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성장률은 2%에 못 미치고 일자리 부족현상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없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가계부채는 갈수록 쌓여만 가고 있으며 경제활성화는 백약이 무효다.

▲ 최성범 주필

조선업과 해운업은 거대 부실산업으로 전락했고, 잘 나가던 휴대폰과 자동차는 중국에 추월 당할 것이란 위기감이 나도는 가운데 새로운 성장 주도 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4산업 혁명으로 산업 지도는 급격하게 바뀌고 있으나 한국이 앞서고 있는 분야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6년도에 2만 달러에 진입한 이후 10년 동안 3만 달러 달성에 실패해 이제 거대한 벽처럼 여겨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비심리가 다소 회복되긴 했어도 한국경제는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7년의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어쩌다가 한국경제가 이런 모습이 됐을까?

거의 모든 정권이 경제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는 했다. 돌이켜 보면 정교한 경제 정책과 일정 로드맵이 야심차게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는 7% 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7대 경제 강국 진입을 골자로 한 747전략을 야심차게 밀어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기치 아래 창업지원과 문화콘텐츠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거대 전략 계획 하에 경제 정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예산투입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산업정책 부재가 제조업 공동화와 일자리 상실로 이어져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게 있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없었다. 재정과 금융 정책을 수립하고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긴 했지만 정부가 산업 비전을 제시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산업정책이 부재했기 때문에 경제는 방향성을 잃고 제 자리를 맴도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경제정책을 돌이켜보면 금리와 예산이 이슈가 된 적이 있어도 산업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제조업은 언제부턴지 사양산업으로 여겨져 서비스업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아도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대응해 본 적이 없었던 게 현실이다. 그 결과는 제조업 공동화와 일자리 상실로 이어졌다.

금융과 재정 중심의 경제정책에만 매달린 결과 공장들은 동남아로 다 빠져 나가고 남아 있던 일부 업종에서도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산업정책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최대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이 퇴출되는 해운업의 구조조정과 대우조선 등 조선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정부가 시장논리에만 매달리는 사이 산업은 붕괴했고 대량 실업 사태가 초래됐다.

원래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부는 재정과 금융 중심의 경제정책만을 펴고 산업정책은 지양하는 게 일반적이고 국제무역 규범에도 부합하는 것이지만 아직 한국은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지 못해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 체질로의 변환에는 실패했다.

국내 시장이 작아 민간기업들이 감당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따라서 선진국형의 경제정책만을 따르기만 해선 한국경제는 추진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만다. 너무 일찍 선진국 흉내를 낸 결과, 즉 경제 정책의 조로화 현상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정부 주도 아래 산업화를 이뤄냈다. 4~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86년) 과정에서 전자·자동차·철강·조선·기계·화학·정유 등 주력 산업의 틀이 짜였고, 이를 바탕으로 연 10% 고도성장기를 보냈다.

김대중 정부는 마침 불어닥친 정보화 혁명의 분위기 속에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성과를 남겼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미래형 자동차, 디스플레이, 바이오신약 등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을 선정해 육성에 나섰다.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만, 이런 과정에서 현재 산업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MB정부시절부터 4대강에 밀려 신성장동력사업(17개)는 추진 동력이 떨어졌고 결국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창업지원에 부분적 성과를 내긴 했어도 산업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다.

문재인정부의 J노믹스, 산업정책의 성공여부에 달려

한국이 산업 정책을 포기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오히려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금융을 주력으로 삼았던 영국은 지난 1월 발간한 ‘산업전략 수립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뒤떨어진 산업 생산성을 끌어 올리고 선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 문재인 대통령의 J노믹스의 성공여부는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산업경쟁력을 보완하는 산업정책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제조업증강법(2010), 미국경쟁력 강화법(2014) 등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펴왔고 해외 이전 공장들을 본국으로 역이전시키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했다.

독일은 이미 2006년부터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킴으로써 생산성 증대를 꾀하는 인더스트리 4.0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제조업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전세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열풍을 일으킨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J노믹스를 통해 사람에 대한 투자에 역점을 두는 소득주도의 성장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에 대한 지원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정책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물경기의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소득주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일시적인 성장은 가능할지 몰라도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지속적인 성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재정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실물경기가 살아나지 않고선 J노믹스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과거와 같은 국가 주도형의 산업 육성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의 경쟁력을 보완하려는 산업정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결국 산업정책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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