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충남 예산 수덕사(修德寺)라면 여승인 비구니들만 있는 절로 알았다.

1966년 가수 송춘희가 불렀던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애절한 음조의 유행가 가사 때문이다. 얼마 전 대학동창 40여명이 방문할 때 버스 안에서부터 이 의문이 화제가 됐다. 대부분이 여승들만 수도하는 절이라고 알고 있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수필집으로 유명한 김일엽 스님이 수련, 열반한 곳이라 더 ’비구니의 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도착해 입장권 매표소에서 물어보았다. 아가씨가 웃으면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주지 스님을 비롯해 남성 스님들이 훨씬 많다고 말해주었다.

안내 팜플렛을 보니 일제 강점기인 1930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見性庵)이 생겨 여승들도 많이 수도했다고 하니 그런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견성암은 수덕사의 부속암자인데다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가요 덕분에 비구니 스님들만 있는 절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했을 법하다.

참가자들이 상식의 허실(虛實)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이외에도 대중가요 가사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남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이라는 가사란다.

1966년 반야월씨가 작사한 ‘월남의 달밤’을 가수 윤일로, 박일남씨 등이 불렀는데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월남이 섬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섬의 나라’를 ‘머나먼 나라’로 바꾸어 불렀다. 그런데도 대부분 노래할 때는 처음 익힌대로 섬의 나라로 부른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손로원씨가 작사해 박재홍씨가 부른 ‘물레방아 도는 내력’의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도 잘못된 가사다. 처음 발표 때는 “기심(김)을 매고...”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옷감을 짜는 일인 “길쌈을 매고”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가사나 랩에 비속어나 축어, 맞춤법 등을 잘못 사용하는 걸 비난하는데 오랜 대중가요의 가사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 천년고찰 수덕사의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뉴시스 자료사진

10여년 전 수덕사를 방문했을 때도 절 뒤 덕숭산이 고즈넉한 국보 49호인 대웅전과 어울려 새 건물들을 잘 지켜주는 어미새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땐 여기저기 건물과 탑과 암자들이 크게 자리 잡아 대가람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일제 때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일본군 장성들에게 폭탄을 던졌던 고(故) 윤봉길 의사가 덕숭산 밑의 예산군 덕산면 출신이라는 내용도 알았다.

고교 때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은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배웠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답사기’에서 무량수전 기둥의 ‘베흘림양식’(Enthasis)이 미와 견고성의 훌륭한 조화양식이라는 설명을 읽고 조상의 지혜에 감탄했다.

사실은 경북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더 오래됐다고 한다. 세 번째가 이 수덕사 대웅전이란다. 다음이 강원 강릉의 임영관삼문으로 이어진다.

수덕사 일주문 왼쪽에 2010년 개관된 ‘선(禪)미술관’이라는 아담한 현대식건물이 들어섰다. 수덕사 3대 방장 원담(圓潭) 스님의 ‘원담전시실’과 ‘고암전시실’을 들인 박물관이다.

바로 뒤에 고암 이응로 화백(1904~1989)이 구입해 44년부터 59년 프랑스에 갈 때까지 묵었던 ‘수덕여관’ 간판이 달린 초가집과 당시의 우물이 그대로 있다. 이 화백이 69년 독일 동백림(동베를린) 간첩사건으로 소환돼 이 집에 은거할 때 집 옆 바위에 새긴 추상화 작품도 남아있다. 한국 근대 여류화가 나혜석도 한때 머물렀다고 한다.

▲ 2008년 3월 18일 입적한 수덕사 3대 방장 원담 스님/뉴시스 자료사진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 시절 창건돼 1500년이 넘는 사찰로 추정되지만 대웅전은 고려말 충렬왕 때 건립됐다는 뚜렷한 기록이 남아있다. 1937년 보수공사 당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나왔다고 한다.

나머지 건축물들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여러 전란 때 다 타고 현존하는 것들은 조선 중기 이후에 건립됐다.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나 익산 왕궁터의 미륵사 등 백제의 큰 가람들도 다 없어졌다.

수덕사의 또 다른 보물은 제1263호인 노사나불 괘(掛)불탱화다. 괘불탱화는 조선 현종때 4명의 승려 화원이 그린 그림이란다. 법당 안에 불상 뒤에 그려져 있는 탱화와는 달리 괘불탱은 주로 걸어 놓은 불화이다.

불화에는 화려한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설법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충청도 일대의 사찰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형식이라고 한다.

이렇듯 덕숭산 자락에 위치한 수덕사는 불교 미술, 건축학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예산과 홍성, 서산과 광천 등을 품는 내포(內浦) 지방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가까운 가야산이 내포 지방의 대표적인 등산지여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한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게다가 예산과 홍성을 가르는 용봉산 기슭에 새 충남도청이 들어서 가야산 덕숭산 용봉산을 잇는 관광이 서해안시대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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