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잠잠하던 농협이 다시 언론의 관심에 올랐다.

지난 시대 대표적인 ‘복마전’으로 서울시와 공기업 중에선 한국전력, 그리고 공적인 협동조합인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즉 농협이 꼽혔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동안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공무원 비리 ‘원 아웃제’ 도입 등으로 비리척결에 나서 시청 공무원들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라는 원망까지 듣고 있다. 그만큼 자체 감사와 감시가 심해졌다.

한전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한국원자력수력발전(한수원)에 대한 국민적 감시가 심해져 ‘복마전’의 이미지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조용하던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또 비리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주 2016년 1월 선출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에게 검찰이 조직적 사전선거운동 등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구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시위와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 대선과 문재인대통령 당선이후 조각(組閣), 올해 들어 북한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발사 등 메가톤급 이슈로 일반 국민들은 농협 선거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북핵 이슈 등이 잠잠해지던 차에 다시 농협이 뉴스로 떠올랐다. 그간 역대 농협회장 선거에서 비리와 과열로 말썽을 빚어와 중앙선관위에 선거관리를 맡긴 첫 케이스였는데 또 뒤탈이 난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농협이 내년 개헌안에 농업의 가치를 명문화하도록 구체적인 조항을 넣기 위해 전국적인 농민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한 것이 여러 언론에 노출됐다.

▲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등이 22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 'IoT 스마트 판매시스템 출시 기념식'에서 시연회를 갖고 있다. ‘IoT 스마트 판매시스템’은 냉장·냉동 포장육인 한우, 한돈, 양념갈비 등을 소량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IoT 기능을 탑재한 신개념 식육 무인 판매기다./뉴시스

구체적인 재판기사를 찾아보았다. 검찰은 지난 11월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김 회장과 3위 후보였던 최덕규 후보에게 각각 1년 징역형을 그리고 나머지 10명의 피고인에게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지난해 1월 12일 치러진 농협중앙회장 선거 결선투표에서 1차 투표에서 떨어진 최덕규 후보와 김병원 회장이 손을 맞잡고 투표장을 돌아 선거 당일 선거운동을 금지한 법을 위반했다고 보았다. 위탁선거법은 선거 당일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검찰은 또한 낙선한 최 후보가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조합장 107명에게 ‘ 김 회장을 지지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점 등이 위탁선거법 위반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선거운동 기간 전에  대의원조합장에 지지를 호소한 것은 사전선거운동이며  선거캠프를 구성해 단체 카톡방 등을 통해 불법 선거운동을 공모했다며 수사해왔다. 김 회장에게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가 된다.

앞선 지난 11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된 대형 금융비리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였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루된 사모펀드 자베즈파트너와 이명박 대통령의 지인이 관련된 농협의 210억 해외 부동산 사기대출 의혹에 대해 금융당국의 재조사를 촉구했다.

▲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개최된 '농업가치 헌법 반영 자문위원회'에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에게 자문위원장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농협중앙회 제공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도 이날 국감에서 농협의 해외부동산 사기 대출 사건으로 씨티지케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사기대출이란 것을 안 이후에도 정기감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농협은행에서 조직적으로 감춘 게 아닌가”고 질문했다.

2008년 대출 당시 농협중앙회의 수장은 최원병 전 회장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포항 동지상고 동창인 영포회 출신이다. 그는  2007년부터 2016년 3월까지 농협회장으로 8년간 재임했다. 최 회장의 후임이 바로 김병원 회장이다.

검찰은 “농협중앙회장은 농민의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권한이 매우 크고 소요되는 예산도 상당하다.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권한과 예산은 더욱 커진다. 이로 인해 회장 선거 때면 과열, 혼탁선거 분위기로 시시비비가 반복돼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위탁선거법이 시행됐고, 이후 첫 사례였지만 같은 양상이 지속됐다”며 “농협 회장 선거는 이제 새로운 위탁선거법이 적용된 만큼 깨끗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고 이 사건이 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구형이유를 밝혔다.

김 회장은 이날 최후진술에서 “선거에 몇 차례 출마한 건 우리 농업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절박한 농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음이었지만 의욕이 앞서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고 재판을 받게 됐다”며 “제가 부덕한 탓이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마음을 담아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거에서 당선을 위해 불법을 기획해 선거운동을 한 적은 없다. 법 위반이 있다면 법령을 제대로 이해 못한 어리석음은 있을 수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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