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대한민국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순간이었고 이른바 IMF 외환위기가 본격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최성범 주필

이후 IMF는 1997년 12월 3일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했고 더불어 세계은행(WB)이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이 4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해 모두 350억 달러의 국제기구의 지원이 결정됐다. 이어 미국, 일본 등 6개국이 2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키로 함으로써 총 550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당시 IMF의 구제금융의 조건은 세 가지. 하나는 고금리요, 다른 하나는 구조조정, 또 다른 하나는 공공재 영리화이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지각 변동을 의미했다.

‘IMF 위기’는 1997년 7월 동남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한국의 국가신용도가 떨어지면서 달러 가 바닥나는 경제위기 형태로 다가왔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우리 사회의 오랜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바닥에는 관치(官治)경제, 부정부패, 차입 경영, 선단식 경영, 기득권 고수, 불투명 경영 등 구시대의 잔재가 온존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1만20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000달러로, 530조원 수준이었던 국내총생산(GDP)은 1673조원으로 불어났다. 39억달러까지 떨어졌던 외환보유액은 3844억달러로 늘었다. 1990년대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던 경상수지는 68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들어 10월말까지의 무역흑자는 무려 826억달러나 된다. 적어도 환란의 악몽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사드 보복의 여파 속에서 달성한 거액의 무역흑자인 만큼 그 기반이 매우 탄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의 원인(遠因)이었던 한국 사회의 구조적 요인은 과연 근치(根治)됐는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부터 한번 점검해보자. 외환 위기 직후 집권한 국민의 정부는 기업 금융 공공 노동부문 에 대해 4대 개혁을 추진했다.

우선 기업 부문의 경우 외형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큰 변화를 겪었다. 30대 그룹 중 7개가 한 해에 무너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크게 높아졌고, 외형 위주에서 수익성 위주로 변화했다. 그 결과 300~400%나 됐던 부채 비율은 대부분 100% 이하로 크게 낮아졌다. 주주 중시경영, 아웃소싱 등 글로벌 기업의 경영 관행이 널리 일반화됐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도 나왔다. .

그러나 지배구조 등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선 변화가 더딘 편이다. 외견상으론 황제경영이 줄어들고 전문경영체제가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근본적으론 지배구조 방식이 변한 게 없다. 순환출자가 어려워지면서 지주회사로 그 방법이 바뀐 것뿐이다. 재벌 중심의 경제시스템의 대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재벌개혁이 적폐청산의 과제로 거론되고 있는 이유다.

금융부문도 큰 변화를 겪었다.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 없었던 은행들은 이제 민간기업 체질로 많이 바뀌었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자리 잡았다. 더 이상 금융기관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의 영향력이 살아 있긴 해도 관치금융이 과거에 비해선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한진해운 청산이 전형적인 사례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해도 상당한 변화가 이뤄진 건 분명하다. 다만 은행들이 덩치가 커진 데 비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 부호는 남아 있다.

공공부문도 투명성에 관한 한 많은 발전이 있었다. 특히 정부 부문은 절차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공기업도 포스코(2000년), KT&G(2002년) 등 거대 공기업들의 민영화를 계기로 투명성과 효율성 위주의 경영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다른 부문들이 어느 정도 변화한 것과는 달리 노동부문은 당시에 비해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한해 전인 1996년 정부가 노동개혁 입법을 추진하자 1997년 1월 민주노총은 2단계 총파업을 벌였고 정부는 두 손을 들었다. 20년에 걸친 노동개혁 좌절의 시작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노동 개혁 시도는 번번히 좌절됐다. 현 정부는 철밥통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손조차 못 대는 형국이다.

노동개혁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선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지자 기업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투자를 하지 않고 해외투자에만 치중하는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예다. 노동시장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그러나 노동계와의 대타협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민노총은 노사정위에 참가조차 거부하는 실정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 20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이른바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 사진은 지난 14일 IMF 미션단 타르한 페이지오글루 단장이 2017년 IMF 연례협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최근 방한한 국제통화기금(IMF) 미션단이 한국 경제를 향해 정규직 유연성 확대를 포함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유독 강조한 것은 새삼스런 일이 결코 아니다. 구조개혁은 우리 경제의 ‘해묵은’ 과제인 것이다.

교육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교사를 비롯한 기득권층의 저항과 안정적 직장이 최고라는 인식이 겹친 결과 사교육은 더 심해졌고 교육경쟁력은 후퇴했다. 환란 20년, 우리가 풀지 못한 숙제가 노동과 교육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IMF 위기에서 생겨난 가위 눌림에서 벗어나 혁신능력과 성장의 활력 되찾아야

또한 한국 사회가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문제도 산적해 있다. 기업가 정신의 소멸, 안전위주의 사회적 분위기, 소득불균형, 저출산, 일자리 감소 등 오늘날 한국 사회를 휘감아 도는 문제들이 모두 이때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 도입은 사회 전반적인 보신주의를 초래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혁신 능력과 성장의 활력이 떨어지는 펀더멘털의 위기다. 기업들은 경영권수호와 자금 관리에만 골몰한 채 과감한 투자는 기피하고 있다. 대우 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같은 모험적 투자는 아예 꿈도 못 꿀 지경이다. 은행들은 투자를 꺼리고 예대마진에만 골몰해 대금업 수준으로 전락했다. 청년층들은 민간기업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만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민간부문의 위축 속에 정부의 위세는 더 강해졌다.

이제 한국경제는 IMF 환란위기 과정에서 생겨난 가위 눌림에서 벗어나야 한다. 건전성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위험 회피 경향,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일단 피하고 보는 안전 제일주의로는 혁신과 변화의 시대에 대응할 수가 없다. IMF 위기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을 억누르고 있는 규제와 보신주의에서 자신 있게 벗어나려는 시도가 국가 전반적으로 필요하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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