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 방콕=남영진 논설고문] 태국의 관문인 방콕 수완나폼 공항을 택시를 타고 나오다보면 고가도로 위에 지난해 10월 서거한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을 조문하는 대형 조명 광고판이 공항전체를 압도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

우리나라에서 태국에 관한 소식은 지난해 국왕이 죽고 별로 인기가 없는 외아들이 국왕을 승계했고 현직 군인총리가 국정을 이끌고 있다는 정도다. 태국은 아직도 계엄하이며 특히 국왕 조문기간 1년이 되는 올 10월까지는 어떤 정치적 행위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태국은 1932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국왕의 전제권을 제한하고 선거를 통한 총리가 정부를 이끄는 의원 내각제를 택한 입헌군주국이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한 나라중 하나다. 상·하원의 양원제 의회가 입법권을 갖고 있으나, 군부의 힘이 커 지난 85년간 19차례의 군부 쿠데타를 거듭해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으로 입헌군주국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150년이 돼가는 아직까지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정치와는 거리가 먼 것과 비슷하다. 일본은 ‘천황’을 팔아 1920년대 잠깐 ‘다이쇼(大正)민주주의’를 거쳐 30년대 쇼와(昭和) 국왕이후 군국주의가 강화됐다. 군부와 재벌이 결탁해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면서 중일전쟁과 2차 대전을 일으켜 한국, 중국, 미국은 물론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태국도 표면적으로는 서구화된 민주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서구 민주국가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014년 5월 프라윳 찬오차 육군참모총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아직까지 계엄령을 계속 유지하면서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거를 치르지 않고 있다.

군부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으로 총선을 통해 집권했던 잉랏 시나와트라 총리는 농민에게 쌀값을 과잉 지불해 국고를 낭비했다는 이유로 다시 쫓아냈다.

태국의 입헌군주제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스페인 등 서구의 입헌군주제와는 다르다. 현재 일본의 국왕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기세에 눌려 고령을 이유로 국왕직 사퇴를 고려한다는 외신이 있을 정도로 일본도 왕권이 현저히 약화됐다.

그러나 태국의 국왕은 힌두교와 불교의 신인(神人)에 해당하는 ‘라마’(RAMA)라 불리며 백성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국왕은 또한 ‘차크라바틴’(생명의 주인)으로까지 불린다.

▲ 태국 수사관들이 지난 5월 22일 폭탄이 폭발한 쁘라몽꿋끌라오 군병원에서 증거물을 수집해 옮기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이 병원에서는 군부 쿠데타 3주년 기념식이 진행됐다. 방콕=AP/뉴시스 자료사진】

국왕은 보통 때는 국가원수로서의 대내외 의전을 담당하지만 쿠데타가 일어나면 정권을 추인하는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행사한다. 푸미폰 전 국왕은 1992년 민주화 사태 때 군부와 민중의 대립을 조정했고 2006년에는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무산시켰다.

그러나 최근 2014년 쿠데타는 암암리에 지지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친 잉랏, 친 탁신파인 ‘레드 셔츠’시위대가 1년 가까이 방콕시내에서 무장시위를 벌이자 군부가 쿠데타후 계엄령을 선포해 해산시킨 것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태국의 정치문화는 전통과 근대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다. 700년 전 중부의 수코타이 시대부터 아유타야 시대를 거쳐 전제 군주제가 계속되어 왔다. 오래된 신분, 계급의식 때문에 일반 국민들 사이에 정치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2014년 방콕 중심가에서 ‘레드 셔츠파’와 왕당파인 ‘옐로 셔츠’시위대가 총격을 벌였지만 방콕 시민들은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더 걱정하곤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000 달러를 조금 윗돌고 국민 절반이 아직도 자급자족하는 농민인 것도 중앙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원인이다.

탁신의 고향이자 지지기반인 태국의 동북부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지대 농민 출신들이 반 왕당파의 핵심이다. 군부와 국교나 다름없는 불교계, 경제계를 장악하고 있는 전통 귀족계급과 신흥기업가들도 왕실과 결탁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기득권을 유지한다.

왕실의 존재는 국민을 일체화시키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이 크지만 기득권 계층은 왕을 팔아 민주주의 개혁을 방해하기도 한다.

태국의 동북부 우돔타이 출신이라는 방콕의 한 택시 운전사는 “국민의 80%가 탁신을 좋아하지만 군부의 힘이 막강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탁신 전 총리의 친 농업정책에 이어 잉랏 전 총리의 미곡지원제도에 감사했지만 정치적 힘이 약해 쫓겨났다는 것이다.

▲ 태국 방콕 시민들이 지난해 10월 13일 푸미폰 국왕이 입원하고 있던 시리랏 병원 앞에서 국왕의 서거 발표를 듣고 통곡하고 있다. 【방콕=AP/뉴시스 자료사진】

푸미폰 국왕은 복지 및 환경 사업에 헌신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았다. 국왕은 미얀마, 라오스와 접경지대로 ‘마약 삼각주’라 불리던 태국 북부의 소수 종족인 고산족의 복지를 개선한 공로로 1988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다. 큰 업적으로 1986년 60세 생일에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태국 왕실은 기득권 카르텔을 이용해 ‘군림과 통치’를 병행하고 있다.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왕은 1946년에 즉위하여 지난해까지 세계의 왕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인 70년간 통치했다. 국왕을 ‘불교의 수호자’로 규정한 헌법에 따라 한때 출가 생활도 했고 여러 불교 행사에 참가해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지금도 전국 어디든 ‘국왕폐하만세’(LONG LIVE THE KING)라는 노란색 정장을 입은 국왕의 사진포스터가 그대로 붙어 있다. 왕은 죽었지만 국민 가슴속엔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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