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M&A(기업 합병과 매수)는 새로운 사업이나 시장에 보다 용이하게 진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인력·유통망 등을 구축하는 시간을 대폭 단축해 주고 규모의 경제, 시너지 효과 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최성범 주필

한마디로 기업의 내부 성장에 의존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기존 사업의 약점을 한꺼번에 보완해 줄 수 있는 경우 선택하는 전략적 대안이다.

1998년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현대차는 거액의 적자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기아차의 부채 7조7100억 원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기아차 지분을 인수했다. 그 이후의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기아차는 22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졸업했고 K5, K7, K9, 쏘렌토 등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국내외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현대차그룹도 기아차 인수를 통해 생산능력을 대폭 확충함으로써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문제는 M&A가 성공할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점이다. 컨설팅 그룹 맥킨지는 M&A가 성사된 기업 중 65%가 주주 가치 증대에 실패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또한 M&A 이후 65%의 기업이 기업 가치가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M&A다. 금호아시아나가 2006년 인수한 대우건설은 당시 적정 인수가격이 3조원 내외였으나 금호아시아나는 6조6000억원이라는 지나치게 높은 입찰가를 제시했다. 할 수 없이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3조50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조달하는 대신 주가가 3만1500원을 밑돌면 차액을 보전해 주기로 풋백 옵션을 내걸었다.

그 결과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건설경기 하락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매각해야 했다. 급기야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의 재무구조까지 악화되는 바람에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대한통운까지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금호아시아나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위기를 맞았다. 무리한 M&A가 합병 주체 기업까지 위기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소비재 그룹에서 중공업그룹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두산그룹도 미국의 소형 건설장비 회사인 밥캣(Bobcat) 인수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7년 밥캣을 49억 달러에 인수했지만 곧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북미 건설시장이 침체돼 경영위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 전체가 자금위기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처럼 M&A가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다. 누가, 언제, 어떤 기업을, 어떻게, 왜 인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경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기가 나쁠 수도 있고, 가격이 안 맞기 때문일 수도, 예상과는 달리 시너지효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선 사례들의 경우 시기와 가격 등이 안 맞는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어떤 기업의 경우 M&A에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바로 SK 그룹을 보면 알 수 있다.

SK 그룹의 역사는 한마디로 합병을 통한 변신의 역사다. 1953년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으로 세운 회사가 바로 선경직물이다. 두 회사 명칭에서 한 자씩 따서 선경(鮮京)이라는 회사명이 정해졌다. 이 회사의 생산부장이던 고(故) 최종건 창업자가 6.25이후 이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선경직물이 출범했다는 점에서 합병 DNA의 원조다.

▲ SK그룹의 역사는 한마디로 합병을 통한 변신의 역사다. 대한석유공사·한국이동통신·하이닉스 등 인수한 기업들을 통해 성공신화를 열어왔다. 이제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뉴시스 자료사진

이후 SK 그룹 도약의 역사는 곧 M&A성공의 역사다. 섬유, 무역, 화학 등의 업종을 영위하면서 성장을 하다가 1980년 당시 국영기업이자 매출액 기준 1위기업이던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면서 도약했다. 인수 당시 SK(당시 선경) 그룹의 매출액은 피합병 대상인 유공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이 합병으로 SK는 재계순위 5위로 도약했다.

SK의 도약, 대한석유공사·한국이동통신·하이닉스 등 M&A 성공 덕택

이후의 도약도 모두 M&A의 성공 덕택이었다. 1994년 민영화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로 SK는 새로운 캐시카우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후 ICT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는 2012년 SK텔레콤이 부실의 대명사인 하이닉스를 인수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현대그룹이 손을 든 상태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한 SK는 각고의 노력 끝에 하이닉스를 흑자회사로 반전시켰다. 하루에 50억 원씩 적자를 내던 하이닉스는 2014년엔 19년 만에 법인세를 납부했고 최근 들어선 반도체 경기 호황에 힘입어 그룹의 캐시카우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일련의 거대 M&A성공의 역사를 그냥 행운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이는 다른 요인들보다 합병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합병의 성공에 가장 중요함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합병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합병 기업의 고유한 문화를 인정하고 구성원을 존중해야만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남을 인정함으로써 함께 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SK는 합병 성공의 DNA를 보유하고 있다. SK 그룹의 경영이념을 상징하는 수펙스(Supex)의 핵심개념이 ‘따로 또 같이’라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룹 공통의 전략을 공유하면서 계열사 특유의 자율성과 정체성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제 SK하이닉스가 일본의 도시바(東芝) 메모리 인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한미일 연합의 축인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에 일부 자금을 빌려주는 형태로 이번 인수전에 참여했다. 직접 지분을 참여한 게 아니다 보니 당장 경영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거나 기술 공유에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지만 만약 성사만 된다면 SK로선 또 다른 도약이 기대된다. SK는 합병 성공 DNA를 보유하고 있어서 합병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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