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기업에서 임금인상은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이자 상존하는 경영 압박 요인이다.

▲ 김선태 편집위원

다른 한편 임금인상은 불가피하게 혁신의 동기로 작용한다.

『세계경제사』는 이를 전제로 200년에 걸친 근현대 자본주의 성장사를 광범위하게 살피면서 현재와 같은 국가간, 동서양간 불평등을 낳은 근거를 분석한다.

그 결과 저자는 ‘영국 산업혁명과 서구의 승리는 한 마디로 고임금의 결과’라 평가하고, 오늘날에도 임금인상은 여전히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막 걸음마를 뗀 18세기 무렵 유럽에서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는데 임금인상은 방해꾼으로 등장했지만 점차 조력자로 기능하게 되었다. 초기에 개별 기업들은 저임금을 통해 이윤을 확보하려 했지만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저항에 일상적으로 부딪혔다. 다른 한편 자본의 축적에 필요한 이윤을 주로 저임금에서 확보하려 한 기업가들은 갈수록 격화되는 기업간 경쟁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고임금을 수용한 기업가들은 기계의 양을 늘리는 등 자본 투입으로 대처했는데 이는 임금 억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이윤을 보장해 주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기업이 경쟁의 승자가 되었다. 이를 일반화시켜 보면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억누르는 일은 기업으로 하여금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를 제거”했다.

저자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최저생계비 수준은 빈곤의 덫”이었다.

▲ ▲ 『세계경제사』 = 로버트 C. 앨런 저, 교유서가, 2017.3. 27. 출간

“영국 산업혁명은 고임금의 성과”

실은 저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탓에, 경제성장에서 혁신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토마 피케티는 『 21세기 자본 』에서 “칼 마르크스도 기술 진보와 꾸준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했다”며 그 결과 자본주의의 조기 파산을  예언하는 우를 범했다고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결론을 다듬은 때가 1848년이었으니, 당시는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나 통계상으로 전모를 드러내기 전이라 할 것이다.

『세계경제사』의 저자는 혁신에 앞장 선 근대 기업가들 덕에 영국이 네덜란드 같은 동시대의 경쟁국을 물리치고 산업혁명의 승자가 되었음을 밝힌다. 19세기 들어 “(대다수의) 영국 기업들은 값싼 에너지와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하여 값비싼 노동을 절약하면 이윤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많은 자본과 에너지를 사용하자 영국 노동자들은 더욱 생산적으로 되었다. 이것이 영국 경제성장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를 통해 인근 유럽 국가들은 더 높은 임금이 노동절약적인 기술 개발로 이어지며 이 기술을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동반 상승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후 너도나도 그 궤적을 따라 걸었다.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미숙했던 동양 국가들은 그와 같은 교훈을 발견할 기회를 갖지 못해 결정적으로 유럽에게 경제적 지배권을 내주고 말았다. 일단 동서양의 대결이 산업혁명으로 그 승패가 갈리자 이후 양 진영의 경제적 격차는 빠른 속도로 벌어졌다.

아래 표는 1820년에서 2008년 사이 세계 주요국의 1인당 GDP 추이로, 산업혁명 이후 벌어진 간격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경제체제가 된 21세기에도 빈곤국들은 유럽의 궤적을 따르지 못하고 있어, 저자의 표현을 빌면 그들은 ‘선진국이 탔던 엘리베이트’를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 ▲ 표. 세계 주요국 1인당 GDP 추이 : 1820~2008

주저앉을 것인가 뛰어넘을 것인가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의 세계 경제를 전망한다. 서구 국가들은 산업혁명 이래 대체로 유사한 경제성장 과정을 밟았는데 이를 저자는 ‘표준모델’로 규정한다.

표준모델에는 다시 네 가지 핵심 기제가 있는데 철도 확장, 관세 도입, 투자 은행 설립, 보편 교육의 실시 등이 그것이다.동양의 일부 후발 국가들은 그러한 기제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서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다양한 시도를 벌여왔다.

그중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보인 방식이 저자가 ‘빅푸쉬 산업화’라 부르는 모델이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국가라는 강력한 추진력을 동원하여 선진국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들, 제철소, 발전소, 자동차 공장, 도시 등을 한꺼번에 건설하는 일이다.

먼저 1960년대 일본이 그랬고 이어 1970년대에 한국이나 대만이, 이후 1990년대에 사회주의 중국이 이런 모델을 채택하여 대단한 속도로 서구를 뒤쫓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발 국가들의 빅푸쉬 모델은 서구를 추격하는 데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그들이 서구와 경쟁관계에 놓이자 다시 약점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서구와의 격차를 줄인 1990년대에 이르자 비교우위를 상실하면서 심각한 성장 정체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도 일본이 걸어간 길을 답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이대로 가면 특히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향후 중국 또는 다른 후발 국가들에게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발전을 위해서는 총체적인 밑그림에 기초한 발전 모델이 필요하고, 그것은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위한 내적 동기가 충분하지 않다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보여주듯 혁신의 동기는 대개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 수준의 임금상승 압박이 그중 하나인데 그 압박을 피하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더 낮은 임금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것인데 최근 물의를 일으킨 (주)경방이 그러한 경우다. 다른 하나는 충분한 생산성 향상으로 임금인상분을 상쇄하고 경쟁자를 뛰어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선진국으로 가는 관문에 해당할지, 역사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 그림. 경방필백화점 (주)경방은 “최저임금이 올라 국내 공장 폐쇄와 해외 이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으나 실은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 무관하게 수년 전부터 이전이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경방필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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