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올해 87년 민중항쟁 30년을 맞아 사회 각 분야에서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하는 발표와 세미나들이 줄을 잇고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

특히 ‘언론반동시대’라 할 수 있는 ‘이명박근혜’의 9년 보수정권이 문재인 대통령의 진보정권으로 바뀌자 언론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뾰족한 해답은 없다. 권력의 자제와 언론 경영진의 반성과 현업 언론인의 분발에 기대를 걸 뿐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사상최고인 80%를 넘나드는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국정농단에 지친 시민들의 끈질긴 촛불로 탄핵이후 곧바로 벚꽃대선으로 충분한 준비없이 들어섰다. 이명박 정권때 KBS 정연주 사장을 쫒아낸 것처럼 지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경영진을 임기 전에 마구 끌어내리기도 어렵다.

이미 KBS 경영진은 노조의 사장퇴진 요구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바뀐다면 KBS를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는 근간이 무력화된다”고 적반하장의 논리를 펴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등 장관임명 5대불가론이 발목을 잡고 있다. 보수신문들이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끈질기게 안경환 법무장관,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의 불법, 비리를 물고 늘어져 결국 안 후보자를 탈락시켰다.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언론에 편승해 송영무 국방장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대해 공공연히 낙마를 공언해 대통령 지지여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과 언론은 적어도 집권 6개월까지는 ‘허니문’기간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조선, 동아 등이 곧바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언론이 문제다. 지난 5월 12일 프레스센터에서 사단법인 ‘언론과 사회’가 주최한 <민주화 30년의 한국 언론 : 비판과 성찰> 세미나에서는 지난해 말의 촛불 시위와 정권 교체로 이어진 사회 변화의 과정에서 한국 언론의 역할에 대한 학술적인 진단과 비판이 있었다.

이어 6월 23일에는 미디어오늘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언론자유 투쟁을 주제로 언론인들이 중심이 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 지난 10일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민주시민대동제 6.10민주난장'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6.10 민주항쟁을 재연하며 행진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주제발표를 한 이채훈 PD연합회 정책국장(전 MBC PD)은 “지난 30년은 권력과 언론 경영진의 결탁에 맞선 노조와 현업 언론인들의 끈질긴 싸움의 역사였다”고 정리했다. 그는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면 진보 정권이라도 ‘바른 언론’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국장은 그 예로 “6월 항쟁 이후 ‘죽 쒀서 개 준’ 것은 노태우 집권만이 아니었다”며 “학생과 시민들의 피땀 어린 희생으로 시민 민주주의의 틀을 확보했지만 그 내용을 채운 건 언론자본의 탐욕과 질주였다”고 정리했다.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 설립의 자유를 얻어 1988년은 5월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군부의 언론사 통제가 풀렸다. 87년 말 한국일보노조를 시발로 각 언론사에 노동조합이 속속 결성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곧 정권이 반격에 나섰다. 1989년 경향신문을 LG에 넘기려는 경영진에 노조가 파업으로 맞서자 최병렬 공보처 장관은 5명의 기자를 해고한 뒤 한화에 넘겼다. 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언론인 해직사태 이후 첫 해고사태였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에는 KBS를 직접 장악하기 위해 5공 청와대 출신 서기원을 새 사장에 임명하면서 노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정권만이 아니었다. 신문, 방송사의 경영진이 직접 편집, 편성권에 개입했다. 1991년 6월 김중배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이제는 권력이 아니라 자본과의 싸움”이라고 선언한 뒤 손석춘 기자와 함께 신문사를 떠났다. 1990년 우루과이 라운드를 다루려던 PD수첩이 최창봉 MBC사장 지시로 불방됐고, 이에 항의하던 노조위원장 등이 해고됐다. 1992년 MBC노조의 50일 파업 등으로 이어졌다.

▲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적폐 청산을 위한 부역자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언론장악방지법 즉각 제정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노태우 정권 이후 김영삼 문민정부- 김대중 국민의정부- 노무현 참여정부를 거치며 언론자유는 점차 확대됐지만 조선일보의 사세는 더 커졌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조선일보는 극우이념과 상업주의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특정 정치인에 대해 왜곡과 날조를 서슴지 않으며 힘을 키웠다”고 했다.

조선-검찰-한나라당(새누리당)의 카르텔이 공고해지고 ‘조중동’ 보수신문의 헤게모니가 사회여론을 이끌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삼성의 언론장악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은 삼성과 정치권의 공작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삼성의 언론통제는 2006~2007년을 달군 시사저널 사태로 이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종합편성 채널에 특혜를 주고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어 위상을 추락시켰다.

이 국장은 언론개혁을 위해 기자와 PD들의 의식혁명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적폐세력이 다시는 민중을 기만할 수 없도록 새로운 언론지형을 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결국 지난 30년 언론인들이 싸워왔듯이 앞으로도 현업 언론인들이 치열하게 고민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끝까지 싸웠던 촛불혁명을 본받아 언론투쟁도 ‘시지프스의 바위’를 굴려 올리듯 꾸준히 해내야 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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