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현대차의 시총 순위 3위 사수가 위태로워졌다.

▲ 최성범 주필

현대차 시총은 올해 초 33조410억원에서 8월17일 현재 31조7190억원으로 쪼그라든 반면 포스코 시총은 이 기간 22조7120억원에서 29조76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조만간 3위 현대차와 4위 포스코가 뒤바뀔 가능성도 커졌다. 실적 부진 장기화와 노동조합 파업 등이 겹치면서 이 기간 중 주가가 하락한 까닭이다.

이미 현대차의 실적 부진은 심상치 않다. 올해 상반기 중 판매량은 219만7689대로 전년도에 비해 뒷걸음을 쳤다. 국내에선 전년 동기대비 1.7% 감소한 34만4130대를 판매했다. 해외시장의 경우 러시아와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였지만 중국시장 판매 하락 등 영향으로 전년 동기대비 9.3%나 감소한 185만여대에 그쳤다.

7월중엔 중국 시장 판매량이 전월대비 40% 증가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복의 충격에서 다소 벗어나는 반등효과일 뿐 시장 경쟁력이 향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의 문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오늘날 일자리 부족의 문제는 현대차가 노사관계에 발목이 잡혀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해외공장에만 전력투구한 데에서 출발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대차는 1996년 이후 생산성 저하와 노사관계 때문에 국내 공장 신증설을 하지 않은 반면 해외공장은 계속 증설을 해 왔다. 그 결과 국내 생산 비율이 이젠 40%에도 못 미친다. 생산성의 지표가 되는 차량 한 대 당 생산시간은 국내 공장이 26.8시간으로 가장 길다고 하니 해외이전을 비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차가 어려워진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더욱 암담하고 일자리 창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1953년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GM 사장 출신 찰슨 윌슨이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그 역도 성립한다’고 말했다지만 오늘날 현대차와 한국경제의 관계가 GM과 미국경제와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현대차 위기, 일시적인 문제 아니라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 누적된 결과

문제는 현대차의 문제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드보복으로 인한 일시적인 부진이라면 다행이지만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가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얼마 전 일본 산케이신문은 ‘현대자동차는 스스로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에서 출발한 글로벌 판매 부진 심화, 제품 경쟁력 상의 한계, 고질적 노사 갈등 등 '삼중고'가 겹쳐 고전하고 있다고 현대자동차의 위기를 진단했다.

한 때 현대차는 칭송의 대상이었다. 2011년 일본에선 '현대차가 도요타를 이기는 날'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차 경영진이 품질 향상에 대해 불 같은 의지를 보이면서 품질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성공한 게 사실이다.

▲ 현대차 노조가 지난 6월 현대차 울산공장 광장에서 조합원 출정식을 열고 올해 단체교섭에서 승리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그런데 지금은 딴판이다. 저가를 앞세운 중국차 공습에 대비해 일본은 고급 세단 등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했지만 한국은 어중간했다는 평가다. “일본차는 '편리한 조작', 독일차는 '좋은 연비'로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한국차는 강점이던 '가격 경쟁력' 주도권을 중국에 뺏긴 뒤 아무 반격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승용차 시장에만 집착하다가 브랜드 파워가 강점인 독일·일본차와 저가 중국차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작은 성공에 안주한 탓일까?

이러한 경쟁력약화는 자동차 판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주력시장인 미국, 중국에서의 판매량이 반토막이 난 게 단적인 예다. 사드 등 기업외적인 요인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대기아차 국내 시장 점유율이 8월중 8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1년반 가까이 80%를 밑돌았고 한때 60%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현대차를 바라보는 시선도 결코 곱지 않다.

이러한 낮은 생산성, 고임금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저하, 제품 개발력 미흡 등으로 전반적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드의 충격이 겹치면서 실적 부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의 실적부진은 일종의 경고등인 셈이다. 영원한 우량기업, 1등 기업일 것만 같았던 GM도 파산의 아픔을 겪었다.

현대차, 노사관계 바뀌지 않으면 미래 없다

이제 현대차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다. 국내시장 1위, 당기순이익 규모 등 외형적 지표에 안주해 변화를 포기해선 미래가 없다.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경영진은 혁신에 소홀해선 안 된다. 한마디로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에서 회사측이 제시한 임금인상안이 미흡하다며 올들어 세번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고임금으로 인해 연구개발(R&D) 투자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벌이는 파업이다. 작년 현대·기아차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이 2.7%로 도요타(매출액 대비 3.8%)와 폴크스바겐(6.3%), GM(4.9%)에 크게 못 미치는 이유가 근로자 임금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생산성향상과 관계없이 다른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한 고임금은 곤란하다.

정부도 현대차 문제를 방치해선 안 된다. ‘현대차에는 대한민국의 노사관계가 있다’는 노동 전문가의 책 제목이 암시하듯 노사관계의 새로운 시대는 현대차 노사관계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의 근본 해법이 없이는 일자리 문제의 근본 해결이 어렵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만으로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노조와 대화채널이 열려 있는 만큼 노사정 대타협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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