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국회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의 주역인 박 대통령에 대해 총 투표 299명 가운데 찬성 234명, 반대 56명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두 번째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고, 국민이 2012년 대선에서 기대 속에 선출한 첫 여성대통령은 취임 3년 10개월만에 관저에 유폐되는 불행을 맞았다.

▲ 김홍국 편집위원

탄핵은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회수하는 최후의 수단이며, 이번 탄핵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했고, 법률을 어겼고, 주권자를 배신하는 중대한 역사적 범죄를 저질러 검찰에 의해 범죄의 공범이자 피의자로 규정됐다.

박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부터 잘못을 소상하게 밝히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할 반성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거짓 해명과 도리어 정략적 제안을 내놓는 등 진정성 없는 사과로 국민을 배신했다.

대통령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고 리더십은 무너졌으며, 핵심 정치적 지지기반인 60대 이상의 노년층과 대구경북(TK) 지역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시민혁명이 1970년대 권위주의 리더십을 끝내다

박근혜 리더십은 21세기에 걸맞은 비전과 리더십을 갖지 못한 채 영애 시절과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했던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1세기 대낮에 감옥에 갇혀있거나 검찰조사를 받고 있거나, 민원 사항을 갖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강제모금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970년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자신의 멘토였던 가짜목사 최태민씨가 하던 대기업 강제모금을 21세기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준법의식 없이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무수한 법률을 위반하고 비선실세와 함께 국정시스템을 마비시키면서도,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으로 비난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어이없는 일이 무수히 반복됐다.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9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긴급 시국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뉴시스

독선적인 불통의 리더십과 흑백논리로 일관한 대결의 정치는 한국정치를 왜곡했다. 비선실세에 국정을 맡길 정도로 공사(公私) 구분을 하지 못했던 미성숙한 정치는 ‘짐은 곧 국가’라는 불통의 통치방식 아래 대한민국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연인원 6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한 명의 연행자도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성숙한 민주의식을 발휘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봉건왕조 시대만도 못한 채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는 치욕 속에 국정 리더십을 붕괴시켰다.

광장에 촛불을 켜고 나온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배신한 통치자를 입법부의 결정을 통해 불신임했다. 국회의 역사적 결정을 끌어낸 주역은 광장을 가득 채운 수백만의 촛불시민들로, 이들은 박 대통령이 정치적 꼼수로 정치권을 뒤흔들 때마다 상황을 반전시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장 1조에 담긴 주권재민의 정신을 시민들은 스스로 실행했다. 독선과 불통,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의 표상이 된 박근혜 시대는 끝났고, 시민혁명의 주역인 시민들은 민주공화국을 복원시키고 시민 주권시대를 열었다.

헌재, 시민 열망과 민주주의 회복 받들어 조속히 결정해야

공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언제 내려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회의 탄핵 의결은 광장에 울려 퍼진 시민의 목소리가 우리 정치·사회 전반의 큰 변화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헌재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퇴진이라는 새누리당의 당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헌재가 늦어도 내년 3월 이전에는 결정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심리가 내년 4월 이후까지 이어지면 탄핵심판의 실익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박한철 헌재 소장이 내년 1월 31일 퇴임하기 때문에 그 전에 선고가 내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소장이 퇴임하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즉각 새 재판관을 뽑기 어려워 헌재가 최대한 재판관 전원인 9명이 유지돼 있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 측이 헌재 결정을 미루기 위해 새로운 증거 등을 제시하며 변론기일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취재진과 이야기 하고 있다./뉴시스

연장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헌재의 판단에 달려 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탄핵심판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추 사유 중 탄핵 인용이 될 만한 몇 가지 핵심 사유만 추려 판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변협이 “헌재 소장의 임명권자(대통령)가 사실상 부재한 이상 신임 소장 임명 건으로 또 다른 정국 혼란이 초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헌재는 박한철 소장 임기 만료 전에 조속히 탄핵안을 심판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건 이를 잘 보여준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과 국정시스템 파괴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분노를 인식하고, 국정마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시일내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 머뭇거리지 말고 퇴진해 국정마비 막으라

9월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정치권이 자진 사퇴와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을 놓고 우왕좌왕할 때, 흔들리는 여야 정치인에게 방향을 제시하며 국회의 탄핵 의결까지 주도한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그래서 광장의 목소리가 평화적으로 국회를 압박해서 대통령 탄핵을 끌어낸,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혁명을 이뤄냈다. 이번 시민혁명은 1960년 4월 혁명이나 87년 6월 항쟁처럼 시민의 뜨거운 열망이 정치제도의 부분적 개선에서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재창출하고 확고하게 하는 제도적 개선과 정치문화를 정착시켜내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상정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기표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뉴시스

이를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조속히 퇴진해하 한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담화에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국민과 국회의 탄핵 결정으로 불신임이 확인된 이상 헌법재판소 심판을 기다릴 필요 없이 사퇴해야 한다.

끝까지 법적 다툼을 벌이며 두 달 넘게 이어지는 국정 공백과 혼란을 방치하고, 선출되지 않고 검증되지도 않았으며 이번 사태를 방조해온 무능력한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국정운영을 맡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정마비 사태를 방치하는 것은 자신을 믿고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을 발휘해 하루라도 빨리 퇴진 발표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회 전반의 적폐 청산과 민주주의 실현 나서야

우리 사회는 이제 사회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정의의 정신이 실현되는 민주사회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을 방임하고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준 친박 중심의 당정청 시스템, 경제를 왜곡시킨 재벌, 증거인멸 등을 방치하며 정치적 행보를 보여온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부정직한 언론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대대적인 개혁에도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바람직한 리더십을 창출하기 위한 대선 경쟁과 더불어 민주사회를 정착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작업에 나서야 한다.

독단적인 권위주의적 권력을 사적으로 무소불위의 행태로 휘두르며 나라를 망가뜨린 대통령을 탄핵한 주역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었고, 이는 민주공화국으로의 출발점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는 순자의 가르침이나 무능하고 부패한 군주에 대한 역성혁명을 강조한 맹자의 철학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있었다. 박근혜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정치권과 온 국민이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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