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오랜만에 집 냉장고 계란 통에 달걀이 꽉차있다. 계란 값 파동이후 못 보던 달걀이라 반가워 “웬일?”이냐고 집사람에게 물으니 “먹을 게 있어야지…”라며 웃는다.

▲ 남영진 논설고문

오염된 계란을 ‘아주 많이’ 먹어야만 해롭다는 보도를 보았다고 한다. 평소 점심 약속이 있으면 아침을 간단히 계란 후라이 2개 정도로 해결했는데 계란이 없으니 먹고 싶기도 했다. 미역국 된장국 오뎅국 등에 간단히 밥을 먹는 허전한 조식이었다.

살충제 파동에 이어 언론에는 독일, 네델란드 등에서 수입된 둥근 소시지 30여톤이 E형 간염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난리다. 여성 단체들은 3위 제품인 ‘릴리안’ 생리대가 화학첨가제 때문에 생리주기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인체에 유해하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스마트폰 케이스에서 발암물질인 납과 카드뮴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먹거리에 이어 무심하게 지나갔던 생활 용품들도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간 믿었던 독일 네델란드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에서 들어온 소식들이라 더 허탈했다. 오염 인체유해 위험 등 온통 겁주는 소식들이다.

달걀은 어릴 때 먹거리의 ‘로망’이었다. 집 뒷마당 한구석에 닭을 몇 마리 길렀어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3~4개중 하나를 슬쩍 하지 않으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조반부터 아버지와 형의 겸상에는 후라이가 올라갔지만, 누나, 동생들과 대여섯 명이 둘러앉은 둥근 상위에는 파가 들어가 있는 뚝배기 계란찜이 전부였다. 그것도 눈치 보면서 숟가락 빈도를 재면서 먹어야했다. 계란 한 개를 통째로 먹는 경우는 소풍이나 운동회 때 정도였다.

날달걀도 맛있었다. 계란 양쪽 꽁지를 이빨로 깨서 그냥 쪽쪽 빨아먹어도 맛이 고소했다. 흰자에 이어 노른자가 혀끝에 들어와 한입이 되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커서야 닭똥 등이 묻을 수 있어 비위생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집에서 기르는 달걀은 아침에도 조금 온기가 남아있어 더 고소했다. 어른이 된 후에는 맘껏 먹을 수 있었으나 콜레스테롤 운운하며 한때 피하기도 했다.

▲ 2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들이 두부를 비롯한 콩제품 판매코너에 많은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 반면 살충제 성분에 대한 불안으로 달걀 구매를 꺼리는 듯 한 소비자가 계란 판매코너를 그냥 지나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처음에 네델란드 벨기에 등지에서 살충제에 오염된 계란이 발견됐다기에 운송이나 가공과정에서 실수가 나온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지난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달걀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네델란드 태국 등지에서 계란을 수입해 왔던 터라 그쪽 달걀은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된 살충제 성분이야 관심도 없었으나 DDT라는 말을 들을 땐 오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닭장 돼지우리 소축사 등 모든 가축에 DDT를 비롯한 살충제를 뿌려대 계란은 물론 닭고기 자체도 오염됐다고 한다. 닭장(케이지)에서 A4용지 한 장 크기의 장소에 밀집사욕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끼게 될 진드기로 인한 피부병을 예방하기 위해 갖가지 살충제를 써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일부 농가에 권장해 축산농가에서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고 한다.

경상북도는 맹독성 살충제인 DDT 성분이 검출된 경산과 영천 산란계 농장 닭과 계란을 모두 폐기한다고 밝혔다. 영천에 있는 농장 닭 8천5백마리와 달걀 2만여 개를 전량 폐기하고 경산에서는 농장 닭 4200마리와 달걀 1만여 개를 이미 폐기물업체서 처리했다 한다.

이 농장들에서는 달걀에 이어 닭에서도 사용이 금지된 DDT 성분이 나와 경북도는 산란계 농장 전수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 6곳의 달걀을 매일 검사하기로 했다.

 

DDT라는 이름은 거의 잊혀진 소독제다. 60년대까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독제로 초등학교 시절 화장실에는 구더기를 죽이기 위해 하얀 DDT를 곳곳에 뿌렸다. 심지어 그 흔하던 이를 퇴치한다며 옷 속에도 넣었고 머리털 속에도 소량씩 뿌렸다. ‘만능의 살충제’였던 DDT가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그 피해가 오래간다는 사실이 밝혀져 79년 이후에는 사라진 단어였는데 아직도 쓰이고 있다니 놀랐다.

▲ 동물의 권리 단체 회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살충제 달걀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공장식 축산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 초기 대통령이 미국에 가 국민도 모르게 광우병이 발병했던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이 알려져 광화문, 시청의 촛불집회를 불러왔다. 지난해부터 조류독감으로 달걀파동을 겪은 국민들은 이제 안심하고 국내산 계란을 먹어보려다 살충제 오염이라는 더 심한 재해를 맞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 치킨에 이어 소시지 햄도 문제가 되니 먹일게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을지프리덤훈련 시작일인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국민께 불안과 염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광우병파동 때와 달리 조기 사과했다. 축산안전관리시스템 개선과 국가 식품관리 시스템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후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국회에서 안이하게 대답하다 국회와 언론에 뭇매를 맞았다. 이전 정부 때 시작된 일이라고 안이하게 대처했을 수도 있다. 정권교체가 됐지만 국민에겐 같은 정부다. 터지면 진화책임은 이 정부에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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