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올해 6479원인 최저임금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 ‘내년 병장 월급을 21만6000원에서 40만5669원으로 인상 추진’

▲ 최성범 주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과 사병 급여 인상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양대 노총이 복귀를 결정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시작됐다.

29일로 예정된 시한에서 2020년 시급 1만원 달성이 결정될 경우 매년 15.7%씩 최저 임금을 올려야 한다. 또한 국방부는 병장 월급을 최저 임금의 30%, 40%, 50% 수준으로 연차적으로 인상한다는 방침을 2018년 국방예산 예산안 요구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소득주도 성장의 기치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취약 부문의 저임금 해소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때문에 그동안 노동계와 경영계만의 문제로 치부돼 왔던 최저임금과, 여론의 관심 밖이던 사병 급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안대로 다 관철되지는 않겠지만 최저임금 1만원이 큰 방향이 될 게 분명하다. 이는 한국 사회에 앞으로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게 분명하다.

지난 1987년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당시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군부 독재 치하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 회사마다 노조가 설립됐고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임금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인건비가 급상승하면서 경제의 구조와 기업경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노임 따먹기 수준의 업종은 점차 사라졌다. 섬유, 봉제, 완구, 신발 등이 해외이전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원가 우위의 경쟁력보다는 고품질 중심의 제품으로 이행을 서둘렀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고부가치 위주의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가 오늘날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1987년의 민주화로 인한 임금 상승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저임금을 포기하는 순간이 산업구조 고도화와 합리적인 경영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론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생산요소의 가격이 과도하게 저렴하다는 것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적정 임금은 근로자의 권익을 위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필자는 최저 임금 1만원 인상은 당위론적으로 좋은 정책이라고 본다. 비정규직이나 청년층의 소득 보전이라는 차원 말고도 경제 구조의 긍정적 변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저 임금이 인상될 경우 최저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려는 나쁜 관행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을 억제하는 간접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사람 값이 오르면서 사람이 대접 받는 사회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은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만원행동)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최저임금 1만원 실현 6.17 걷기대회 만원:런'행사에 참석해 손 피켓을 들고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행진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2015년 기준으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의 경우 31개국 중 22위,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19위 정도로 하위권이라는 통계는 경제력에 비해 한국이 저임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했다고는 하나 산업구조가 아직 선진국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적정임금, 지속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사람이 중심인 경제가 진정한 선진국

물론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하다.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면서 저성장과 내수부진을 몸으로 막아온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 문재인 정부로선 정책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기업을 무작정 보호하느라 산업구조 고도화를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뿐이다. 자영업의 경우 부담이 클 수도 있지만 24시간 영업 등 과다한 영업시간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돼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질 수도 있다.

실제로 편의점의 경우 매출이 거의 없는 새벽 시간 영업 여부를 놓고 본사와 가맹점 간의 갈등이 많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알바 고용에 의존하는 영업 관행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자영업자들의 일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카드수수로 인하 등의 대책도 고려돼야 한다.

사병 월급의 경우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휴가 차비도 되지 않았던 시절에 비하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최저임금 대비 30%에도 턱 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애국 페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막말로 사람값이 공짜인 상황에서 소중한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첨단기술 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해진 시대에 고지전이나 진지전을 하던 시대에서나 통하던 방어전술과 병력 운용 방식을 써선 곤란하지 않을까?

사병 월급의 인상은 사병이라는 소중한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병력 운용 체계가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방전략의 변화도 당연한 일이다.

임금이 오르는 것은 사람 값이 오르는 것이고 결국 사람이 대접 받는 사회가 된다는 뜻이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결국은 가야 할 방향이다. 사람이 중심인 경제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가 잘 풀려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서 사람이 대접 받기를 기대하는 건 필자만의 소망이 아닐 것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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