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버호벤 3쿠션 오픈, 한국인 첫 우승 조재호 집중 인터뷰

[이코노뉴스=김보라 기자] 2017 버호벤 3쿠션 오픈에서 우승한 조재호 선수(38·서울시청)는 “당구는 상대방이랑 싸워 이긴다는 마음보다, 상대방에게 받은 공이지만 그 공을 칠 수 있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구 세계 랭킹 16위인 조재호 선수는 지난 7~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버호벤 오픈 마스터스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우승했다.

1980년대 세계 당구계를 주름잡던 고(故) 이상천 선수를 기리는 이 대회는 세계캐롬당구연맹(UMB)과 미국당구연맹(USBA)이 공동 주관했다.

▲ 조재호 선수(오른쪽)가 김보라 기자와 집중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재호 선수는 8강전에서 세계 ‘4대 천왕’중 한 명이자 자신의 롤 모델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세계 랭킹 4위), 4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결승에서 벨기에의 에디 레펜스를 차례로 꺾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조 선수는 “16강 때부터 시차에 조금씩 적응해갔고, 쿠드롱 등 평소 존경하는 선수들을 만나면서 더욱 경기에 집중해 좋은 성과를 이뤄냈다”며 “팬들을 위해 시원시원하게 친 것도 우승의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금의환향한 조재호 선수를 서울 논현동의 한 당구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버호벤 오픈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는데, 매 경기 임할 때 마음가짐은 어떠했는지요?

“상황별로 조금씩 다르죠. 예를 들어 쿠드롱이랑 친다면, 파이팅 있게 ‘이겨야겠다’는 마음보단 많은 분들께 인정받는 선수인 만큼 최선을 다해 내 것을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임했죠. 당구라는 게 상대방이랑 싸워서 이긴다는 마음보다는, 상대방에게 받은 공이지만 그 공을 칠 수 있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지지 말아야 하는 경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40점 경기에서는 상대적으로 에버리지가 낮으면서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선수랑 칠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부담스러운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 버호벤 오픈 때 컨디션은 어땠나요?

“뉴욕에 일찍 도착했는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요. 쉬고 싶었는데, 행사를 다니다 보니 몸이 더 안 좋아지더라구요. 그 와중에 류현진 선수(LA 다저스) 경기를 보러갔어요.(웃음) 류현진 투수가 호투를 하는 경기를 보고 나서, ‘아 이번 시합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지더라구요. 하지만 시차적응을 못한 상태여서 리그 때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16강 때부터 시차에 조금씩 적응해갔고, 잘 치는 선수들을 만나면서 집중을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이번 대회 우승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랭킹 포인트가 없는 대회라 그런지 매 게임 즐기면서 칠 수 있었죠. 경기를 보고 계시는 많은 분들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보여드리기 위해 시원시원하게 쳤던 게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즌을 앞두고 특별히 하는 연습이 있는지요?

“평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복적 연습하다가, 시합 전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 조재호 선수가 쓰리쿠션을 치기 위해 볼을 바라보고 있다./프레스포토=뉴시스 제공

- 슬럼프 극복방법은?

“주변 선수들끼리 대화를 많이 해요. 예를 들면 이충복 선수(44·경기연맹)한테 “형 고민이 있어요” 하면서 질문을 하죠. 그러면 형 동생 할 것 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공유하는 모습이 한국 3쿠션의 수준을 높이는 데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 담배를 끊었다고 하던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네, 금연한 지 4개월 되었습니다. 하루는 집에 일찍 들어가 쉬고 있는데, 그날따라 밖에 나갈 힘이 없어 집에만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담배를 폈는데,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담배가 몸에 정말 안 좋다는 걸 깨닫고 금연을 하게 되었죠. 오래 펴왔기 때문에 처음엔 가족들도 안 믿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 보면서 잘 견디고 있어요.”

- 금단현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요?

“흔히들 3일, 3주, 3개월 힘들다던데 그게 딱 맞는 얘기 같아요. 쉽지 않네요. 완벽하게 끊었다기보다 참고 있는 거죠. 요만한(손바닥만 한) 공허함이 있어요. 그 어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래도 참기 힘든 순간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지인들이 담배를 피러 나갈 때,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고 함께 나가서 이야기를 하곤 하죠.”

- 요즘 특별히 하는 연습이 있나요?

“주변에서 당구가 많이 변했다고들 하셔요. 힘조절도 많이 하고 포지션 플레이도 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포지션 연습만 6년 정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 2~3년 동안은 정교한 포지션 플레이 연습을 많이 하고 있죠. 딱딱한 상황에서 판단 미스로 시도했다가 혼자 무너지고 하다보니까, 그 시도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이 되더라구요. 이제는 ‘봉인해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죠. 스스로에게 매 순간 질문을 하면서 제가 하고픈 대로 하고 있어요.

- 당구에 있어 본인의 장점과 단점을 꼽자면?

“뒤돌려치기가 주특기에요. 그런데 많은 분들께서 삼단이 주특기라고 생각하시더라구요. 사람들이 잘 친다고 하시니까 더 열심히 했고 실제로 이번 시합 때도 그런 모습들을 보여드렸구요.”

- 그러면 단점은?

“ AB형, B형의 성격이 자리 잡고 있어요. 순간적으로 불타올라요. 외국인 친구들은 제가 잘 웃고 다니니까 스마일맨이라고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조금 다른 모습이 자리 잡고 있죠. 이걸 잘 다스릴 때 성적이 잘 나오는 것 같아요”

- 우승을 많이 하셨는데, 아직 우승 못 해본 대회 중에 탐나는 대회가 있나요?

“요즘 누가 두 번째 월드컵을 들어 올리느냐가 관건이죠. 요즘 국내 랭킹이 떨어지고 이랬더니, 주변에서 걱정해 주시고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적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아까 말했듯이 봉인해제된, 당구를 즐기는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연습해서 한국인 최초로 월드컵 두 번째 우승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선수생활 중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챔피언이 되고 이런 것보다는 당구가 지금보다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당구는 아직 프로 개념이 없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저에게 ‘조 프로’라고 부르거든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나?’ 물어요. 우리 당구 선수들이 그것들을 많이 갖춰 나갈 때, 더 좋은 환경에서 당구를 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미 많은 것을 이뤄 존경 받아 마땅한 조재호 선수의 겸손한 모습과 한국당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국당구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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