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부끄럽지 않냐, 국민 걱정 이렇게 끼쳐도 되냐 빨리 해결하라고 권유 했는데 아직도…"

[이코노뉴스=최아람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28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과 관련,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라"고 밝혔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정 총리는 이날 한국방송기자클럽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배터리 소송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인 LG와 SK가 미국에서 3년째 소송중인데, 소송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벌어지고 있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에 대해 양쪽을 비판한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민간기업간 소송이라는 점에서 자율적 해결을 기대했다. 그러나 자사 이기주의만 앞세울 경우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 총리는 "K-배터리의 미래가 앞으로 정말 크게 열릴 텐데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양사가 나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큰 세계 시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끄럽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ICT 소송에 대해 강하게 양측을 압박했다.

그는 "미국 정치권도 나서서 제발 좀 빨리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며 "양사 최고 책임자와 연락도 해서 낯부끄럽지 않냐, 국민들 걱정을 이렇게 끼쳐도 되냐고 빨리 해결하라고 권유를 했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는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면서 "남이 누군지는 제가 거론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배터리 소송’과 관련, 정 총리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양사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 대승적 합의만이 유일한 해결책…“미국 하원의원들도 합의 촉구할 만큼 중대한 사안”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지난 2019년 4월 ITC와 델라웨어주(州)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SK이노베이션이 자사 인력을 빼내 기술을 탈취하는 등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다.

ITC는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ement)을 내렸고, SK이노베이션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아직까지 검토 중인 상태다. 최종 판결은 오는 2월 10일(현지시간) 나온다.

ITC가 최종결정을 내리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배터리 소재 부품 모두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해 사실상 미국에서 영업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ITC 최종 판결을 코앞에 두고 정 총리가 ‘원만한 해결’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대승적 합의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음달 10일 ITC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이후 절차가 남아있는 데다, ITC 소송과 별도로 미국 법원에서 진행중인 특허소송도 기다리고 있어 양사간 법적 분쟁이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 앞으로도 수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도 원만한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ITC가 판결을 세번씩이나 연기하면서 사건이 길어지자 조지아주, 테네시주 하원의원들이 먼저 합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소송 결과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3조원 이상을 들여 조지아에 짓기로 한 배터리 공장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일자리 창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

한국 기업간 소송이라도 미국 국익에 손해가 될 수 있는 만큼 기꺼이 중재에 나섰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정 총리도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K배터리의 미래를 감안해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K배터리 선도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주가가 상승하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국내 기업이 기나긴 소송으로 전열이 흐트러진 사이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은 코로나19 충격 속에서도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글로벌 1위 자리를 탈환했다.

▲ 뉴시스 그래픽

유럽 시장에서는 유럽연합(EU)이 나서 아시아 기업 의존도를 낮추자며 유럽내 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제 막 출범한 미국의 조 바이든 정권 역시 친환경 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자국 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확실한 사면초가 형국이다.

◇ LG-SK 배터리 소송, 마냥 제자리 걸음…최종 결정 3번 연기, 소송 비용만 수천억

LG에너지솔루션은 ITC에서 벌이고 있는 핵심 소송 3건 중 가장 주된 소송건인 영업비밀침해 소송에서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을 얻어내며 승기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ITC는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해 판결을 내린 게 아닌, 증거로 활용되어야 할 ‘문서’들이 삭제된 것에 대한 ‘파울’성 판결을 내린 것이어서 승리를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ITC는 조기패소 판결을 내린 지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판결을 다시 재검토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최근에도 양사는 충돌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4일 입장문을 통해 “특허소송 2건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을 상대로 PTAB(특허심판원)에 제기한 특허무효소송은 각하됐고, 반대로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무효소송은 PTAB으로부터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집단을 인용해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략이 큰 차질을 겪게 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맞서 SK이노베이션은 바로 다음달 PTAB의 의견서를 공개하며, 각하 결정이 이뤄진 배경은 특허무효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 아닌, ITC에서 이미 다루고 있는 사안은 PTAB이 ‘중복조사’를 이유로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사유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PTAB은 SK이노베이션의 제기한 의견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가 무효라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했으며, 합리적인 주장을 제기해 특허무효 주장에 강한 신빙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처럼 양사가 오랜 공방을 벌였지만 누구 손을 확실히 들어줄 수 없는 인진일퇴만 반복하고 있다.

ITC는 당초 지난해 10월 5일 최종 판결을 내기로 했으나 이후 세 차례나 연기된 상황이다.

이 기간 두 회사가 쏟아부은 소송비만 4500억~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수천억원의 소송비를 기술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 비용으로 쓸 수 있었다는 기회비용까지 감안할 경우 양사가 받는 실질적 손해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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