대체 왜 그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저자가 남긴 고백에 시선이 간다.

- 장대 같은 서양 젊은이들도 말을 타고 올라가는 무지개산을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갔다 돌아왔다. 내가 대견했다. (…) 나 이런 사람이야, 떠들며 자랑하고 싶은데 옆에 아무도 없어 서운했다.

이방인들이 대개 그러하듯 저자 또한 오늘은 고개 숙여 고향 그리는가 싶더니 내일은 고개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곤 하는데, 그 장단에 독자까지 덩달아 가슴 졸일 필요는 없다. 저자의 시선을 일일이 따라다니기보다 가끔 책에 수록된 사진 몇 장을 그저 순한 미색(美色)의 눈으로 바라만 보자. 사진은 여행서적을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매우 폭 넓고 다양한 관심사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예를 들어 무지개산은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라 할 만하지만, 저자에게는 자신을 이겨내고자 하는 극한의 시험대였다. 이 때 시선을 잠시 돌리면 독자들은 그날 저자가 산중에서 얻은 선인장 사진, 혹독한 추위 속에 온몸을 털복숭이 가시로 뒤덮은 채 버티는 생명체의 모습에서 안데스의 무언가를 읽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콜롬비아가 자랑하는 보테로의 사진에서, 페루 ‘기억·관용 및 포용의 장소’에 비치된 사진 ‘실종(DESAPARECIDOS)’에서, 콘도르의 성지라는 콜카 계곡 어느 귀퉁이에 버려진 듯 자리 잡은 촌락에서, 잉카의 마지막 후예들이 마추픽추를 지키고자 끊어버린 잔도(棧道)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화수분이라는 우유니 소금사막과 여행객들의 놀이에서, 모네다 궁의 타자기와 ‘생각하는 방’ 그리고 아옌데 동상의 처연함에서, 저자의 눈물을 쏟게 만든 아르헨티나 빙하국립공원의 트레킹 길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페리토모레노 빙하에서, 누구건 보는 이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물의 벽 이구아수 폭포에서. 스스로 읽고 또 보는 재미란.

이구아수에서 발걸음을 돌리며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저자는 “아쉽고 착잡하고 담담하고 홀가분함 속에 (…)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깊이 감사했다”고 말한다.

그는 심장을 멎게 만들었던 물보라에서 남미의 눈물을 보았던 것일까? 그 눈물이 다시 커지고 점점 커져 어느 새 지구의 통곡이 되는 걸 느꼈을까? 그리하여 가슴에 새겨질 어떤 찬란한 희망을 본 것일까? 어떤 조화로 작가가 원형의 순수함을 체험한 건지, 안데스의 거대한 자연 앞에서 스스로 한 편 시(詩)가 되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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