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인가. 좌측 깜빡이만 키고 운전대를 잡아온 문재인 정부가 우측 깜빡이도 켰다.

▲ 최성범 주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소득주도 성장이 수요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라면 공급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혁신 성장"이라며 "혁신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빡이를 넣고 우회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좌측 깜빡이를 키고 가다가 비상 깜빡이를 켠 셈이다.

혁신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공정 경제`와 함께 J노믹스의 경제 기조인 `사람중심 경제`를 구성하는 3대 축이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면서 혁신 성장은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차별화가 쉽지 않은데다, 현 정부의 집권세력들로선 자칫 보수 정권의 경제정책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혁신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혁신성장 되살리기는 중대 변화를 예고한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변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소득주도 성장 대신 혁신 성장이 강조되면 `분배`에 비해 소외(?)됐던 `성장`이 강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경제정책의 무게 중심이 소득주도 성장에서 혁신 성장으로 옮겨가면 경제부총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내에서 혁신 성장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온 인물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는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성장이어야 혁신 성장으로 가는 길",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장벽을 허물고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타파해야 한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므로 이익 추구 행위를 죄악시하는 건 옳지 않으며 기업가 정신을 키워서 창업과 투자를 늘려야 한다" 등. 이같은 발언들은 평소 김 부총리의 지론을 반영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현 시점에서 타당한 측면이 존재하지만 개방경제에선 경쟁력의 문제와 연관돼 현실에 적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성장 둔화로 인한 세수 감소의 경우 대책이 없다는 게 한계라는 것이다. 일시적인 처방은 돼도 장기 처방으로선 곤란하다는 인식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막후 브레인으로 알려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혁신성장과 공급혁신론을 설파했다. 그는 지난 6월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을 통해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으로 ‘슘페터식 공급 혁신’을 제시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업가가 자유롭게 생산요소(노동 토지 투자 왕래)를 결합해 공급 혁신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의 혁신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시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문재인 정부가 최근 들어 혁신성장론에도 귀를 기울임으로써 분배와 성장의 양 날개를 가지려는 시도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혁신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혁신 성장은 규제 개혁과 신산업 발굴 등 공급 사이드를 혁신해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늘려 구매력을 키우자는 전략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 성장 전략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대략 중소·벤처기업 성장지원과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 육성 등으로 모아진다.

정부는 혁신 성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혁신 생태계 조성 △혁신 거점 구축 △규제 재설계 △혁신 인프라 강화 등 4대 분야 15개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인프라를 깔고 규제를 풀어 기업가가 새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안으로 14개 대책을 쏟아내고 내년에도 1개 대책을 발표한다. 정부 전체의 종합대책을 내놓기보다는 분야별 대책을 준비대로 발표한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번 달 중으로 ‘혁신창업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혁신성장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4차 산업혁명 이끌 기업들 경제의 주역돼야

문재인 정부가 뒤늦게나마 혁신성장론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분배와 성장의 양 날개를 가지려는 시도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혁신성장으로의 정책 변화는 시간 문제로 여겨져 왔다. 임금위주의 소득주도 성장은 일시적으로 수요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둘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4분기중 성장률이 전기 대비 0%대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혁신성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혁신성장의 요체는 생산성을 높여 성장 잠재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2000년대 초까지 4%에 달했던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10여년간 평균으로 3%대로 떨어졌고 이중 생산성 향상의 기여분은 0.5%에 불과했다. 앞으로 10년 뒤엔 자본 생산성은1% 미만, 노동 생산성은 마이너스가 될 전망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단순히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만을 늘려선 안 되며 혁신이 필수적이다. 정보통신기술(ICT)등 기술집약형 산업은 물론 굴뚝 산업도 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달성할 경우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4차산업혁명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새로운 기술과 모험투자를 감행하는 기업들이 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이 혁신성장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혁신성장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칫 규제완화와 창업 지원등에 그쳐선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 대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와 투자수익률 개선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선 일자리 감소를 초래하고 노조의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혁신이 성장엔진이 되기 위해선 혁신을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론만으론 부족하다. 기존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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