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개인적으로는 사리사욕만 생각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시장경제라고 설명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시장이 이처럼 모순된 기제이지만, 그로부터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우리는 거의 모든 정치 체제와 경제 구조에 적응가능하며 항구적이라 할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와 유사한 교환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다.

다만 시장이 더 도덕적이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예를 들어 존 맥밀런은 고전적 저작 ‘시장의 탄생’에서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첫째 정보가 원활히 흘러야 하며, 둘째 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며, 셋째 개인 간의 약속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넷째 제3자에 대한 부작용이 최소화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경쟁은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성장 구조화된 시대의 기업 전략

맥밀런의 조건들은 실은 특정 사회를 경제 위기에서 조속히 회복시키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기도 하다. 만일 사회가 시장 기능의 미비 또는 왜곡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다면 정치적으로는 국가 또는 정부가, 경제적으로는 기업 또는 민간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오늘날 글로벌화된 세계경제 속에서 우리와 같이 저성장, 고령화로 동력을 상실할 처지에 놓인 경우 시장 기능의 회복과 해외에서의 경쟁력 확보는 더 없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시장의 핵심 기제인 기업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 전략’을 읽고 저자인 김현철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 『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 전략 』 = 김현철, 다산북스, 360쪽, 2015. 7. 20.

이 책은 경제이론서가 아니고 그렇다고 경제 정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기와 해법을 ‘구조화된 저성장’에서 찾고 있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면 국가적 또는 구조적 대응이 아닌 개별 기업의 생존 전략을 제시할 뿐이다. 그 전략들은 대체로 저자가 보고 겪은 일본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에서 차용한 것이며 그중 많은 사례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의 원가절감 시스템은 ‘가이젠(改善)’이라는 유명한 용어 등과 함께 수많은 국내 기업들에 차용되어 왔고, 해외 진출 기업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현지화와 표준화 전략은 부분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일본을 넘어선 경우에 해당한다(현대차가 그러지 못했다면 미국이나 인도 시장에서 일본을 어떻게 따라잡았겠는가).

나아가 개별 기업들이 아무리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일국의 경제 회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삼성이 애플을 넘어 휴대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린다 해도 그것으로 한국 경제가 도약할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기업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경제의 구조적 성장은 거의 별개 문제라 해도 좋기 때문이다.

‘최선의 시장 조건’ 앞장서 찾기를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성공한 일본 기업 사례’들이 국내에서는 대체로 대기업에게 적합한 것이라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사례 자체가 대기업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기에는 우리 중소기업(중견기업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의 처지가 지나치게 열악한 탓이다. 저자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한일 양국의 기업 구조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기업 구조가 항아리형인데 비해) 한국은 호리병형 기업 구조다. 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은 거의 없고 위의 극소수 대기업과 아래의 수많은 중소기업으로 양분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배경으로 일본과 달리 대기업에 하청계열화된 우리 중소기업의 처지를 들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김상조 교수의 글로 소개한 바 있다(5월 18일자 ‘김상조식 ‘공정경쟁 질서 확립’, 재벌개혁 신호탄 되나’참조). 해외 진출 시도 자체가 만만치 않은데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보라”거나, 기존 시장에서 대기업의 압박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중인데 “기존 시장을 사수하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노려라” 같은 주문도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매력은 크다. 무엇보다 책은, 기업들이 시장 기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경제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깔고 있다. 1990년 들어 버블 붕괴로 저성장에 빠진 일본이 끝없이 추락하는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정부나 일부 대기업보다는 혁신을 통해 생존에 성공한 다수 기업들에서 나왔다. 일본 기업들은 저성장 사회에서 시장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았고 그 속에서 시장에 적응하려 했고 이를 위해 기존 사업 모델과 신념, 관행을 가차 없이 버릴 줄 알았다.

저자는 우리가 비록 일본처럼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일본 기업들이 해낸 것처럼 우리 기업들이 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저자의 말처럼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현재 한국은 저성장 초입에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며 시장에서 최선의 승부를 펼치는 것, 정부가 글로벌화된 시장의 본질을 파악하여 기업과 가계에 최선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 그 결과 정부가 말하는 ‘국민성장 선순환 구조’를 현실화하는 것. 새 정부에서 일하게 된 저자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점일 것이다.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