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현대자동차그룹이 위기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고 브랜드의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 최성범 주필

올해 상반기 현대·기아차의 전체 판매량은 전년 동기에 비해 8.7%나 감소했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중국내 반한 감정으로 중국내 판매량이 무려 43%나 대폭 감소했고 미국내 판매량도 7.4% 줄어들었다.

올 상반기 판매 부진은 사드 영향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사드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의 고급 브랜드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가 중국산 자동차의 거센 추격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사드 문제가 겹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는 지적이다.

현대차의 위기는 2010년 글로벌 5위의 자동차 업체로 자리매김했던 시점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품질 경영을 강조한 영향도 있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선두 업체들이 부진을 겪는 데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했는데도 마치 확고한 경쟁력이 생긴 것처럼 확신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생산 능력을 573만대에서 878만대로 53.2%로 증대시켰다. 국내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거의 매년 2~3개의 해외 공장을 건설했다.

이처럼 양적 성장에 매달리면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동시에 약화됐다. 국내시장의 경우 현대차 가격이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외제차들의 시장점유율 급상승을 지켜봐야만 했다.

현대·기아차 도약의 계기가 됐던 품질경영이 소홀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결과 일본차나 독일차에 비해 품질은 큰 차이가 없으면서 가격이 저렴하다는 강점이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양적 성장에 매달리다가 기술개발에 소홀했다는 게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과 고연비가 중시되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데 현대차는 옛날식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는 경영전략을 고수했다.

무엇보다 연비가 낮은 차는 결정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개발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다. 실제로 현대차의 연구개발 투자는 매출액 대비 2.7%에 불과해 도요타(3.8%), GM(4.9%)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조 파업도 한 몫 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 결과 설비능력은 대폭 늘어난 반면 매출은 거북이 걸음이었다. 이 기간 중 매출은 10%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지난해엔 매출이 감소하기도 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게 결정적이었다.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가 다양화·고급화하기 시작하면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대세로 자리 잡은 반면 현대차는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전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각축장인 미국 시장에서의 매출 감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품질도 그저 그렇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마디로 현대차의 경영전략이 뭔가 잘못돼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부분적인 성공에 도취돼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양적 성장(생산능력)에 집중하면서 품질 경쟁력과 신차 개발 등에 소홀했을 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을 달성하지도 못했다. 이른바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이다.

▲ 현대자동차가 현재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영진 교체를 포함한 경영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앞줄 왼쪽 세번째)과 충칭시 장궈칭 시장이 지난 7월 중국 배이징현대 충칭공장에서 열린 '충칭공장 생산기념식'에 참석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가야 할 길은 딱 하나다. 현재의 경영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다. 하지만 경영전략 수정이 현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까. 필자는 쉽지 않다고 본다. 정몽구 회장을 정점으로 한 현 경영진이 선택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개성과 경영철학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성공신화는 오롯이 그들 노력의 덕분이었지만,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자동차 성공신화 지속 위해서는 경영진 교체 등 변화가 필요한 시점

따라서 경영전략의 수정을 위해선 최고 경영진 교체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최고경영진 교체를 통하지 않고선 경영전략의 변화와 위기극복이 여의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기아차 최고경영자로서 어느 정도 경영능력을 검증을 받은 정의선 부회장이 나서는 게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경영권 승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다른 그룹에 비해 유교적 전통이 강해 경영권 승계 작업이 더딘 편인 데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2.28%, 기아차 지분은 1.74%에 불과해 묘책이 나와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통한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다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글로비스와 모비스 합병 등을 통한 승계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글로비스 등 정 부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현금 확보를 하지 않고선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현 정부의 정책을 감안하면 투명한 방식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가 반면교사다. 편법에 의존하다가 경영권 승계 작업이 오히려 화가 되고 말았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우 투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경영권 승계 방법을 도출함으로써 경영권 승계가 단순한 재산 상속이 아닌 축제로 만들기를 희망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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