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해 여름 베트남 호치민시의 한국인이 많이 사는 7구역 카페 앞 바깥탁자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까페 수다’(냉 밀크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햇빛을 차단하는 큰 양산에 빨간 글씨로 영어 ‘KUMHO TIRE’, 한글 ‘금호타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 남영진 논설고문

우리나라에선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금호타이어를 중국 기업에 매각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던 때였다. 한때 호남의 대표기업 아시아나항공사의 자회사인 금호타이어가 한국타이어와 더불어 타이어 업계를 양분한 적이 있었다.

1970년대 초 대학 다닐 때만해도 자동차 타이어는 수입품만 있는 줄 알았다. 하기야 초·중등 때는 펑크 난 자동차 튜브를 고무로 때워 타고 강(江)수욕을 할 때였으니까.

당시는 뚱보 아저씨그림의 미쉘린이나 날렵한 브릿지스톤 만이 타이어를 만드는 줄 알았다. 근데 한국, 금호타이어가 동남아 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세계적 타이어 생산 기업으로 클 줄이야. 이 대기업의 향방이 또 하나의 공룡인 대우조선 매각문제와 함께 몇 년간 우리 재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미쉐린이 프랑스어로 ‘미슐랭’이란다. 그 유명한 세계적 식당 평가 업체인 미슐랭. 미쉐린이 맛있는 택시 운전기사 식당을 소개하다 발전한 거란다.

우리나라 어딜 가더라도 기사식당이라면 일단 믿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기사들은 바빠 삼시새끼에 목숨을 건다. 이 식사시간이 잠깐 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뿐 아니라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꿀맛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맛을 아는 프랑스인의 ‘미슐랭 가이드’가 생겨난 거다.

최근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일단 1월 26일 만기가 돌아온 1조3000억원 규모의 차입금 상환기일을 1년 연장하는 계획을 세웠다.

채권단은 임금 30% 삭감, 191명의 희망퇴직 실시 등의 내용이 포함된 자구안에 대해 2월말까지 노사가 합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노조의 동의서를 포함한 경영정상화 계획서(자구안) 제출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노조가 2월 26일까지 회사 자구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채권단은 차입금 만기 연장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러면 금호타이어는 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금호타이어지회 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소공원에서 ‘자구안 철폐 구조조정 반대’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제출한 ‘자구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지난 1월24일 광주, 곡성공장 소속 조합원 2500여명이 서울에 올라와 오전에는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앞에서 '구조조정 저지 총파업 상경투쟁' 시위를 한 뒤 오후엔 광화문에서 열리는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신년 투쟁 선포식’에 가담했다.

노조 측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자 문책 없이 임금삭감 및 구조조정에 동의하라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채권단과 경영진 측은 회사 위기를 명분으로 자구안 합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송강 금호타이어 곡성지회장은 "구조조정을 반드시 막고 임금 30% 삭감과 191명 정리해고를 포함한 자구계획안을 철회시키겠다는 각오로 총파업 상경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노조의 존립 이유인 ‘해고반대’와 ‘30%의 대폭 임금삭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투쟁이다.

임시 경영진은 회사가 위기상황인 만큼 노사 모두 위기극복을 위해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호타이어 경영 관계자는 “채권단이 만기연장을 한 이유는 노사 간 대화를 통해 고통을 분담하라는 의미”라며 노조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이대로 한 달이 지나면 노사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밥그릇’ 모두를 뒤엎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타이어 3사인 한국, 금호, 넥센타이어 중 영업이익에서 금호타이어는 3위로 내려앉았다. 금호가 2014년 12월 워크아웃을 빠져나온 뒤인 2015년에 1,360억원의 이익을 기록했지만 넥센의 2,250억원에 뒤졌다.

2016년에도 3위에 머물고는 지난해엔 마이너스 163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넥센의 1,853억원 흑자에 비해 2,000여억 원이나 뒤졌다. 반면 월등한 1등인 한국타이어는 2015년 8,850억, 2016년엔 최대실적인 1조1,030억, 지난해에는 8,576억원의 이익을 냈다.

그러나 금호는 지난해 1분기 282억원, 2분기 225억원, 3분기 2억원의 영업 손실을 보다가 4분기에는 호전돼 231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도 1분기 6693억원에서 점차 늘어나 4분기에는 7975억원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작년 실적 추세가 점차 개선되고 있는 만큼 노사가 합심하면 몇 년 안에 경영정상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조가 우물 안 개구리 식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주류 언론도 금호타이어가 조금씩 회생하는데 노조가 ‘재 뿌리기’를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 금호타이어 홈페이지 캡처

언론계와 업계는 물론 금호타이어 공장이 위치한 광주, 곡성 등 지역 사회도 노조에 비판적이 다. 특히 지난 24일 노조가 상경 투쟁한 이후 ‘노조가 회사의 위기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기득권만 지키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중국 더블스타와 SK가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며 “노조의 지금 투쟁기조는 인수 움직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채권단과 노조의 줄다리기는 모두 명분이 확실하다. 그렇기에 타협 가능성이 충분하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죽기 살기’로 싸우겠지만 아직도 싸울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벼랑 끝’이 아니기에 한 달 여의 여유가 있다. 주류 언론이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사태 때 노조 잘못으로만 몰아 결국 망하게 된 전철을 되새겨 이번 사태에는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했다. 아직은 금호 노사는 흥정의 단계다. 다만 노조가 하청협력사와 업계 97% 이상인 중소기업들의 고충을 좀 더 고려한다면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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