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의 ‘님’은 누구일까?

하응백의 국악 가사 이야기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l승인2017.06.16l수정2017.06.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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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여창가곡 계면조 중거에 ‘서산에’로 시작되는 가곡이 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서산에 일모하니 천지에 가이없네

이화에 월백하니 님 생각이 새로워라

두견아 넌 눌 그려 밤새도록 우나니


서쪽에서 해가 지니 천지가 끝없이 아득하게 보인다. 봄밤이었던 모양이다. 이화에 달빛 가득하니 님 생각하는 것이 새롭다. 마침 그 밤에 두견새가 운다. 지은이는 두견새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를 그리워하여 밤새도록 우는가 하고. 지은이의 심정이 밤새도록 울고 있으니, 두견새도 누구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다고 짐작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남자(혹은 여자)가 정인(情人)을 그리워하는 시조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풍경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 시조는 조선 중기의 관리이자 학자였던 이명한이 지었다. 이명한이 지은 시조는 여섯 편 정도가 남아 있는데, 이 시조는 그중의 한 수이다. 이명한은 어떤 사람일까?

시조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은이의 일생을 살펴야 하는데 이명한은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전적·공조좌랑에 이르렀다. 앞서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교리 등을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에 제수되었다. 이어 이조좌랑이 되어 어사로 관동에 나가 서리들의 정치와 백성들의 폐해를 살폈다. 다시 옥당(玉堂)에서 근무하다가 이조로 옮겨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공주로 모시고 가서 이식과 함께 팔도에 보내는 교서를 지었다. 이어 응교·사간에 승진된 뒤 검상·사인·집의·이조참의로 승진했다. 그는 이후 병조참의·우승지·형조참의·좌승지·남양부사·대사간·대사성·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639년(인조 17) 도승지 등을 거쳐 1641년 한성부우윤·대사헌이 되었다.

▲ 조선 시대의 시조나 문학 작품에서 나오는 님은 사랑하는 이성이 되기도 하지만 군주인 임금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가곡 예능보유자인 김영기 명창이 지난2013년 서울 남산 국악당에서 계면조 태평가 ‘태평성대’를 부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1643년 병자호란 때 이경여·신익성 등과 함께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에 잡혀가 억류되었다. 이듬해 세자이사가 되어 심양에 가서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1645년에 명나라와 밀통한 자문(咨文)을 썼다 하여 다시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풀려 나와 예조판서가 되었다. 아버지 정구, 아들 일상(一相)과 더불어 3대가 대제학을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즉 이명한은 세 번이나 청나라에 가야만 했고 이는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이명한의 시조는 그러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때문에 이 시조에서 님은 바로 인조 임금을 의미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요즘 생각하면 한 개인이 임금을 저렇게그리워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 사대부들에게 임금은 사랑의 대상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임금은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 개인의 벼슬뿐만 아니라 생사여탈권까지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물며 사대부들에게 임금이란 관념 속의 절대적 지배자였다. 충(忠)이란 개념 속에서 임금은 사랑하는 정인보다 백배 천배 더 가치를 지니는 지존(至尊)이었다.


조선 시대의 시조나 문학 작품에서 님은 사랑하는 이성이 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군주이다. 송강 정철의 여러 작품에서 님이 바로 선조 임금인 것처럼, 이명한의 시조에서의 님도 바로 인조 임금이다. 님을 해석할 때 한 사람의 생애와 전체 작품의 맥락속에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hboo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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